사조참치 학대 피해자 인도네시아 선원노동자 인터뷰

 

일시: 2011. 11. 30 밤 11시~1시 30분 (인도네시아 현지시간)

장소: Wisma Hiaju

 

 

○ 인터뷰 대상

성명: SUGITO / 생년월일: 1983. 7. 10/ 거주지: 중부 자바 TEGAL

성명: TRISMANTO/ 생년월일: 1983. 6. 8/ 거주지: 중부 자바 TEGAL

 

○ 인터뷰 및 정리: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 

 

○ 인터뷰 내용

 

1. 사조참치 배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타게 되었나?

작년에 인도네시아 인력중개(브로커) 회사에 찾아갔다. 사조참치 배에는 총 33명(?)이 탔는데 3개의 인력중개 회사를 통해 왔다.

․ 누린도 만디리 인터내셔널 (NURINDO MANDIRI INTERNATIONAL) - 20명

․ 판차카르사 만디리 세자티 (PANCAKARSA MANDIRI SEJATI) - 5명

․ 오리자 사티바 (ORYZA SATIVA) - 7명

 

2010년 11월 26일에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피고에 갔다. 같은 날 피고에서 오양 75호(OYANG 75)에 탔다. 뉴질랜드에는 1월 9일에 도착했다.

 

 

2. 바다 위에서는 어떻게 일했고 한국사람은 누가 있었나?

뉴질랜드에 갈 때까지 바다 위에서 일하면서 고기는 안잡고 배 수리하는 일을 했다. 이때는 인도네시아 노동자 10명, 한국인 9명이었다.

한국 사람은 선장 윤종필, 갑판장, 부갑판장 강왕훈, 수리장 조대호, 조사(chief officer) 박민수(45세 정도), 회사 대리 서광조(40세 정도) 등의 이름이 기억난다.

주로 그물을 수리했고 페인트 칠, 청소 등을 했다. 서광조 대리는 같이 일했다.

 

 

3. 일은 어땠고 음식은 주로 어떻게 먹었나?

일이 힘들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 했고 점심시간은 30분~1시간이었다. 5시 30분에 기상했다. 밥은 직접 요리해서 먹었는데 주로 계란후라이, 김치, 밥 등이었다.

한국 사람들 요리도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했다. 음식은 별로 맘에 안들었다. 새우 같은 것을 한국 사람들이 먹을 때면 새우 머리만 떼서 우리한테 주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고기 같은 것을 주기도 했다.

 

 

4. 잠은 얼마나 잤는가?

잠은 저녁 8시쯤 잤다. 그런데 밤 12시에 일어나야 했다. 불침번을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한 시간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섰다. 제대로 안서면 박민수씨가 머리를 때렸다.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한국 선원이 한 명씩 짝으로 섰는데 한국 사람들은 주로 사인만 하고 다시 자러 갔다.

 

 

5. 많이 맞았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맞았나?

일할 때는 서광조 대리가 시킬 때 잘못 알아들으면 때렸다. 막대기로 때리기도 하고 줄로 때리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했다. 앉아서 일할 때 머리를 차기도 했다.

박민수, 서광조, 강왕훈씨가 주로 때렸다.

갑판장도 주방 일하는 사람 목을 잡고 뺨을 때리기도 했다. 뉴질랜드 도착해서는 한국사람 9명과 사조 측이 회의해서 주방 일하던 노동자(Mohammad Saiful Anwar)를 짜르고 본국으로 돌려 보냈다. 주방사람이 캡틴을 찌르려고 위협했다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뉴질랜드에 올 때까지 매일 인도네시아 노동자 10명 모두 맞았다.

 

 

6. 나머지 노동자들은 언제 합류했나?

나머지 22명은 뉴질랜드 도착하고 나서 1월 20일~30일 사이에 왔다.

 

 

7. 한국 선원들과 소통은 어떻게 했나?

영어랑 한국말을 섞어서 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 2명이 예전에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한국말을 조금 했다.

