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허기진 군상] (8)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 법의 사각지대 방치된 여성 이주자들
박용필·김지원 기자 phil@kyunghyang.com
ㆍ노동착취 → 빈곤 → 가정폭력 악순환…“한국말 서툴면 더 차별”

한국에 일하러 들어온 이주노동자, 한국인과 결혼해 들어온 이주여성 대부분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작업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가정에서 폭력과 착취에 시달려도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 않다. 섣불리 문제를 제기했다가는 이 땅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법이 그렇게 돼 있다. 선택지는 셋 중 하나다. 묵묵히 견디는 것,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것, 강제 출국당하는 것. 이들에게 가해지는 건 구조적 착취, 구조적 폭력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지난해 2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의 정당한 노동 대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당시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이사장인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이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에게 공연을 시키고 월 임금 60만원, 하루 식대 4000원을 지급하고 여권을 압수하는 등 노동 착취를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남 기자


■폭언·협박에 노출된 일상

캄보디아에서 온 ㄱ씨(32·여)의 스마트폰에는 고용주의 고성과 ‘X발 것들’ ‘X랄 떨고 있네’ 등 욕이 선명하게 녹음돼 있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며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게 해달라고 ㄱ씨가 요구하자 폭언을 쏟아낸 것이다. 다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ㄴ씨(33·여)가 녹음한 내용엔 고용주의 성희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고용센터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숙소의 가스랑 전기 다 끊어버리겠다. 나가라”며 ㄴ씨를 다그치던 업주는 고용변동 서류에 사인이라도 해달라는 ㄴ씨에게 “사인 못해준다. 사인을 어디다가 해줘? 네 가슴에?” 같은 말을 3~4차례 반복했다. 고용변동 서류에 사인을 받지 못한 채 업장을 이탈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하지만 숙소의 가스와 전기를 끊으면 당장 지낼 수가 없다.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ㄷ씨가 하루 12시간 근무 중 손을 움직이지 않는 시간은 점심이나 저녁 식사시간 정도다. 공장의 한국인 직원들 몫까지 일을 해야 한다. 한국인 직원들은 ‘직장 동료’가 아닌 ‘또 다른 사장님’이나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일을 ㄷ씨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넘긴다. 업주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랬다간 “일하기 싫으면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답이 돌아올 게 뻔하다.

■이직·전직 못하는 노예계약

이주노동자 ㄹ씨(33·여)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일한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0시간 반을 일한다. 휴일은 한 달에 두 번이다. 최저임금(시급)을 적용해도 한 달 150여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 받는 임금은 110만원 정도다. 사업주에게 따지면 “식비, 숙소비 등을 제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근로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이주노동자에겐 최저임금조차 ‘그림의 떡’인 셈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는 입국하기 전 이미 일할 사업장이 정해진다. 그리고 국내 체류기간 3년 동안 사업장을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 옮기려면 사업주가 고용종료나 고용변동에 동의해줘야 한다. 다만 ‘사업장 폐업’ ‘임금 전액 또는 30% 이상을 2개월 이상 체불’ 등의 경우에 한해 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 요건에 맞지 않으면 임금깎기, 초과노동, 폭언, 열악한 근무환경에 처해 있어도 사표를 낼 수가 없다. 그래서 ‘현대판 노예계약’이라고 불린다. 운이 좋아 사업장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져도 3개월 안에 새로운 사업장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이주노동자는 스스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지역고용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알선받아야 하지만, 센터가 기한 내에 일자리를 찾아주지 못해 강제로 출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닐하우스에서 씻고, 먹고, 자고

충북의 한 농장에서 일하는 ㅁ씨(33·여)의 숙소는 농장 옆 비닐하우스다. 콘크리트 바닥에 놓인 낡은 가스레인지와 고장난 세탁기가 세간의 전부다. 빨래는 콘크리트 바닥에 뚫린 배수구 옆에서 손으로 한다. 한겨울에도 그곳에서 샤워를 해야 한다. 잠은 구석에 따로 마련된 2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잔다. 화장실은 농산물 집하장 옆에 세워진 간이 공용화장실을 이용한다.

