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기막힌 고용환경
“화장실도 없이… 비닐하우스서 10개월 일했죠”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최 ‘을’들의 이어말하기
현 고용허가제로는 인간 이하 취급 감수해야

▲ 25일 저녁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을’들의 이어말하기”에서 이주노동자 쉼터 ‘지구인의 정류장’ 상임역무원 김이찬씨가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화장실이 없어요. 화장실 가려면 삽을 들고 비닐하우스 뒤쪽으로 가 구덩이를 파고 볼일을 봤어요. 5일간 화장실 가는 걸 참은 적도 있어요. 그렇게 10개월을 일했어요.”

6월 25일 저녁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인 60여 명의 사람들은 김이찬씨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쉼터이자 문화사랑방인 ‘지구인의 정류장’ 상임역무원인 김이찬씨는 지난해 성탄절에 쉼터를 찾아온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기막힌 고용 환경에 대해 고발했다. 이 자리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한 ‘평등예감-‘을’들의 이어말하기’ 두 번째 날로 김이찬씨 외에도 건강문제를 연구하는 김명희씨, 쌍용차 해고 노동자 고동민씨, ‘기록되고 기억되는 공간을 열망하는’ 몽씨가 참여했다.

김이찬씨를 찾아온 여성은 20대 초반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였다.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가량을 의정부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일했다. 40여 동이나 되는 비닐하우스 채소 작업장 일을 서너 명의 노동자가 매일 새벽 6시부터 12시간 동안 해내야 했다. 한 달에 350여 시간을 일했지만 월급은 100만원가량. 기거하는 숙소는 비닐하우스 근처 샌드위치 패널을 이어붙인 공간으로 욕실조차 없었다. 적은 임금이나 열악한 숙소보다 더욱 기막힌 현실은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사장에게 화장실을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20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그렇게 10개월을 일한 두 여성 노동자는 밖에서 용변을 보는 것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겨울이 돼 추워서 더 이상 밖에서 “똥을 눌 수 없어서” 일터를 도망 나왔다.

하지만 이 노동자들은 절대적 ‘을’의 위치였다.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러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했지만 현재의 고용허가제도 안에서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이탈하면 안 된다. 사용자의 사인이 있어야 불법체류자 신세를 면할 수 있다. 관할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일터에 화장실이 없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규정이 없다. 사용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강문제를 연구하는 김명희씨는 편견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후배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B형간염 보균자라는 이유로 정식 취업을 할 수 없었던 후배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11년 동안 혼자 밥을 먹었다. B형간염은 같이 밥을 먹는다고 해서 옮는 병이 아닌데도 그의 병력으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더구나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교사들은 반 친구들에게 후배를 가리키며 간염 보균자니까 같이 밥 먹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 2000년 전염병 예방법이 개정되면서 380만 명의 B형간염 보균자들의 취업 제한이 풀렸다. 그 후배는 법의 수혜를 받아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3년 전 간암으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김명희씨는 “도처에 차별이 존재한다”며 “배려심 부족과 잘못된 지식, 막연한 불안감으로 다른 이들의 삶을 함부로 단정짓고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 나중에 잘못을 깨닫는다고 한들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용서를 구할 시간이 무한정 있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