 

 

8. 뉴질랜드에 1월 9일 도착해서는 무엇을 했나?

도착해서도 배에서는 안내리고 똑같은 일을 했다. 밤에만 배에서 내려 항구 안 정해진 구역 내에서만 산책이 가능했다.

 

 

9. 한국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이 있었나?

한국 출입국의 외국인등록증(ID CARD)는 없었고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출입증(Security Pass)을 받았다. (출입증은 사진 참조)

 

 

10. 뉴질랜드에 있을 당시에는 어떠했나?

3월 9일에 뉴질랜드를 떠났는데 그 때까지도 많이 맞았다. 우리가 호칭을 잘 몰라서 ‘갑판장’이라고 부르면 ‘갑판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때렸다.(한국어로 ‘갑판장님’을 정확히 발음함) 하루 종일 갑판 위에서 가만히 서 있게 하는 벌도 여러 번 받았다.(SUGITO 씨도 2번 받았다고 함.) 주로 잘못 부를 때, 일 잘못할 때 그런 벌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받았는데 아마 10명 정도 그런 벌을 받은 것 같다.

 

 

11. 그래서 어떻게 했나?

갑판장이 너무 많이 때렸기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2월 15일에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 배에서 내리고는 배로 돌아가지 않았다. 갑판장과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선장과 사조참치의 과장이 왔고 다른 한국인 2명이 같이 논의하더니, 앞으로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갑판장도 배에서 내리게 해서 한국으로 보냈다.

 

 

12. 그 다음에는 시정이 되었나?

그렇지 않았다. 3월 9일에 뉴질랜드를 출발하고 나서도 똑같았다. 부갑판장이 갑판장이 되었는데 많이 때렸다. 사실 노동자들이 다 배에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사조도 비슷하게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하는 방법이 좀 달랐다. 그래서 많이 때린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실수할 수 있는데 잘못한다고 많이 맞았다.

 

 

13. 고기 잡을 때는 얼마나 일을 했나?

5월 9일에 배 엔진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그 때까지 두 달 동안 고기를 많이 잡을 때는 이틀 동안 자지 않고 계속 일하기도 했다. 그런 적이 자주 있었다. 그렇지 않을 때에도 하루에 18시간 정도 일을 했다. 이틀 동안 일을 시킬 때는 일을 못하겠다고 일손을 놓아서 겨우 3시간 정도를 잤다. 일하면서 앉을 수도 없었고 밥 먹을 때만 앉았다.

 

 

14. 그 시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일할 때 졸면 바로 머리를 때렸다. 강왕훈 갑판장은 생선으로 머리를 쳤다. 칼로 생선을 자르면서 장갑에 피가 많이 묻었는데 피묻은 장갑을 낀 채 손을 얼굴에 문지르기도 했다. 갑판장은 등 뒤에서 몸을 잡고 성행위를 흉내 내는 장난도 쳤다. 너무 불쾌했다. 심지어 갑판장은 노동자들이 자고 있는 방에 와서는 트리스만토의 몸을 더듬고 성기를 만지기도 했다. 한 번은 트리스만토가 샤워할 때 옷이 바깥에 있었는데 갑판장이 이것을 숨겼다. 샤워하고 나서 옷을 찾으려고 하는데 갑판장이 계속 따라오면서 만지고 안으려 해서 도망갔다. 옷을 못찾아서 금방 빤 축축한 옷을 입어야 했다.

밥 먹을 때 갑판장이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보여주며 흔들기도 했다. 트리스만토가 친구랑 밥 먹을 때 친구 머리에 쌀자루를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15. 뉴질랜드에 다시 와서는 어떤 일이 있었나?

