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네팔 인권과 우리 이주노동자에 대한 냉대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여의봉, 히말라야 이야기’ <7>

2007년 네팔 최고법원은 정부에게 제3의 성 주민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결정이 실행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 지난 1월 네팔정부는 남성이나 여성으로 인식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을 위해 제3의 성이란 라벨이 붙은 주민증 발급을 허락했다. 게이와 성전환자의 권리 보장 가운데 하나가 드디어 성취된 것이다. 그동안 이들은 주민증이 없어 많은 일을 할 수 없었다. 직업은 물론 여권도 구할 수 없었다. 심지어 대학도 다닐 수 없었으며 소유 재산도 등기조차 하지 못했다. 앞으로 네팔의 성적 소수자들의 삶이 더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네팔의 인권이 매우 혁신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네팔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뉴델리에서는 22분마다 한 번꼴로 성폭행이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성폭행은 빈번하다. 특히, 지난해 12월 16일 뉴델리에서 23세 여대생이 버스 안에서 집단 성폭행당한 후 13일 만에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여성인권에 대해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 초 네팔에서도 성폭력에 반대하는 수백 명이 참가한 시위가 네팔 총리 관저가 있는 발루와타 지역에서 50여 일째 이어진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귀국한 21세 여성이 카트만두 트리뷰반국제공항에서 출입국 공무원들에게 돈을 빼앗긴 뒤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한 데다 임신까지 했다고 한다. 네팔 정부는 이 사건을 조사한 뒤 피해 여성에게 턱없이 부족한 경제적인 보상만 약속했다.

이즈음 네팔 정부는 성폭행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보고서를 냈으나 성폭행 관련법 개정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네팔 인권변호사인 만디라 사르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공무원이 연루된 성범죄를 당국이 제대로 조사하거나 처벌한 적이 드물다고 했다. 네팔 여성의 인권도 심각한 게 지금의 사회현실이다. 그럼에도 최근 인도와 네팔 등에서 발생한 시위는 서남아시아 지역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주장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야 하고 여성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하는데 일본 정부는 그렇지 못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일이다.” 제107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5월 15일 일본 대사관 앞을 방문한 네팔 YWCA 초대 회장 비슈누 마얄라이 대표(현 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 네팔 지역 대표)가 한 말이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회장 홍기숙)의 초청으로 한국 방문길에 오른 그녀는 “왜 어린 여성들을 희생자로 만들었는지 같은 여성으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5월 27일 네팔을 비롯한 세계 17개국의 60여 개 국제단체들이 공동으로 하시모토 대표의 ‘위안부 망언’을 강하게 규탄했다. 네팔 인권단체인 여성재활센터(WOREC)의 수미타 프라드한 조정관은 “60여 개 국제단체들이 최근 하시모토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규탄하면서 단합된 의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도루 일본 유신회 공동대표(오사카 시장)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르는 위안부 관련 망언에 전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특히, 하시모토 대표는 “위안부는 필요했다”고 주장하며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오키나와 주둔 미군들의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성매매 업소를 이용하게 하라”고 말하는 등 잇단 망언으로 망언제조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국내외에서 하시모토의 망언에 대해 일본정부와의 연계 등 다양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극우 정치가의 망언은 사적인 개인적인 야망의 발산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전쟁 가해자인 일본이 아닌 다른 나랏일이었다면 애초부터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5월 28일 패트릭 벤트렐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지방관료 하나가 이상하고, 불쾌하고, 비난받을 발언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대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답이다. 이에 하시모토는 미국 방문을 취소했다. 미국 측 당국자들이 만나주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 여성인권운동가들과 단체들이 하시모토의 우리 위안부 관련 망언으로 촉발된 이 사건을 두고 얼마나 빨리 하시모토를 낙마시킬지, 또 이를 통해 일본 내 여성인권을 얼마나 많이 성장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4월 21일 한국 이주노동자 출신 네팔인 어쇽 타파 감독이 만든 ‘코리안 드림’이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제9회 알자지라 국제다큐멘터리 필름 페스티벌 단편부문에서 심사위원 상을 받았다. CNN, BBC와 함께 세계 3대 방송국이라고도 불리는 아랍권 최대 미디어 그룹인 알자지라 네트워크가 주관한 ‘세계를 위한 창’이라는 주제로 열린 영화제다. 그에게 있어서 ‘코리안 드림’의 작품성과 주제의식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가운 냉대와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태도, 그리고 강제추방의 실태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근래 ‘한국’ ‘이주노동’ ‘노동자’라는 키워드로 운동하며 살아가는 샤말 타파가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네팔노총 GEFONT(General Federation of Nepalese Trade Unions)에서 일하는 그는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강제추방’ 당한 이주노동자다. 고국에 돌아간 후 그의 삶은 우리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이주노동자 등을 위한 새로운 협동조합운동을 시작했다. 네팔은 지금도 빈곤한 데다 기술과 자본이 없어서 끊임없이 악순환을 겪고 있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이 그렇다. 그는 기술을 가르쳐주고 창업 자본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딧, 에카타 세이빙 앤 크레딧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어쇽 타파 감독 그런 그를 영상으로 담았다.

성 소수자의 인권, 여성의 인권, 이주 노동자의 인권, 다문화 배경의 사람들 인권 각각은 사뭇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다. 같은 인권이라는 문제 의식 속에서 접근해야 만이 해결될 수 있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문제다. 네팔 여성이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일 수 있고 그녀가 결혼해서 우리 국민이 된다면 다문화 배경의 국민이 된다.

이주노동자를 비롯해 다문화배경의 그들이 비록 단군왕검을 시조로 하는 한민족은 아니더라도 엄연한 우리나라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들을 계속해서 냉대하고 차별을 하는 한 우리나라 인권의 미래는 없다. 이른 시일 내에 바로잡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하시모토와 같은 자가 나타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 점에서 우리가 과연 지금 하시모토를 망언제조기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우리나라 인권의 현주소를 돌이켜 보며 깊이 반성해 볼 부분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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