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추방과 차별의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

[기고] 고용허가제 10년을 맞아



By   /   2014년 8월 15일, 9:48 PM 

2014년 8월 17일은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된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10년을 평가하며 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해 경제 발전을 이루고 이주노동자들의 권익도 향상시켰다며 성공적인 ‘이주 관리 시스템’으로 정착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부의 평가와 달리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운동 진영과 진보적 단체들은 모두 이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사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가 도입할 때부터 격렬한 반발을 샀다.

당시 정부는 이 제도 시행을 앞두고 그 동안 한국에서 갖은 고생과 학대를 감내하며 일해 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강제추방을 자행했다. 법무부 출입국은 이주노동자 단속을 위해 ‘그물총’과 가스총을 사용할 정도로 잔인했다.

이 때문에 2003년 11월 15일, 전국 각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의 단속에 항의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서울, 안산, 마석, 창원, 대구 각지에서 농성장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전국에서 1천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농성장에 합류했다. 대표적인 이주노동자 저항의 기록으로 남은 ‘명동성당 농성 투쟁’도 이렇게 시작됐다. 명동성당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중단과 고용허가제 반대를 벌인 이 투쟁은 무려 380일 동안 지속됐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관용은 없다’며 강제추방의 광풍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제도가 법률로 제정된 2003년 8월 이후 지금까지 18명이 단속 때문에 목숨을 잃었고, 올 6월까지 무려 23만 명이 추방됐다.

차별

정부도 인정하듯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해왔다. 어느 나라에서건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얻어가는 이익보다 더 많은 기여를 이주한 국가에 제공해 왔다. 특히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국가들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주노동자들을 길러내는 비용을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정부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관리와 통제를 바탕으로 기업주들은 마음껏 이주노동자들을 부려먹을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들 중 절반이 매일 10시간 이상 일을 하고 70퍼센트 가량은 14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다. 열에 일곱은 휴일근무를 하고 80퍼센트 가량이 작업 현장에서 욕설 등 언어 폭력에 시달린다.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2011년).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는 지난 10년 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정부는 악명 높았던 ‘산업연수생제도’와 비교해 이주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됐다고 말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극도의 야만에서 벗어났다고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 제도는 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도 극도로 제약한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자에게 직장을 옮길 자유조차 없다는 것은 보통의 노동자들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처럼 ‘사업장 변경 원칙적 금지’라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고용허가제는 조금 더 ‘세련되게’ 이주노동자를 관리·통제하는 제도로 도입됐다.

특히 연이은 우파 정부 하에서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대다수 이주민들의 처지는 계속 악화돼 왔다. 이명박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생산성 대비 임금이 높다며 합법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 – 수습 기간 최저임금 미적용, 임금에서 숙식비 공제 – 를 사용주들에게 널리 보급했고 제한된 사업장 변경 권리조차 박탈했다. 이주노동자들은 가까스로 사업장 변경 허가를 얻은 뒤에도 구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사업주가 선택해주길 기다려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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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오후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철폐! 고용허가제 10년 규탄! 노동 3권 쟁취! 수도권 이주노동자 총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사진=노동자연대)

이를 이어받아 박근혜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출국 후에나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게 하는 사실상 퇴직금 강탈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윤의 압박을 받는 사업주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해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 후퇴시켜 온 것이다. 지금 한국에 있는 26만여 명의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이 이런 심각한 차별에 처해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주노동자 권익 향상 운운하는 것만큼 역겨운 일도 없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렇게 열악한 처우를 강요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들에게도 해로운 일이다. 정부는 고약하게도 경쟁하는 노동 시장 내 차별을 두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데 이를 이용한다.

단적으로 정부는 값싼 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 저임금 노동자 일자리를 위협한다며 내국인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를 적대하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내국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차별과 통제 강화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를 더 저렴하고 언제든 해고가 가능한 초유연 노동력으로 만들어 사업주들이 선호하도록 보장해 주는 것은 바로 정부 자신이다.

한국에 고용허가제 노동자를 비롯해 여러 다양한 체류 비자를 가지고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주민이 70만 명이 넘는다.

경제위기에도 이주노동자 수요가 줄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 기업들 중에는 젊은 이주노동자들의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 없이 돌아가지 않는 분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이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기업들이고, 가장 큰 수혜를 얻는 것도 기업들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내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아니라 바로 기업주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이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분열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된다.