6월 18일 경에 폭행사건이 있었다. 배에서 내릴 때 배가 흔들리면 중심잡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런데 한 인도네시아 노동자(Slamet Ra Harjo)가 내려갈 때 밑에 있던 한국 사람의 성기 부분을 스치게 되었다. 그러자 그 사람(chief engineer 김지호)이 하르조를 심하게 때려서 코피가 나고 코뼈가 삐뚤어졌다.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지금도 코가 삐뚤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6월 18일에 배에서 다 내리기로 했다.

경찰도 20일에 와서 조사를 했다. 한국 사람도 조사를 했는데 그는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피해자는 법에 따라 하겠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들끼리 논의했는데 1명은 배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32명은 못돌아간다고 의견을 모으고 21일 5시 경에 32명이 배에서 내렸다.

 

 

16. 배에서 내리고 나서는 어떻게 했나?

뉴질랜드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교회에서 반나절 정도를 보내고 목사가 현지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 사람이 와서 도와줘서 여관에서 지내게 되었다. 현지 인도네시아 커뮤니티가 도와주었고 나중에 뉴질랜드 단체들의 연대도 많았다. ‘따마떼아(Tamatea)’라는 단체에서 많이 도와 주었고 언론기자들을 많이 불러서 폭로했다.

6월 23일에는 피터 도슨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예전에 사조 측 변호사여서 관련된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직접 변호해줄 수 없어서 다른 단체를 소개해 줬고 거기서 계속 도움을 주었다. ‘이자랏 웨스턴(Izarat Western)'이라는 단체였는데 처음에 2명을 보내서 도와줬고 나중에 7명을 보내서 도와주었다.

우리는 8월에 돌아왔는데 지금도 6명이 4개월 동안 남아 있다. 32명이 한 명씩 다 상담하고 서류를 준비해서 4개월 후인 11월 17일에 법원에 체불 임금 지급 소송을 내서 지금 진행되고 있다. 트리스만토의 경우 54000 뉴질랜드 달러를 청구하고 있다.

 

 

17. 어떻게 뉴질랜드 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나?

월급 계약은 인도네시아에서 했는데 뉴질랜드에 정박하는 배들은 모두 뉴질랜드 법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에이전시와는 월 250만 루피(약 35만원)에 계약했는데 수기토는 5개월 일했는데 부인이 에이전시에서 지금까지 70만루피만 받았을 뿐이다. 트리스만토는 7개월 일했는데 5개월치만 받았다. 이 일이 발생하고 나서 문제를 제기하니 사조 측에서는 이미 에이전시에 돈을 보냈다고 하고, 인도네시아에 돌아와서 에이전시에 문의하니 사조 측에서 못받았다고 한다. 초과수당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18. 임금 관련해서는 계약서 외에 다른 것은 없나?

배에서 일할 때 3일에 한번 씩 무슨 서류에 사인을 했다. 한국말로 되어 있는 것이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마 노동시간 관련 서류인 것 같다. 고기 잡을 때 하루 평균 18시간 일했는데 6시간 일한 것으로 계산되어 있다. 사조 측에서는 법원에도 그 서류들을 제출했다. 계약서에는 그냥 한달에 350달러라고 되어 있고 수당은 선장 마음대로라고 되어 있었다. 물론 수당은 없었다.

 

 

19. 소송 결과는 언제 나오나?

아마 2012년 1월 17일에 결과가 나올 듯하다. 못받은 돈을 제대로 받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사실 폭행과 학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생각하고 있다.

학대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해양경찰 소관이라고 접수를 안받았다. 증명하기도 너무 어려워서 그냥 월급만 제기했다.

참, 죽은 생선을 바다에 버리는 것이 뉴질랜드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사조가 이를 위반한 것도 제소되어 있다.

 

 

20. 코뼈 다친 사람 보상 문제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 방법 없었다. 가해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21. 끝으로 사조측에 하고 싶은 말은?

트리스만토: 받지 못한 돈을 제대로 계산해서 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폭행, 학대가 없어지기를 바란다. 사조만이 아니라 한국 배들은 똑같다. 그런 일들은 다 없어져야 한다. 같이 일하면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동물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개새끼”, “씨발놈아”, “야 이새끼야” 같은 욕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실제로 이 욕들을 발음해 보임) 따뜻하게 친구, 가족처럼 대하면 좋겠다.

