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10 17:11 수정 : 2015.03.13 15:29

인천공항 항공사 출국 수속대에서 여행객들이 길게 줄을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인천공항/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더(The) 친절한 기자들] ‘한국판 터미널’ 아프리카인의 ‘난민 인정 투쟁기’

이동의 자유없는 ‘송환 대기실’서 공중전화로만 외부와 소통
지난한 싸움 끝에 ‘난민 심사’에 회부…인정 여부는 불투명
변호인 “끔찍한 일 예상되는데 그렇게 쉽게 송환해선 안돼”

2013년 11월18일, ㅁ씨는 아프리카 고국을 떠났다. 이틀 동안 비행 뒤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비자 목적과 입국 목적이 맞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ㅁ씨의 비자는 단기상용(C-2) 비자였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은 ㅁ씨 도착 당일, 그를 태우고 온 중국남방항공사에 ‘ㅁ씨를 대한민국 밖으로 송환하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오전 10시55분 비행기로 편명까지 못박았다. 출입국관리법은 항공사가 입국 불허된 자를 자신의 비용으로 돌려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ㅁ씨는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한국 난민사에 첫 사례로 기록될 투쟁을 시작했다.

■ “난민 심사라도 받게 해달라”

‘난민 심사 회부 여부 검토중이라 결정 때까지 송환 말고 대기시키라.’

20일 중국남방항공사에 전달된 ㅁ씨 ‘송환 지시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입국에 실패한 그는 일단 입국한 뒤 난민 신청을 하려던 계획을 바꿔 난민 신청서를 공항 출입국관리소에 제출했다.

난민법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 누구에게나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청만 하면 난민으로 인정 받을 때까지 대한민국에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다. ㅁ씨처럼 ‘대한민국 안’에 들어오지 못해도 입국하면서 난민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법무부는 7일 안에 ‘정식 난민 심사 회부 여부’를 결정해 알려줘야 한다. 그에게 일주일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심사가 시작됐다.

 

“한국행을 준비한 경위를 설명해달라.”

“정부로부터 군 입대를 강요받은 날 현장에서 도망쳤다. (잠시 후) 복무기관으로부터 다음 날 입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내일 오겠다고 말한 뒤 교외로 내려가 한국행을 준비했다.”

“왜 말을 바꾸느냐?”

“말을 바꾼 게 아니다.”(*면담을 한 공무원은 ㅁ씨가 “아랍어와 영어를 조금 한다”고 하자 “아랍어 통역을 통한 면담에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ㅁ씨는 동의했다. 하지만 통역인의 국적은 ‘한국’, 면담에 사용된 언어는 ‘영어’였다. 말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사는 판단했다.)

“비자 발급을 위해 브로커를 언제 만났나?”

“2013년 9월초 입영을 피해 교외로 내려갔고 2주 뒤 돈을 빌렸다. 열흘쯤 뒤에 브로커에게 착수금을 줬고 1주일 뒤 잔금을 치르고 여권을 돌려받았다.”

“그렇다면 브로커에게 사증 발급을 부탁한 것이 9월말인가?”

“돈을 주려고 만난 것은 9월말이었다.”

“당신 여권에 있는 대한민국 사증은 2013년 9월5일 신청, 9월8일 발급된 것이다.”

“(말을 바꿔) 복무 기관 방문 전인 8월말께 브로커에게 여권을 줬다.”

“왜 난민 인정 신청을 했나?”

“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강제 징집 때문이다. 귀국할 경우 구속될 것 같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난민을 신청할 목적이었느냐?”

“그렇다.”

“왜 군 입대를 거부하느냐.”

“전쟁이 같은 형제·자매를 죽이는 데 이용되기 때문이다. 내가 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들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판결문에 인용된 면담 자료를 근거로 재구성)

 

26일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장은 ㅁ씨를 난민 인정 심사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입영 사실 통보에 대한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박해라고 주장하는 내용도 자국 내의 법률상 다툼으로 인한 개인적인 문제로 보인다. 입대를 거부하고 도망쳤는데도 합법적으로 발급 받은 여권과 비자를 소지했고 자국 공항을 문제 없이 통과한 점이 의심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 무법 감금시설 ‘송환 대기실’

귀국할 수 없는 ㅁ씨는 싸우기로 했다. 싸움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가 머물러야 할 곳은 송환대기실(정식 명칭은 출국대기실)이었다.

송환대기실은 입국하지 못한 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다. 국경 안으로 들이지 않은 이들을 한국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 민간업자인 항공사의 몫이다. 2012년 2월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유관기관들과 회의를 열어 ‘송환대기실은 인천공항 항공사운영협의회가 운영·관리하고,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임대료만 부담한다’고 결정했다.