이중 잣대

이 제도의 성공을 자축하면서도 정부 역시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정부의 지독한 단속 추방 정책과 여러 제재 조처들에도 불구하고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의 미등록 체류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이민자 대비 미등록 체류율은 11퍼센트 정도지만, 고용허가제 미등록 체류율은 20.7퍼센트에 이른다. 인신 구속 강도가 가장 높은 어업 분야의 미등록 발생율은 무려 37퍼센트이다. 지난 해 한국에 입국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인도네시아 노동자는 ‘일을 못한다’며 동료 선원들에게 죽을 때까지 폭행을 당해 끝내 사망했는데, 이 사례가 어업 이주노동자들의 극도로 열악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주노동자들 중에 가혹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거나 또는 체류 기간을 연장하지 못해 미등록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실, 이주노동자를 단기간만 고용하고 다시 돌려보내고 새로운 노동자를 들여오는 ‘단기 순환’ 정책은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한 적이 없다. 이주노동자가 기계가 사람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당연히 수년 간 체류하며 적응해 온 곳에서 더 머물기를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에 기여해 온 이주노동자들의 정주 권리는 원천봉쇄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쓴다. 상시적으로 단속을 하고, 출신국 정부들에 압력을 넣어 체류 기간 만료 후 돌아오지 않으면 거액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기, 미등록 체류율을 신규 인력 입국 쿼터에 반영해 불이익 주기 등등.

정부는 미등록 체류 이주민, 즉 정부가 즐겨 쓰는 용어대로라면 ‘불법체류자’를 사회악이라도 되는 양 비난하지만 이는 완전히 위선이다. 정부는 노동자들인 대다수 이민자들의 체류는 극도로 까다로운 규제를 가하지만, 사실 한국의 영주권은 5억 원 이상의 거액의 돈만 있으면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다.

법무부는 “대한민국 영주권! 지금 투자하세요”라며 ‘투자이민제’를 버젓이 시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주노동자들이 수년 동안 이 사회에 기여한 부와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는가. 게다가 미등록 체류자의 80퍼센트가 20~49세로 한창 왕성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어떤 수단으로도 미등록 체류를 완전히 막기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이제 이주노동자들 중에 숙련 노동자층이 생기면서 기업주들 자신이 이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주가 원하고 다소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일부 노동자들은 10년 가까운 기간을 체류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단기 체류 정책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정부는 이렇게 장기간 머문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영주권이나 국적을 얻을 수 있는 자격조차 주지 않는다. 또 일체 ‘합법화’에 대한 기대도 하지 못하도록 탄압을 강화하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정주를 막는 정부의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저항

이주노동자들이 늘고 정주하는 수가 늘수록 이주노동자들은 더 조직화되고 정부와 기업주들에 맞서는 방법들을 터득해 가기 마련이다. 산업연수제 폐지를 요구하며 싸웠던 1세대 이주노동자들처럼 말이다.

게다가 지금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매우 젊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더 많아 졌다. 이들은 부당한 차별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려고만 하지 않는다. 본국에서 민주화, 노동운동의 성장이 이주노동자들을 각성시키기도 한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SNS 등의 발달도 이주노동자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대처해 나가는 도움이 되고 오프라인에서의 조직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최근 몇 년 사이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제도 개악에 맞서 투쟁하며 이런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작업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태업, 조업 중단과 같은 방식으로 저항하는 일들도 없지 않다. 2011년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베트남 노동자들이 작업 중단으로 사업주의 양보를 얻어냈던 사건처럼 말이다.

아직 이주노동자 운동의 규모가 크지 않고 조직화 수준도 낮은 상태이지만, 이들은 저항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오히려 부족한 것은 이들에 대한 연대다. 버마의 한 이주노동자 활동가의 “우리 뒤에 우리를 지지하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있어 줘야 힘이 난다.”는 말처럼 연대가 이주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저항에 나서게 하는 매우 중요한 힘이다. 또 이주노동자를 방어하고 함께 싸운 연대의 경험은 대구 건설노조가 보여주듯, 노동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톡톡히 냈다.

이런 연대만이 정부와 보수 언론들이 부채질하고 강화하려는 인종차별을 약화시키고 맞설 힘을 제공할 수 있다.

지금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싸워 온 여러 노동, 시민, 인권 단체들은 고용허가제 폐지와 이주노동자들에게 완전한 사업장 이동의 자유, 5년 이상의 기본적 체류 보장,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권리,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정주 권리,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결사를 자유를 포함한 차별없는 노동관계법과 사회보장법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권리들을 함께 지지하며 연대를 확대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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