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다문화섬②]천여명 몰린 새벽인력시장…"열에 아홉 중국동포"

서울 지하철7호선 남구로역 일대…"여름 지나면 생계 유지 막막"
"가족들을 보고 싶은 게 제일 힘들다" 묵묵히 땀 흘려

(서울=뉴스1) 김태헌 기자 | 2016-08-27 07:00:00 송고
편집자주 국내 체류 외국인이 지난 6월 기준으로 200만명을 넘어섰다. 실질적인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이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 노동자 밀집구역은 다문화 시대가 만든 이색지대다. 실재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외딴 섬으로 존재하고 있다. 뉴스1은 1개월간의 '서울의 다문화섬' 관찰 기록을 정리해보았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19일 오전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일용직 근로자들로 붐비고 있다. ©News1 최현규 기자.

"14개? 12개! 그 이상은 안 돼."

연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 19일 새벽 5시 수백명의 일용직 노동자가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에 모여들었다. 남구로역 교차로 일대는 인파와 이들을 일터로 실어나르는 차량들로 일순간 마비가 됐다. 대화 소리와 자동차 경적, 흥정 소리 등으로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그 사이로 인력사무소 팀장(일할 팀을 꾸리는 역할)들이 일꾼을 모집하러 분주히 움직였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가격. 통상 자재 정리 등 단순 노동은 하루에 11개(11만원을 의미), 못질 등 기술 노동은 15개가 시세다. 일당의 10%를 인력사무소에 내고 교통비, 보험비, 식대 등을 내면 손에 쥐는 돈은 9만원 남짓이다.

무채색 계열의 상·하의에 운동화나 등산화 차림의 노동자들은 길에서 나눠주는 둥글레차를 마시거나 바닥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일을 기다렸다. 신호등 옆 노점상에서는 망치나 장갑, 줄자 등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팔고 있었다. 교차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승합차 수십대는 연기로 자욱했다. 담배 연기가 차 안팎에서 연신 뿜어져 나왔다. 일터를 정한 근로자들은 필요한 물품을 갖춘 후 차례로 차에 몸을 실었다.

들리는 말소리 대부분은 중국어이거나 낯선 억양의 한국어였다. 근로자 대부분이 중국 동포기 때문이다. 인근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중국 동포가)10명 중 8~9명 정도"라며 "1000~1200명 정도 오는데 한국인보다 부지런해 일터에서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에 터를 잡고 매일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나온다. 즉석에서 팀이 꾸려지면 서울·수도권 일대 공사 현장으로 보내진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취업자격 국내 체류외국인 60만8867명 중 단순기능 인력은 56만594명이었다. 이주노동자 수십만명이 건설업을 비롯해 제조업, 농업, 요식업 등에서 단순 근로를 담당하고 있다.

7~8월은 인력시장 성수기다. 건설업 특성상 여름에 일감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에 비해 인력이 부족하지만 10월부터는 일이 부족해진다. 18년째 구로 인력시장에 나온다는 김모씨(50)는 "몸이 힘들더라도 지금 돈을 많이 벌어 놓아야 한다"며 "겨울에는 일을 구하기 어려워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구로역 2번 출구 앞에서 만난 중국 동포 박모씨(67)는 힘든 점을 묻자 "가족들을 보고 싶은 게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박씨는 "더위나 일은 익숙해져 괜찮다"면서 "가끔 통화해 가족들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난다"며 웃어 보였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19일 오전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이 일자리를 구하는 일용직 근로자들로 붐비고 있다. ©News1 허예슬 인턴기자.

대다수 노동자는 날이 선 경계의 눈빛으로 기자를 쳐다봤다. 취재하던 중 한 중국 동포가 다가와 "무슨 일로 왔어. 일 구해?"라고 중국어로 물었다가 못 알아듣자 한국어로 재차 물었다. 그는 단지 말을 건넨 것일 뿐인데 분위기 때문인지 기자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취재 때문에 방문했다고 설명하자 "빨간 조끼 입은 사람들을 찾아. 그 사람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팀장들"이라고 조언한 후 사라졌다.

한편 인근 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교차로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서울 구로경찰서 소속 한모 경위(53)는 "매일 10여명이 오전 4시부터 6시까지 현장에서 교통 관리를 한다"며 "드나드는 차량이 많아 놔두면 아비규환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 경위는 "종종 언성을 높이거나 싸우는 취객을 마주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오전 6시쯤엔 5번 출구 앞에서 인력사무소 실장 A씨와 인부 B씨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A씨가 술에 취한 B씨에 일을 주지 않았고, 이에 B씨가 항의하면서 주먹으로 폭행한 것. 결국 경찰까지 출동해 중재에 나섰다. A씨는 "만취하면 일을 데려가기 어렵다"며 "매일 보는 사이라 좋게 넘어가려고 했다. 다음에 또 행패를 부리면 혼쭐을 내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이 일대 중국 동포 관리에만 집중하는 국내 유일의 중국인 동포 전담 경찰관을 운용하고 있다. 동포들이 한국 문화에 적응하도록 돕고, 범죄 등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선도하는 게 목적이다.

늦잠을 자 늦게 도착했다는 최모씨는 "최근 술을 마신 후 지인을 때려 경찰서까지 다녀왔지만 술을 끊기가 힘들다"고 고개를 떨궜다. 주 2회 정도 일을 나간다는 그는 남은 일자리를 구한다며 인력사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이 트자 일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오전 6시30분 몇몇은 아예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길가의 승합차들과 인파가 사라진 남구로역은 평온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도시 전체가 지쳐 있었지만 이른 시간임에도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구직자들로 활력 넘치는 모습이었다. 녹록지 않은 타지생활에서 그들은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묵묵히 땀 흘릴 곳을 찾고 있었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19일 오전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한 일용직 근로자가 필요한 공구를 고르고 있다..©News1 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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