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난민 12만 분산 수용' 갈 길 멀다

헝가리·그리스·伊 체류자 할당안
각료회의 통과… 동유럽 강력 반발
“獨·佛 등 힘의 논리 앞세워 관철”
체코,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 검토

유럽연합(EU)이 22일(현지시간) 격론 끝에 난민 12만명 분산 수용을 결정했다. 하지만 합의 내용과 과정을 둘러싼 진통은 여전하다. 동유럽 국가들은 “다수의 횡포”라며 향후 난민정책에서 EU 지침보다는 자국 주권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23일 “EU 각료회의 결정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조만간 밝혀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EU 내무·법무장관들은 전날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각 회원국이 난민 12만명을 추가로 수용하는 난민 강제할당안(쿼터제)을 표결에 부쳤다. 이주(솅겐 조약)·난민(더블린 조약)에 관한 EU 합의안이 만장일치가 아닌 표결로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8개 회원국 가운데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헝가리 등 4개국이 반대했고 핀란드는 기권했다.

“침략자들을 막자” 유럽연합(EU) 각료회의가 각 회원국의 난민 12만명 분산 수용을 결정한 22일(현지시간)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열린 ‘난민 강제할당 반대’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침략자들을 막아라’라고 적힌 피켓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리가=EPA연합뉴스



난민쿼터제는 헝가리와 그리스, 이탈리아에 있는 난민 12만명을 EU 회원국들이 분산 수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들 3개국이 지난 2년 동안 중동·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약 48만명의 이주민 가운데 시리아·이라크·에리트레아 난민들을 선별하면 각 회원국이 EU집행위원회로부터 난민 1인당 6000유로(약 800만원)씩 지원 받아 자국에 정착시킨다는 안이다. 할당인원은 난민의 선호지와 경제 규모 및 상황 등을 감안했다.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이 16만명(지난 5월 할당인원 4만명 포함) 가운데 약 55%인 9만여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EU 회원국이지만 망명정책 면제국인 영국과 덴마크 등은 할당 대상에서 제외됐다.

EU의 난민 분산수용안은 23일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최종 추인될 예정이다. 동유럽 정상들은 이 자리에서 EU 각료회의 결정 내용과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따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EU 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조약이나 난민 최초 도착국에서 행정처리를 담당한다는 더블린조약 개정 여부도 논의될 것으로 전해졌다.

동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난민이 독일이나 영국 같은 서유럽에 정착하길 바라는데 가뜩이나 경제난에 허덕이는 자신들까지 왜 난민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지 불만을 갖고 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내가 총리로 있는 한 슬로바키아가 난민을 수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별렀다.

특히 이들 국가는 이주나 난민 정책은 회원국 고유의 결정사항인데도 독일과 프랑스 등이 힘의 논리를 앞세워 강제할당을 관철했다는 점에서 분개하고 있다. 밀란 호바네츠 체코 내무장관은 “오늘(22일)은 상식이 패배한 날”이라며 EU 각료회의 결정을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헝가리 정부는 “이번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EU의 이민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국가들은 고유의 법적 체계와 기본 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