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도 못 받고 빚더미… 이주노동자들 “한국선 믿을 사람 없어요”

수정: 2014.07.30 22:19
등록: 2014.07.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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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부족하고 공무원들 위압적, 고용주 부당행위에도 속수무책

방글라데시인 임란 호사인(36)씨는 2011년 6월 경기 양주의 한 보온병 제조업체에 취직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고향의 동생을 위해 목돈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고된 일도 견뎌냈다. 그러나 2012년 7월 작업 중 목을 다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의정부 성모병원 의료진은 목 디스크이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부작용, 경과 등을 설명했지만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호사인씨는 알아듣지 못했다. 통역도 없었다. 그는 수술만 받으면 하루라도 빨리 일터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한글로 적힌 수술동의서에 서명했다. 수술 중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호사인씨는 영구장애 판정을 받고 지금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사인씨에게 한국은 지옥이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나 병원과의 소송 등 한국인에게도 쉽지 않은 절차들을 호사인씨가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호사인씨는 입국 전부터 목이 안 좋았다는 회사의 주장에 제대로 항변도 못했고, 결국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의료사고 소송에 쓰려고 법원에 요청한 비자 사실조회서는 석 달이 지나서야 발송됐다. 법원 담당자는 “전임자가 퇴사해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군색한 변명만 늘어놨다.

해결되는 것 없이 시간만 흐르면서 호사인씨는 한 달 400여만원에 이르는 입원비 등 총 6,600여만원의 빚을 떠안게 됐다. 30일 호사인씨는 “수술 받기 전 사고가 나면 어떤 구제절차가 있는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며 눈물을 떨궜다.

국내 체류 이주 노동자는 2005년 75만명에서 올해 6월 현재 170만명으로 10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고용주의 부당행위 등에 대한 이들의 민원을 해결해 줄 지원제도는커녕 기본적인 통역서비스조차 갖춰지지 않아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08년 산업재해를 당해 고향에 다녀오려고 출입국사무소에 재입국 허가를 요청한 네팔인 A씨도 황당한 경험을 했다. 담당 직원은 설명도 없이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어렵게 구한 비행기 표를 취소하면서 수수료까지 떼인 A씨는 시민단체인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조사결과 공장 기숙사를 주소로 등록했던 A씨는 몸을 다친 뒤 이주민 노동자 쉼터로 주소를 옮겼는데 출입국사무소에서는 원래 등록된 주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입국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A씨는 고향 방문을 포기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 노동자 B씨는 고용주의 불법 임금체불로 세 번이나 사업장을 옮겼다. 네 번째 사업장을 근무지로 등록하려고 찾은 고용센터에서 담당 공무원은 세 번까지만 변경할 수 있다며 등록을 거부했다. 불법 임금체불에 의한 사업장 변경은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데, 담당자의 실수였다. 사소한 실수로 B씨는 졸지에 불법 체류자가 됐다.

이재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장은 “이주민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를 보면 대부분 절차에 대한 설명만 들었어도 예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통역 인력이 부족한 데다 이들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태도가 피해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정기자 mj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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