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우리는 한달에 걸쳐 서울에서 육로와 해로를 거쳐 제주도로 넘어왔다. 더 이상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100일이 갓 넘은 아이와 함께 우리의 힘으로 시작해야 했다. 제주도에서는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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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 빌린 별장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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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로 귤밭의 농장주를 만났다. 1달간 일하게 될 곳이 어떤 곳이고 농장주는 어떤 분인지 궁금하여 인사차 방문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농장주는 귤 2박스를 주시면서 2주 후에 보자고 했다.

귤밭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멀어서 제주도로 이주하기 위해 사전답사차 온다는 가족에게 우리의 공간을 공유했다. 그리고 지인을 통해 귤밭과 가까운 곳에 비어있다는 별장을 빌려 지내기로 했다.

2주 후, 약속 날짜에 맞추어 가보니, 농장주가 귤밭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일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별장에는 이전에 펜션을 짓느라 중국인 노동자들이 지냈는데 임금을 받지 못해 방과 거실을 점거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어버린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별장에서 머물면서 다른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중국인 노동자분들이 방 한 개를 내주어서 같이 생활하게 됐다.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지만 아이 덕분에 분위기가 풀어졌다. 중국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에게도 중국에 두고 온 어린 아이들이 있어서, 자신의 자식처럼 놀아주고 예뻐해줬다.

한국인 브로커가 중국인 노동자들의 한달치 임금을 갖고 도망가는 상황이 되어, 중국인 노동자들은 이곳에 머물게 됐다고 했다. 그들은 제주도에서 그동안 어선에서 선원으로 일하거나 농장에서 밭일을 하거나 건물 짓는 일들을 했다고 한다. 인력업체에 700만 원씩이나 주고 빚을 내고 왔다고 했다. 타지에 나와 가족부양을 위해 고되게 일을 해서 번 돈인데, 그 돈을 횡령하는 일을 직접 보게 되니 안타까웠다.

중국인들은 매일같이 낚시해서 잡아온 생선으로 회를 뜨거나 매운탕을 먹으면서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니 미안함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활한 지 며칠 후, 중국인들은 말없이 별장을 떠났다. 한국인 브로커가 경찰서에 전화해 불법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고 신고한 것이었다.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벌어진 일은 우리에게 벌어질 일을 예고한 것인가? 우린 제주도에 여행오는 사람들도 많고 귤농장이 많기에 워킹홀리데이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우선, 우리부터 경험을 쌓고 사람들과 나누는 게 필요하기에 다른 귤밭이라도 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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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선과장 일터 현장
ⓒ 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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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토박이 지인의 소개로 남편은 귤밭에서 일하다가 선과장에서 일했다. 귤밭에서는 할머니들의 구수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서로 돌보면서 일하는 분위기였다. 귤밭에서 일한 지 2주일쯤 지나자 농장주는 매일같이 새벽녘에 선과장으로 오라고 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귤 컨테이너 나르는 일을 기계처럼 하니, 집에 왔을 때 녹초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계획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이사를 가게 되면서 농장주에게 일을 그만두니 다른 사람을 채용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반응이 없어서 남편은 일을 그만 두고 나왔다.

농장주에게 한달여 일한 것에 대해 임금을 입금해 달라고 했지만 1달이 지나도 입금을 하지 않았다. 중국인 노동자와는 다른 상황이지만 임금을 농장주가 가로채간 것이다. 제주맘까페에 이러한 상황을 공유하니 임금체불이 비일비재한 듯했다.

제주도에서는 집이나 노동을 할 때, 문서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에는 피해를 당하기가 쉽다. 지인 중 공인노무사에게 조언을 구하니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근로계약서 없이 일을 하게 되면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다행히 노동부가 중재를 해주어 노동청에서 3자대면 후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말이 통하고 지인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려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이 없는 외국인으로서는 불합리한 대우나 임금체불시 해결이 어려운 듯 보였다. 특히나,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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