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200만 시대> ②달라지는 풍경, 한국 속 외국

서울 광희동 '몽골타운'
서울 광희동 '몽골타운'
서울 한복판에 '다문화 거리' 속속 등장…고령화 지자체도 활기 
농어촌에선 결혼이주여성 '자조 모임' 북적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1.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동대문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나와 골목을 걷다 보니 가게 간판마다 낯선 외국어가 적혀 있던 것. 영어도, 중국어도 아닌 생소한 문자는 바로 몽골어였다.

이곳이 이른바 '몽골 타운'임을 알아차린 A씨.

어디선가 양고기와 향신료 냄새가 풍겨왔고, 키릴 문자로 간판을 단 식당·환전소·미용실·은행 등에서는 몽골 TV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는 잠시나마 서울이 아닌 몽골에 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2. 경기도 안산시 안산역 근처의 번화가.

멀리서 보기엔 평범한 거리 같지만 가까이 가보면 '반전'이 숨겨져 있다.

간판에 적힌 말이 온통 외국어인 데다가 얼핏 세어 봐도 대여섯 개 언어가 뒤섞인 것.

중국어로 쓴 PC방 간판 옆에 러시아어 여행사 광고판과 베트남 쌀국수집 간판 등이 나란히 붙어 있고, 조금 멀리에는 이슬람 사원도 있다.

히잡을 두른 여인, 가방을 멘 흑인 남성, 두리안을 배달하는 동남아 청년 등이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여기는 과연 어느 나라인 걸까.

◇ 대도시 한복판에도 '다문화 동네' 속속 등장

'외국인 200만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숫자로만 봐서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외국인 이주민은 어느새 한국 사회의 새로운 이웃으로 스며들었다.

이들이 등장하면 가장 먼저 거리 풍경부터 바뀐다. 이른바 '다문화 동네'는 서울에만 30여 곳에 이른다.

한남동(미국·유럽), 이태원(이슬람·아프리카), 서래마을(프랑스), 이촌동(일본)같이 널리 알려진 외국인 동네부터 광희동(몽골), 창신동(네팔·파키스탄), 혜화동(필리핀)처럼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동네도 많다.

안산 다문화 거리
안산 다문화 거리

이 중에서도 광희동 '몽골 타운'은 서울에 거주하는 몽골인 4천400여 명(이하 행정자치부 통계 기준)에겐 마음속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1990년 한국과 몽골이 수교하면서 '보따리 장사'를 시작한 몽골인이 동대문시장 근처에 터를 잡은 게 시초가 됐다.

'몽골 타워'라고 불리는 10층짜리 건물에 가면 몽골인의 손맛이 담긴 현지 음식도 맛볼 수 있다.

2006년 한국에 들어와 '잘루스' 식당을 운영하는 바얄마(45) 씨는 "한국 음식은 몽골 사람들에게 너무 매워서 몽골 전통식당을 차리게 됐다"며 "한국인 중에서는 몽골 유학이나 여행을 앞두고 시험 삼아 몽골 음식을 먹어보려는 사람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몽골 타운 옆에는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음식을 선보이는 식당 10여 곳도 성업 중이다.

혜화동 '리틀 마닐라'는 일요일마다 필리핀어로 미사를 올리는 혜화동성당을 중심으로 필리핀 장터가 열려 필리핀 이주민뿐만 아니라 한국인 나들이객의 발길로 북적이는 곳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장 영역을 확장한 이주민은 단연 조선족이다.

대림동·신길동을 잇는 '영등포 차이나타운'에만 5만6천여 명이 모여 사는 것으로 추정되며 구로구의 구로동·가리봉동, 금천구 가산동·독산동 등에도 동마다 각각 수천 명이 거주한다.

이들을 상징하는 '붉은 간판'은 광진구 자양동으로도 퍼져나가 조선족 유학생·전문직 종사자 등 1만4천여 명이 '신(新)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 지자체에 부는 새바람…지원 조례도 제정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경기도 안산이 대표적인 다문화 동네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가 1990년대 중반부터 안산 공단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8만4천여 명의 이주민이 터를 잡은 '다문화 1번지'가 됐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수십 개국에서 몰려온 이주민은 원곡동 일대를 '작은 아시아'로 변모시켰고 안산이주민센터 등 시민단체는 이들에게 버팀목 역할을 했다.

센터 관계자는 "잊혀가는 변두리가 될 뻔했던 안산에 이주노동자들이 찾아오면서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업도시가 됐다"면서 "이들이 한국 사회의 건강하고 당당한 이웃으로 자리매김하도록 '국경 없는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금 멀리 눈을 돌리면 광주광역시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찾아온 고려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겉보기엔 평범한 주택가 같지만 고려인 전통음식점, 다문화 어린이 대안학교, 고려인 종합지원센터 등을 갖춘 공동체다.

캄보디아 이주여성 모임 '엇꾼 언니'
캄보디아 이주여성 모임 '엇꾼 언니'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고려인이 2008년께부터 찾아오기 시작해 현재는 3천여 명이 모여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처음에는 고려인들의 생활 습관이나 언어 차이로 인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면서 "고려인들이 자발적으로 봉사단을 꾸려 마을 청소, 자율 방범 등에 나섰고 지역 주민과 함께 동네 축제를 개최하며 점차 교류가 활발해졌다"고 설명했다.

지방의회도 앞다퉈 고려인 지원 조례를 만들어 이들을 이웃으로 맞이하려는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회가 최초로 2013년 '광주광역시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경기도 김포시의회, 경기도의회가 잇따라 고려인 지원 조례를 마련했다.

◇ 농어촌에선 '자조 모임' 활성화

도시에서 떨어진 농어촌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이 자조 모임을 꾸려 '제2의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전국 220여 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거점으로 국적별·분야별 자조 모임을 꾸려 취업 정보 교류, 취미 활동, 영농 품앗이, 지역사회 봉사 등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자조 모임은 남편 모임·자녀 모임 등으로도 확산해 농어촌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자조 모임에 참가한 다문화가족은 2014년 11만7천300여 명에 달한다.

이처럼 대도시 한복판부터 농어촌 마을회관까지 스며든 외국인 이주민.

행정자치부 통계로는 국내 인구 대비 외국인 주민의 비율은 지난해 3.4%에 달한다. 지하철에서, 동네 마트에서, 거리에서 만나는 100명 중 3명 이상은 외국인인 셈이다.

여기에 관광객을 포함한 단기체류자를 고려하면 비율은 더 올라간다.

무비자 관광 등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문턱이 낮아지면서 이를 악용한 불법체류자가 증가하는 등 부작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불법체류자는 연말 기준 2011년 16만7천780명, 2012년 17만7천854명, 2013년 18만3천106명, 2014년 20만8천778명, 2015년 21만4천187명 등으로 증가 추세다.

IOM이민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외국인의 범죄 건수는 체류 외국인의 증가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외국인에 의한 범죄 발생을 사전적으로 방지할 정책이 요구되며, 외국인 범죄에 대한 편견을 최소화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newgla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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