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이주 여성 노동자와 건달 청년의 쓸쓸한 사랑

유지태 감독 첫 장편영화 '마이 라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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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띠마
태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을 찾은 마이 라띠마는 노동 착취에 시달리며 힘든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매달 본국에 돈을 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살던 마이 라띠마는 어느 날 위험에 처하고, 순간 한 남자의 도움을 받는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렸던 남자 수영은 우연히 구해준 마이 라띠마와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서울행을 결심한다. 하지만 하류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서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연기 생활 틈틈이 '자전거 소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나도 모르게' '초대' 등의 단편영화를 연출해 온 유지태의 첫 장편영화인 '마이 라띠마'는 세상이 등 돌린 두 남녀를 소재로 쓸쓸한 사랑을 그려낸다. 몸뚱아리 하나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들 남녀는 정글 같은 우리 사회에 쉽게 편입하지 못한다. 소외 계층이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멸시와 성공, 돈에 대한 욕망은 둘의 사랑에 걸림돌이 된다. 유지태 감독은 소외된 사람의 삶이란 아픔이 반복되는 고행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는 서울에 상경한 두 사람이 천천히 망가져 가는 모습을 냉정하고 느린 시선으로 담는다. 수영은 굵은 동아줄이라고 믿는 영진을 만나 호스트바에서 쉽게 돈을 버는 맛을 알게 된다. 그런 수영이 임신한 마이 라띠마를 버렸을 때,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제목 '마이 라띠마'는 태국어로 '새로운 삶'이라는 뜻인데, 과연 이 두 사람에게 새로운 삶이 또 다른 고난의 연속이 아닐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4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낸 '마이 라띠마'는 상업영화의 틈바구니에서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인물들의 심리를 잡아내는 연출은 유지태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한다. 다만 이야기의 진행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특히 한겨울 재개발촌 빈집의 러브 신은 무리가 있는 설정이라는 느낌이다. 대학 시절부터 15년 넘게 준비해 온 영화라고 하는데,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보여주려 했던 욕심도 엿보인다.

마이 라띠마 역의 박지수는 신인임에도 어려운 역할을 안정적인 연기로 보여준다. 영진 역의 소유진 역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반면 수영 역의 배수빈이 하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를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조금 아쉽다.

'마이 라띠마'는 제15회 도빌 아시아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제37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개봉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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