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네팔 국적의 티베트 난민 라마 다와 파상(한국이름 민수)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자신의 티베트 음식점 앞에서 외국인등록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추석 연휴 동안 방송사들은 앞다퉈 외국인 특집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퀴즈를 통해 한국을 얼마나 잘 아는지, 한글을 얼마나 깨쳤는지를 시험하고, 한국과 한류를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줬다.

연휴를 코앞에 둔 5일,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한다는 민수(38)씨는 ‘당신은 한국인이 될 수 없다’는 판정을 다시 받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이승택)는 네팔 국적의 티베트 난민 라마 다와 파상(한국이름 민수)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귀화 불허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그가 “9년에 걸쳐 국내에 불법체류했고, 재개발 사업과 경찰의 공무집행을 부당하게 방해해 대한민국의 법적 안정성과 질서유지를 심각하게 저해했다”고 밝혔다. 2011년 어렵게 차린 식당이 입주해 있던 건물의 철거를 막으려다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공무집행 방해’ 벌금형 이유
법원 “정부 불허처분 적법”
“세 아이 손가락 빨게 할 수 없어
나섰던 일인데…” 크게 낙심

한국사회 기여 노려 보여주려 낸
활동증명·1천명 탄원서도 역부족
“아이들에 떳떳하기 위해 항소할 것”




민수씨는 재판에서 “불법체류 범칙금을 완납했고 재개발로 생업이 위협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방어적으로 철거를 저지하다 문제가 됐다. 한국인 배우자와 자녀 셋을 두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귀화 불허 처분은 과도하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황금돼지띠, 백호띠, 흑룡띠. 민수씨는 여느 한국인들처럼 길하다는 해마다 아이를 낳았다.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큰아이는 “다섯 식구 중에 아빠만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로 컸다. “나도 모르게 한국인이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쯩’이 없네요.” 10일 서울 종로구의 티베트 음식점 ‘포탈라’에서 만난 민수씨는 허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포탈라는 민수씨가 다섯 식구 생계를 책임지는 공간이다. 그가 벌금 500만원을 맞으면서까지 지켜내려 한 곳이기도 하다.

민수씨는 1997년 9월 입국해 불법체류하다 2006년 12월 한국인 이근혜(35)씨와 결혼했다. 2007년 1월부터 혼인에 따른 거주비자(F-2)를 얻어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귀화 신청을 한 민수씨는 지난 3월 법무부로부터 벌금형을 받았었다는 이유로 불허 통보를 받았다.(▷ 관련기사 : 소설 ‘나마스테’ 주인공 귀화불허…‘품행 미단정’ 때문?) 법무부는 ‘품행 단정’을 요구하는 국적법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행정소송까지 내봤지만, 법원은 민수씨가 아니라 법무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민수씨가 귀화 불허 이유에 상처를 크게 받은 것도 아이들 때문이다. “‘품행 미단정’을 아이들도 알게 되겠지요. 전과자가 된 것 같아요. 한국 아빠들도 내 처지였다면 똑같이 했을 거예요. 가장으로서 아이들 손가락 빨게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일인데….”

앞서 해당 재판부가 ‘품행 단정’이라는 요건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놓았기 때문에 실망은 더 컸다. 같은 재판부는 지난 5월 음주운전으로 인한 벌금을 문제삼아 귀화를 불허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민수씨는 그동안 자신이 한국 사회에 기여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A4용지 400장 분량의 서류를 법원에 내기도 했다. 법원이나 출입국관리소에서 티베트어 통역을 자원하고, 학교에서 다문화를 주제로 강연도 하고, 국내 유일의 티베트 음식점을 열어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이었다. 1000여명이 참여한 탄원서도 냈다.

“일종의 신원보증이잖아요. 1000명이 넘는 한국 사람들이 저를 믿어도 된다고 했는데, 그건 하나도 반영이 안 되고 (벌금만) 반영이 됐어요.” 민수씨는 “아이들한테 떳떳하기 위해” 항소하겠다고 했다.

진명선 김선식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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