지난달 충남 논산의 한 농장주는 고용된 이주노동자에게 숙소 사용료로 월 45만원, 쌀값과 가스 사용료로 10만원을 요구했다. 숙소는 농장 옆에 마련된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였다. 주위엔 허허벌판뿐인 외진 농장이라 달리 묵을 곳이 없었던 이주노동자는 그곳을 숙소로 사용하고 월급의 3분의 1을 떼였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주노동자는 스스로 방을 구하기가 힘들다. 사업주가 숙소를 제공하지 않으면 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부 악덕 고용주들은 공장 옥상이나 농장의 비닐하우스를 숙소랍시고 제공하고 월세 30만~40만원을 받는다. 숙소가 허름하거나 비싸다고 이탈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언어·문화장벽 ‘이중고

국내에 들어온 이주민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언어’다. 한국어가 서투른 이주민은 가족관계부터 구직, 자녀교육 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차별을 겪는다. 몽골에서 온 ㅂ씨(42·여)는 2010년 한국에 왔을 당시 ‘말 못하는 설움’이 가장 컸다고 했다. 그는 “(가게나 관공서에 갔을 때) 한국인이 아닌 것 같으면 설명도 건성이고 대우가 확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면서 “나중에 말을 잘하게 되고 이름도 한국 이름으로 바꾼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니고서야 사회의 일원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결혼이민을 온 ㅅ씨(25·여)는 2013년 이혼한 후 한동안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한국말을 잘 못하고 법률, 문화에 어두운 점을 악용해 시부모가 “이혼했으니 법적으로 아이를 만나선 안된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하지만 법률 상담을 받은 후 교섭권을 신청해 한 달에 1회 정도 아들을 만나고 있다. ㅅ씨는 “이혼 전에도 말을 못해서 만삭일 때조차 시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김장 수백포기를 혼자 해내야 했다”면서 “속상한 것이 있어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중국에서 온 ㅇ씨(39)는 지난 8월 인천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목수로 일하다 약 3m 높이의 발판에서 떨어져 전치 5주의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현장소장, 용역회사는 서로 책임을 미루기만 했고 약값도 주지 않았다. 그는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아 소장에게 전화를 했는데 말이 빨라서 알아듣기 어려웠고, 혹시 내게 불리한 말을 유도해서 녹취를 할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체계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한국어센터는 낮 시간에 강좌를 연다. 주간에 일하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시간을 낼 수 없다. 베트남에서 온 ㅈ씨(30·여)는 “집 근처에 센터가 있지만 일하는 시간과 맞지 않아 한국어를 배우기 힘들다”면서 “한국에 온 지 5년째인데 알음알음 배우고 있다. 일상대화는 무리 없는 수준이지만 아직도 ‘출금’ ‘이체’ 같은 어려운 단어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빈곤과 가정파탄의 악순환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ㅊ씨(40)는 10년 넘게 이어져온 가정폭력의 원인으로 ‘가정형편’을 꼽았다. 그의 남편(62)은 드문드문 경비일을 나가는 것 외엔 벌이가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자연히 멀리씨가 가장이 됐지만 한국어가 서투르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불공장, 양계장 등의 일밖에 구하지 못했다. 도중에 골병이 나서 1년이나 쉴 정도로 일이 고됐다. 돈이 없을 때마다 남편은 그녀와 아이들을 때렸다. ㅊ씨는 “2005년 결혼하자마자 첫아이를 임신했는데, 돈을 벌어야 하는데 임신해서 남편이 싫어했다”면서 “이듬해 둘째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았을 때도 낙태를 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ㅋ씨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한 뒤 악몽이 시작됐다. 남편은 매일같이 어린 아들 둘과 그녀에게 폭력, 폭언을 퍼부었다. 결국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쳤다. 그러나 3살, 5살 아이 둘을 반일제 어린이집에 보내고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제 아르바이트 정도밖에 없다. ㅋ씨는 “아이들이 엄마랑 있는 시간이 적다보니 언어 발달도 늦고 주눅이 들어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다”면서 “내가 고생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아이들이 다른 애들한테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