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종단 이주·인권위 “고용허가제 폐지하라”…공동행동 선언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농업 이주노동자 ㄱ씨는 경기 양주의 한 농촌으로 일터를 배정받았다. ㄱ씨가 머무는 가옥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 농장주는 논·밭에다 용변을 보면 된다고 말했다. 3개월이 지나 겨울이 되자 추위 때문에 더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한 ㄱ씨는 고용센터를 찾아갔나 “화장실이 없다는 점은 작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들었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직종 전환은 금지되며 동일 직종 내 작업장을 바꿀 때에도 고용노동부가 허가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주 앞에서 ‘슈퍼을’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고용허가제가 꼽힌다.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10주년을 앞두고 종교계가 고용허가제 폐지를 위해 공동으로 나섰다. 국내 4대 종단인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이주·인권위원회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도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며 “이주노동자 착취하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도입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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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이주·인권 위원회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 고용허가제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내팔 자비의 집 대표 정수 스님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주민소위원회 이재산 목사가 회견문을 읽고 있다.

4대 종단 이주·인권 위원회는 “고용허가제 하의 노동자들은 4년 10개월 체류기간 동안 단 한 번의 자발적 근무처 변경조차 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인 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2012년 관련법규를 개정하라는 권고까지 했으나 정보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지난달 말 변경된 개정 퇴직금 수령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들은 “7월 29일부터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퇴직금을 근로기준법에 따라 ‘퇴직 후 14일 이내’가 아닌 출국만기보험금의 형식으로 출국 후 14일 이내 받도록 됐으며, 지급오류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며 “외국인 체류에 대한 법무행정을 위해 노동자의 재산권을 빼앗겠다는 현 정부의 인권의식이 얼마나 천박한 수준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특히 고용허가제 하에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난해 보고서를 인용해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불리한 표준근로계약서와 4대 보험 미가입, 열악한 기숙사시설 등 비인간적 환경에서 노동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타 업종에 비해 성폭력 등 각종 폭력에 많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외면하는 정부의 현 정책이 종교적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책이 사라질 때까지 각 종단의 신도들과 국내외 이주 관련 기구와 연대해 한 목소리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주노동자 퇴직금 출국 후 수령제도 철회, 이주노동자들의 작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고용허가제 폐지 및 노동허가제 전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권고 이행을 주장했다.

이주노동자의 작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는 2007년 헌법 소원이 제기됐으며 현재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가 진행 중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김영록 의원실에서 ‘출국 후 퇴직금 수령’ 제도와 관련해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석원정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대표는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 차별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사업주에 대한 종속성을 강하게 만들도록 하는 등 태생부터 심각한 결함이 있었던 데다, 10년 간 교묘한 개정과정을 거치며 제2의 ‘산업기술연수제도’처럼 됐다”며 “종교계가 이 문제에 적극 나서게 된 데 환영한다”고 밝혔다.




4대 종단 이주민·인권 단체 대표 공동 기자회견, ‘현대판 노예제’ 고용허가제 폐지해야

근무처 변경 막는 등 노동권 침해 악법 시행 10년째
“노동허가제 전환 및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철회를”
발행일 : 2014-08-17 [제2908호, 5면]

천주교를 비롯한 불교·개신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이 올해로 시행 10년째를 맞은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천주교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전국협의회와 대한불교조계종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주민소위원회, 원불교 인권위원회 대표들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폐지에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 단체 대표들은 성명서를 발표해 “고용허가제 하의 노동자들은 4년 10개월의 체류기간 동안 단 한 번의 자발적인 근무처 변경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묵인 채 원치 않는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지난 2012년 8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주노동자들이 근무처 변경 과정에서 노동자의 모든 권리를 보장받도록 관련법규를 개정하라’는 권고를 했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들은 또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도’란 지탄을 받기에 이상할 것이 없는 제도가 되었다”면서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을 데려와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을 강제로 하게 하는 비인간적인 제도이자, 이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잔인하고 국제사회에 망신스러운 제도일 뿐”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이주노동자 퇴직금 출국 후 수령제도 철회 ▲이주노동자의 작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이주노동자 착취하는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로 전환할 것 ▲농축수산업 이주노동자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 권고를 즉각 이행할 것 등을 요구했다.

2004년 8월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정부가 기업에 대해 외국인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다. 4월 말을 기준으로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164만 명 가운데 45만 명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했다. 하지만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과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해 이주노동자들을 ‘일하는 기계’로 전락시켜 노예적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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