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난민몸살> 아시아에선 '차별민족' 목숨 건 탈출

이슬람교도 로힝야족, 국적 인정받지 못해 떠돌아
태국·말레이시아 등서 인신매매캠프·무덤 잇따라 발견

(방콕=연합뉴스) 현경숙 특파원 = 지난달 1일 말레이시아와의 접경지대인 태국 남부 송클라 주 산간 지방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30여 기와 시신 26구가 발견됐다.

이는 최근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로힝야족 난민 사태의 비극을 알리는 본격 신호탄이었다.

이어 태국 남부 지역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을 감금하는 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캠프 4개가 추가로 발견됐으며, 말레이시아 북부 국경지대에서도 로힝야족 난민들의 시신이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무덤 139기와 인신매매 캠프 28곳이 발견됐다.

동남아시아 판 신(新)나치수용소라고 일컬어지기까지 했던 인신매매 캠프와 무덤의 발견은 동남아는 물론 전세계에 로힝야 난민 위기에 대한 경고음을 울렸다.

로힝야족은 국적을 인정받지 못해 나라와 나라 사이를 떠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핍박받는 민족이자 동남아의 버려진 민족으로 통한다.

로힝야 난민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로힝야 난민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에 대부분 거주하는 이슬람교도들인 이들은 미얀마 정부의 차별, 미얀마 주류 국민인 불교도의 박해를 피해 이 나라를 탈출해 자신들과 종교가 같은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주로 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태국은 이들을 밀입국, 밀항시키는 중간 기착지, 경유 국가가 되고 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에 80만∼130만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나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방글라데시에서 밀입국했다며 국적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2년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에서는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과 주류 주민인 불교도 사이에서 종교, 종족 분쟁이 발생해 200여 명이 숨지고 14만여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 분쟁이 발생하고 나서 로힝야족들의 미얀마 탈출은 본격화됐다.

미얀마 정부가 지정한 난민 수용소에서 먹을 것과 마실 물조차 부족한 상태에서 처참한 억류생활을 하거나, 불교도들로부터 언제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로힝야족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 미얀마에서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멀리는 중동이나 호주로의 밀입국을 시도해왔다.

이 과정에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국제 인신 매매 조직이 개입해 이들에게 밀항과 밀입국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금전을 갈취했으며, 추가로 웃돈이나 몸값을 받기 위해 이들을 감금하고,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살해하기도 했다.

국제 인신 매매단은 어선을 개조한 허술한 선박에 로힝야족 수백 명을 실어 태국 남부에 상륙시킨 뒤, 이들을 산속 비밀 캠프에 대기시켰다가 말레이시아로 밀입국시켰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국경지대에서 발견된 난민 캠프들은 인신 매매단이 로힝야족 난민들을 감금하는 데 이용했던 장소들이다.

지난달 26일 말레이시아 북부 국경지대에서 로힝야족 시신들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130여 기가 발견됐다(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태국 남부에서 난민 캠프와 무덤들이 발견되고 나서 태국 정부가 국제 인신매매 조직과 난민들의 밀입국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자 로힝야 난민들을 실은 선박들은 태국 해안에 상륙하지 못한 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표류하는 것이 잇달아 발견됐다.

지난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등의 해안에서 발견된 이들 선상 난민(보트 피플)들은 5천여 명에 달한다.

로힝야 난민들이 해상 표류 도중이나 인신매매 캠프에 감금됐던 기간에 겪었던 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모하마드 토하(23)는 1년 전 탈출한 말레이시아 국경지역 왕켈리안 소재 수용소에서 친구가 몸값을 지불하지 못해 구타당한 끝에 숨졌다고 전했다.

그는 "수용소 관리인들이 내 친구에게 말레이시아에 갈 수 있게 풀어주는 대가로 8천 링깃(242만 원)을 요구했지만, 미얀마의 브로커에게 땅과 집을 담보로 잡은 돈을 다 줘서 없다고 하자 철봉 등으로 집단 구타해 친구가 나흘 뒤 숨졌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아체주 랑사에서 구조된 로힝야족인 마누 아부둘 살람(19·여)은 "보트 생활이 이토록 참혹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미얀마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800여명의 난민과 함께 목선에 올랐던 살람은 물과 음식이 바닥나면서 날카로워진 난민들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면서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살람은 "방글라데시인들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우리(로힝야족)를 공격해 오빠가 죽었다. 시신들은 바다로 내던져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구조된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 사이둘 이슬람(19)도 "석 달간 표류하면서 굶주림과 부상으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면서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물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선장은 우리를 채찍으로 때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태국과 말레이시아 국경지역인 파당베사르의 한 인신매매 임시 수용소에 8일간 있었던 누르 카이다(24·여)는 "매일 밤 2∼3명의 젊고 예쁜 로힝야족 여성이 경비원들에게 끌려나갔다"며 "집단 성폭행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동남아시아 안다만해에 우기가 시작되고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등이 국제 인신 매매단에 대한 단속을 벌임에 따라 로힝야 보트 피플은 더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인신 매매단이 이들을 배로 실어나르지 못하게 됨에 따라 로힝야족들이 당분간 밀입국과 밀항을 시도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다만 해역에서 우기가 끝나는 올해 11월에는 로힝야족 난민들의 미얀마 탈출이 재개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얀마 정부가 국적 인정, 차별 철폐 등으로 로힝야족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로힝야족 권익단체인 아라칸 프로젝트는 2012년 불교도와 로힝야족간 대규모 유혈충돌 사태 이후 3년간 미얀마를 벗어난 로힝야족이 1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단체는 "적어도 로힝야족 10만명이 미얀마를 떠났다"며 "이는 미얀마 전체의 로힝야족 인구의 10%에 달하는 수치"라고 밝혔다.

올해 10월 말~11월 초에 총선을 실시할 예정인 미얀마 정부는 불교도의 표를 의식해 로힝야족에게 국적을 인정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로힝야족들의 시련은 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다아체<인도네시아>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로힝야족 난민들이 지난달 20일 인도네시아 아체주 해상에서 인근에 있는 인도네시아 어선들이 구조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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