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45분 뒤에야 119신고…KTX 공사장 노동자 또 숨져

등록 : 2013.07.28 20:18 수정 : 2013.07.28 21:39

수서~평택구간 한달새 2차례 사고
폭우로 불어난 물에 터널안서 참변

동료들이 구했을땐 살아있었는데
사쪽 지정병원에만 신고뒤 기다려
철도시설공단·경남기업 ‘은폐’ 의혹

고속철도(KTX) 공사장에서 일하던 하도급업체 직원이 수몰 사고로 숨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고속철도 공사장에서 사망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번 사고 땐 119 신고가 늦어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서울 수서경찰서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실의 말을 종합하면, 집중호우로 서울 지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졌던 22일 서울 강남구 세곡동 수서~평택 고속철도 1-2 공구에서 일하던 하도급업체 직원 김아무개(32)씨가 물이 차오르는 터널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김씨가 이날 오전 8시께 장비 점검을 위해 공사현장 터널에 들어간 지 40분 뒤 터널 안에선 “사람 살려”라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동료 4명은 오전 8시55분께 터널 안쪽 130m 지점까지 들어가 김씨를 밖으로 끌어냈다.

시공업체인 경남기업은 곧바로 119에 신고하지 않고 오전 9시5분께 회사 쪽 지정병원인 ㄴ병원에만 연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 구급차가 계속 오지 않자 공사, 관계자들은 사고가 발생한 지 45분이나 지난 오전 9시25분께에야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가 김씨를 싣고 인근 대형병원에 도착한 오전 9시32분까지 김씨의 맥박은 뛰고 있었지만, 결국 병원 도착 13분 만인 오전 9시45분께 숨을 거뒀다.

수서~평택 고속철도 공사구간에서 늑장 신고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3일 오후 5시30분께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마산리 수서~평택 고속철도 6-2 공구에서는 터널 공사장 암벽이 무너져 이주노동자 유센(24·타이) 등 2명이 숨지는 사고(<한겨레> 6월5일치 8면)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시공업체는 119에 신고하지 않고 회사 쪽 지정병원 구급차만 대기시킨 채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진행했다. 시공업체인 현대산업개발은 유센 등이 숨진 것을 발견한 뒤인 이날 저녁 7시53분께에야 평택경찰서에 신고했다.

이에 따라 공사를 총괄하는 철도시설공단과 경남기업이 사고가 외부에 알려지는 걸 꺼려해 지정병원에만 연락한 뒤 뒤늦게 소방서에 연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정우택 의원은 “두 사건 모두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면 소중한 인명을 잃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서울 노량진 수몰 사고와 해병대 캠프 사고 등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데, 공사현장과 같은 위험지역의 사고대응 매뉴얼을 재점검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남기업 관계자는 “현장에서 급하다 보니 안내판에 적혀있는 지정병원으로 연락을 한 것이다. 사건을 숨기려던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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