인천공항 3층에 있는 송환대기실은 330㎡크기다. 이 곳에는 샤워실, 의자, 공중전화기, 음료수대, 화장실, TV가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침대나 침구는 없다. 하루 이틀 머물다 떠나는 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어 출입도 자유롭지 못하다. 공중전화로만 외부와 소통이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삼시세끼 ‘치킨버거와 콜라’만 나오는 식사다. 2011년 송환대기실에 머물렀던 에티오피아 난민 ㄱ씨도 70여일 동안 치킨버거와 콜라만 먹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외국인이라 한식은 잘 못 먹을 것 같아 햄버거로 메뉴가 정해졌고, 무슬림이 있으니 닭고기로 좁혀진 것 같다는 게 법무부와 출입국관리본부 쪽 설명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치킨버거뿐 아니라 소고기와퍼도 선택할 수 있다. 본인이 비용을 내면 다른 메뉴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송환대기실이 법적 근거가 없는 ‘무법 시설’이라는 점이다. 출입국관리법 56조는 입국 거부된 자를 최장 48시간 ‘일시 보호’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시보호는 외국인보호시설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설은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있어 공항에서 멀다. 오고가는 데 시간이 걸리고 보안 유지도 어렵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번거로운 외국인보호시설 대신 출입국관리법이 규정한 또다른 절차, 송환지시서를 활용해왔다. 항공사에 문서를 보내기만 하면 항공사가 자신들의 비용으로 알아서 해결하니 간편하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 책임을 넘겨받은 항공사는 송환대기실이라는 정체 불명의 민간 구금시설에 이들을 가둬왔다.

  

■ 법률 투쟁 시작

ㅁ씨는 세가지 쟁점에 대해 싸움을 시작했다.

첫째는 ‘왜 난민 심사조차 못 받게 하는가’였다.

2013년 7월1일 ‘아시아 국가 중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난민법이 시행됐다. 난민법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 모두에게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신청만 하면 난민 인정 여부 결정이 확정될 때까지 대한민국에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자격을 준다.

동시에 ‘대한민국 안’으로 들어오면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줬다. 언뜻보면 신청인을 위한 신속 해결 절차로 보인다. 그러나 ㅁ씨처럼 입국하면서 신청할 경우 정식 난민 심사에 넘길지 여부에 대한 심사, 즉 사전심사를 받아야 한다. 단계가 하나 더 생긴다는 뜻이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의심 인물’을 걸러내는 데 익숙한 법무부는 이 절차를 통해 난민이 되고자 하는 자를 돌려보내고 있다. 난민인정심사 기회 자체를 봉쇄하는 ‘불회부 결정’은 난민협약 제33조, ‘국경에서의 거부’에 해당하는 위법 처분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2013년 11월28일, ㅁ씨는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모두 그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은 신청자가 난민인정제도를 남용하는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 내려져야 한다. 다소 의심의 여지가 있을 땐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해 신중히 심사받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법원은 “다른 입국 사유를 내세워 국내에 들어와 어느 정도 시일이 경과한 뒤 난민 신청을 한 경우와 비교했을 때 입국 당시부터 난민신 청을 한 이를 불리하게 대우할 이유가 없다”며 “‘난민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만으로 불회부 결정이 남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둘째는 ‘왜 가두는가’였다.

2012년을 기준으로 1만3468명의 입국 거부자가 이동의 자유가 없는 송환대기실에 ‘구금’돼 왔다. 정부는 ㅁ씨처럼 돌아갈 자유가 없는 난민 신청자에게도 ‘원하면 얼마든지 귀국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대며 구금을 정당화해왔다.

ㅁ씨는 송환대기실에서의 구금이 인신보호법이 금지한 수용에 해당한다며 법원에 구제를 청구했다. 1심에선 졌지만 2·3심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송환대기실은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수용시설이다. 청구인을 송환대기실에 무려 5개월가량 대기하게 한 것은 그 기간에 비추어 심대한 신체의 자유 제한으로 수용(收容)에 해당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5월2일 ㅁ씨는 송환대기실에서 환승구역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입국 불허 상태는 유지됐다. ㅁ씨가 입국하지 못하고 환승구역 안 면세점을 떠돌자 20여일 후 법무부는 그를 입국시켰다. 법무부 관계자는 “워낙 장기간 구금돼 있던 상태라 변호인과 협의해 입국을 허가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송환대기실은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있다.

셋째는 ‘왜 변호인 접견을 막는가’였다.

송환대기실에 구금된 외국인들은 외부의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사건 담당 영사 등 각국 외교관뿐이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공중전화뿐이다. ㅁ씨 변호인들은 전화로 그와 소통을 이어가다가 지난해 4월25일 변호인 접견을 신청했다. 하지만 ‘선례가 없다’, ‘변호인 접견을 허가할 의무나 권한이 없다’ 등의 이유로 거부당했다.

변호인은 신체의 자유가 국가로부터 구속된 인간의 변호인 접견권을 보장한 헌법 12조를 근거로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지난해 6월5일 가처분을 인용하는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신청인이 소송 제기 후 5개월 이상 변호인을 접견하지 못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심각히 제한 받고 있다. 변호인 접견을 즉시 허용한다 하더라도 출입국관리, 환승구역 질서유지 업무에 특별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인용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한 투쟁 끝에 ㅁ씨는 지난달 10일 정식 난민인정심사에 회부됐다. 결정까지는 통상 6개월이 걸린다. 한국 난민사에 길이남을 판례를 남겼지만 정작 본인은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요구한 것이 ‘심사라도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ㅁ씨의 변호를 맡은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도 위법한 불회부 결정을 다투려는 한 난민 신청자가 변호인과 접견 약속을 잡았는데도 경위를 알 수 없게 송환되었다. 많은 난민 신청자들이 심사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송환되고 있다. 그런 결정이 낳을 수 있는 끔직한 결과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인간을 그렇게 쉽게 돌려보내서는 안된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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