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나 추석 같은 국경일이 가까워지면 쉼터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늘 같은 질문을 합니다.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나라별 언어로 번역하여 게시판에 붙여 놔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상담을 통해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하고,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날(아래 빨간날)이 유급휴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근로기준법에서 유급휴일로 정한 날은 '유급주휴일'과 '근로자의 날'(5월1일) 밖에 없습니다. 

'유급주휴일'은 1주일 동안 당사자 간에 일하기로 약속한 '소정근로일수'를 개근한 노동자에게 1일 이상을 부여하도록 하는 휴일입니다. 보통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은 일요일이 유급주휴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 일요일이 아닌 빨간날 쉬는 건 뭐냐고요? 그건 노사 간에 약속한 '약정유급휴일'입니다. 만일 노사 간에 유급휴일로 약속하지 않았다면, 빨간날이라 해도 평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쉬는 설이나 추석에 출근해서 일한다 하더라도 기본급만 지급받게 됩니다.

아무리 열악한 제조업체라 해도 한국인들에게 설날은 휴무일입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장님이 일하라고 하면 해야 합니다. 그것도 남들은 다 노는데, 기본급 받으면서 서럽게 일해야 합니다. 올해 한국 사람들은 징검다리 휴일을 포함해서 '9일 쉰다' 어쩐다 하는데,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멀어도 한참 먼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장님은 짠돌이', 보너스 구경해 본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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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체불 상담 중인 이주노동자들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임금체불을 상담 중인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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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온 말리(가명)은 경기도 외곽에 있는 한 박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박스 회사는 설과 같은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바쁩니다. 말리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 모두 인도네시아인들입니다. 사실 한국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사장님 말고도 공장장과 운전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장과 친인척간입니다. 

지난 추석 때 사장님은 열심히 일하면 보너스를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어찌나 바빴는지 공장장도 추석 전날까지 같이 일할 정도였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공장장이 없는 추석 당일에도 밤늦게까지 일했고, 보너스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추석 지나고 지금까지 보너스는 없었습니다. 

이번 설을 앞두고 공장장 본인은 사흘 동안 공장에 나오지 않을 거라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그동안 뭘 해야 하는지, 지게차는 누가, 어떻게 운전하는지...' 등 지시를 받았습니다. 말리가 물었습니다.

"설날 일하면 월급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똑같지!"
"네?... 빨간날, 보너스 안 줘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사장님한테 물어야지."

말리는 박스 공장에서 일하면서 사장님을 만나본 적이 몇 번인지 손으로 꼽아봤습니다. 일은 공장장이 시키고, 물건 관리는 운전수가 하기 때문에 사장님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습니다. 본다고 해도 서로 말을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장장은 사장님에게 물어보랍니다. 말리는 궁금증을 갖고 친구와 함께 이주노동자 쉼터를 찾았습니다. 

사실 말리가 일하는 회사는 쉼터에서는 '수단 좋기'로 이름난 회사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수단이 좋다'는 말을 '짠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알고 보면 편법에 능한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이주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귀국을 앞둔 이주노동자가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회사는 5인 이하 사업장이기 때문에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겼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가 4명이나 있었는데도요. 그러나 사장은 다른 한국인들은 가족이라 고용보험에 들지 않았다며 5인 이하 사업장이라고 우겼습니다.

당시 귀국하던 이주노동자는 4년 10개월이나 성실히 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이주노동자 쉼터를 통해 고용노동부에 진정하자, 근로감독관은 "2012년 말까지는 법정 퇴직금의 50%를, 2013년부터는 전액 지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당황한 듯한 눈치였습니다. 하루 8시간 넘게 일했을 때 50%를 가산하는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연차유급휴가수당 등 법정수당과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을 속셈으로 상시 5인 미만 사업장인 것처럼 속여 왔는데, 퇴직금 지급 명령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퇴직금 지급 명령을 받을 당시 사장님은 "다신 외국인들 안 쓴다"며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고용노동부를 나섰습니다. 그러나 퇴직금 지급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2명을 더 배정받았습니다. 

말리는 포함한 다섯 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은 이번 설에도 자신들끼리 공장을 돌려야 합니다. 명절에 일한다고 해서 '짠돌이' 사장님에게 휴일근로 수당 50%를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입니다. 

"사장님 일 안 해요, 공장장님 쉬어요. 우리도 일 안하면 안 돼요?"라고 묻는 말리에게 속 시원히 '안 해도 된다'고 대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다만, 회사 측에 '설에 일하면 휴일근무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일할 사람도 없는데, 단체로 근로거부를 하는 건 어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짠돌이 사장님이 쟁의행위를 한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마당에 쉽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그 회사 사장이나 공장장은 배포 하난 두둑한가 봅니다. 설 연휴 사흘을 포함해서 닷새 동안 이주노동자들에게 모든 일정을 맡기고 공장을 비우다니 말입니다. 그렇게 믿고 맡길 정도면 휴일수당만이라도 제대로 챙겨주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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