처음에 인터뷰어(정영섭) 봤을 때 또 비슷한 한국 사람 아닐까 하는 트라우마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수기토: 한국 배에 타면 맞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사조 말고도 다 똑같다. 일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타지만, 그런 일은 없어져야 한다. 월급도 법에 따라 제대로 지급되어야 한다. 한국 배에서 일하니까 한국 법대로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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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부위 잡고 비틀어… 개 취급 받았다"


"식탁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갑판장이 와서 입을 맞추려 했습니다. 성행위를 하는 것처럼 내 몸에 자신의 몸도 밀착시켰고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내가 일어서려 하자 재빨리 뒤에서 나를 안고는 성추행을 했습니다." -선원 A씨.

"지난 6월 16일 새벽 4시 30분경, 저는 여섯 차례나 두들겨 맞았습니다. 세 차례는 뒷머리를, 나머지 세 차례는 얼굴의 눈과 귀 부분이었죠. 구타로 인해 코피가 났고 코뼈도 어긋났습니다.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은 그 어떤 한국인 어선에서도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선원 B씨.

뉴질랜드 근해에서 조업중이던 사조오양 (15,450원 상승100 -0.6%)의 원양어선 '오양 75호'를 둘러싸고 '노예선'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선원 32명 "구타와 성폭행은 일상"

지난 6월 '오양 75호' 소속 인도네시아 선원 32명은 사측인 사조오양 관계자들의 인권탄압과 급여 미지급 행위 등에 반발하며 현지에서 조업을 중단했다. 한국인 관계자들이 선원들에게 성적 학대와 폭행을 일삼고 지불해야 할 급여마저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집단으로 문제삼은 것이다. 

당시 뉴질랜드 언론은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고 뉴질랜드 정부차원에서도 지난 8월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오양 75호'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은 '오양 75호' 선원들의 인권탄압 여부에 관심을 갖고 해당 인도네시아 선원 13명에 대한 증언 보고서를 최근 공개했다. 

<머니위크>가 입수한 이 대학의 '오양 75호'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지난 8월 작성된 증언록에서 한국인 간부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성추행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선원 A씨는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고 미는 식의 육체적 폭행은 일상적이었다"면서 "이 같은 (한국인들의) 폭력행위는 바다에서건 뉴질랜드 육지에서건 늘 일어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원 B씨는 "바다로 밧줄을 던지고 있었는데 줄이 풀려버리자 한국인 간부는 내 머리를 치고 귀를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나를 개와, 다른 경멸스러운 동물 이름으로 불렀다. 한번은 한국인 직원이 자신의 기름진 장갑으로 내 얼굴을 문지르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폭력행위와 함께 한국인 간부들의 성폭행을 고발하는 발언도 잇따랐다. 당시 '오양 75호'에는 인도네시아 선원 32명 외에 선장과 항해사, 갑판장 등 한국인 간부가 7~8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선원 C씨는 "주방에서 일을 하는데 거의 매일 뒷머리를 얻어맞는 것뿐 아니라 '새끼야, XX놈아'와 같은 언어폭력도 당했다"며 "한번은 한국인 직원이 내 앞에서 자신의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흔드는가 하면, 갑판장은 내 은밀한 부위를 잡고 마구 비틀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오양 75호' 선원들의 인권탄압에 대한 구명운동에 나서고 있는 국제민주연대의 나현필 사무차장은 "이주노동자들이란 이유로 거리낌 없이 가해지는 끔직한 폭력들이 한국의 대표적인 원양어업 회사인 사조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조사나 법적처벌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민주연대에 따르면 현재 사조오양측은 선원들과의 계약을 해지했고 그 결과 선원들은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인력파견업체와 계약할 때 설정한 담보물과 계약 위반금을 지불하게 돼 파산 지경에 처했다고 한다. 또한 선원 대부분은 이미 뉴질랜드 정부에 의해 8월13일까지 뉴질랜드를 떠나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지난해 '오양 70호'에서도 비슷한 일이?

'오양 75호'에 대한 노예선 논란은 지난해 다른 사조오양의 원양어선인 '오양 70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오클랜드 대학측은 이번 '75호' 조사가 지난해 발생한 '70호' 난파 때의 선원 인권탄압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8월18일 뉴질랜드 바운티 섬 부근에서 침몰해 선원 3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됐던 '오양 70호' 사건과 관련, 오클랜드 대학은 당시 '70호'에서 생존했던 선원들을 인터뷰한 보고서도 공개했다. 

보고서에서 오클랜드 대학은 "선원들에게 부당한 수수료를 떼고 위약금을 물거나 보너스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증언은 물론, 한국인 관리자들로부터 폭행과 성적학대 등을 받은 선원들의 증언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70호' 선원 D씨는 "선실에는 난방이 거의 없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일종의 '떠다니는 냉동실'이었다"면서 "빈민굴과 같은 엄청나게 끔찍한 조건이었다. 그 곳에는 분명 인권 침해가 있었다. 그 곳은 노예선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선원 E씨도 "내 아내와 사망한 동료의 아내가 (한국) 에이전시측에 사망 진단서를 가져갔다. 그런데 그들은 남편의 보험금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만일 보험금을 받고 싶으면 에이전시의 디렉터와 며칠간 같이 생활하며 잠자리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10월7일 좋은기업센터와 국제민주연대 등 시민단체는 '오양 75호'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인권침해 유린 행위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가 진정서를 제출하며 진상조사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앞서 이들 단체는 8월11일에도 충정로에 위치한 사조그룹 본사 앞에서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피해를 보상하고, 부당노동 관행을 개선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과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외교통상부측은 뉴질랜드 대사관, 농림부, 해양경찰청, 인권위 등과 협의 중이라고 밝히면서도 뉴질랜드 정부의 조사결과를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사조그룹 역시 선원 학대 건과 관련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입장 외에는 특별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노예선 논란 "사조, 사설탐정까지 고용"

[머니위크]사조그룹 '오양 75호' 노예선 논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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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조그룹의 원양어선 '오양 75호'를 둘러싼 노예선 논란(본지 204호 보도)이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사조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당국 역시 뉴질랜드 정부가 발빠르게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사태 파악에 나서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액션'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당초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피해상황을 접수하고 이를 처음 사회문제로 제기한 국제민주연대측과 시민단체들은 지난 8월11일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사조그룹 본사 앞에서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회사측의 반응은 없었다.

    국제민주연대의 나현필 사무차장은 "직원들이 (우리가)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다 욕을 했고, 어떤 직원은 현수막을 가져가는 등 감정적인 대응만 있었다"며 "회사 경영진이나 관련 실무자들은 전혀 (우리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설탐정 고용해 정보수집?…국내선 '침묵' 뉴질랜드선 '치밀'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인권탄압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본지에 대해서도 사조오양 측은 "변호사를 통해 대응할 뿐 (언론에) 특별히 할 말은 없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하지만 국내 언론과 시민단체들에 이같은 '침묵모드'로 일관한 사조그룹은 정작 뉴질랜드 현지에서는 사설탐정까지 고용하며 '오양 75호' 사태와 관련해 치밀한 정보를 접수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질랜드 언론 선데이스타타임즈에 따르면 사조측은 사설탐정을 고용해 최초에 '오양 75호' 선원의 파업과 인권탄압 의혹 등이 어떻게 현지 언론과 대학 조사팀에 알려졌는지를 조사했다. 심지어 이 사설탐정은 미 국무부 인신매매담당 루이스 시드바카 대사의 활동을 일거수일투족 사찰하기도 했다.

    사조가 사설탐정을 고용해 활동하게 한 시기는 '오양 75호' 선원들이 인권탄압과 급여 미지급 등에 반발하며 조업을 중단한 직후와 맞물렸다는 점에서, 사조측이 선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정보 유출 경위에 대한 조사에만 급급했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사조 관계자는 "(사립탐정 고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사조그룹이 침묵하고 있는 사이 외교통상부 등 정부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태도도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앞서 10월7일 국제민주연대 등 시민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오양 75호'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인권침해 유린 행위와 관련, 진정서를 제출하며 진상조사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진정서 제출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인권위는 특별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외교통상부 역시 관련부처와 회동하고 있지만 현지에 조사원을 파견한다든지 적극적인 대처능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두손 놓고 있는 정부 "뉴질랜드 정부결과 기다린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뉴질랜드 대사관측에서도 우리에게 의뢰해 현재 농수산식품부, 인권위, 해양경찰청 등의 관련부처 협의를 2~3차례 했다"면서도 "현재 뉴질랜드 정부와 협조가 잘 되는 상황이니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대처와 달리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조업을 중단한지 2달여가 지난 8월13일, 뉴질랜드 정부는 '조사위원회(가칭)'를 꾸려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파악에 나서고 있다. 뉴질랜드의 인권위 역시 현지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조사위원회에 적극 협조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뉴질랜드 정부의 이번 조사는 '외국용선'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주 목적이지만 현지에서는 '오양 75호', '오양 70호' 등 사조오양의 원양어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현필 사무차장은 "정부가 한국기업(사조그룹)을 보호하려 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너무 국가 이미지만 지키려 하고 우리 어선에서 일한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면서 "뉴질랜드 정부의 조사결과도 내년 2월은 돼야 나오는데 그 때까지 한국정부는 두 손 놓고 기다리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한편 외교통상부 측은 뉴질랜드 정부의 '오양 75호'에 대한 조사의 이면에는 석연치 않은 배경이 있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외통부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경우, 어업쿼터제를 실행하는데 현재 원주민들과 백인들간 치열한 이권다툼이 벌어지고 있고 최근 몇 년 사이 원주민들이 싼 가격으로 외국 용선을 많이 들여와 조업하면서 수익이 늘자 백인들의 견제가 심해졌다. 따라서 가장 많은 용선을 보유한 한국어선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중 '오양 75호' 사건이 터져 이를 공론화시켰다는 논리다.

    외통부 관계자는 "전체 용선 26척 중 절반에 해당하는 13척이 우리나라 어선이다. 백인들은 자기네 수입이 자꾸 줄어드니까 용선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한국어선이 절반이다보니 '오양호'를 타깃으로 삼은 것 같다"고 말했다.


    75호 선원들(맨위)과 오양 70호 선실 내부.

    ■지금 인도네시아 선원들은…'페북'에서 의기투합

    당초 조업 중단을 결심했던 지난 6월만 해도 '오양 75호' 소속 인도네시아 선원은 모두 32명이었다. 하지만 사조오양측이 선원들과의 계약을 해지, 선원들은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인력파견업체와 계약할 때 설정한 담보물과 위약금을 지불하게 돼 파산 지경에 처했다. 급기야 선원 대부분은 뉴질랜드 정부에 의해 이미 8월13일까지 뉴질랜드를 떠나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현재 뉴질랜드에 남아있는 선원들은 6명으로 그나마 이들도 노숙생활을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행히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끈끈함을 과시하며 '오양 75호'의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선원들은 페이스북에 'Not in Our Waters'라는 클럽을 만들어 사태해결을 위한 관련 소식과 정보를 공유하는가 하면,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는 등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방문객들로부터는 "힘내라"는 조언도 많이 받는다.

    한편 국제민주연대 측은 빠르면 12월 초 인도네시아 현지로 출국, 먼저 돌아간 선원들의 피해사례 증언을 차례로 받아 향후 인권위에 추가로 진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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