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災, 악몽이 된 코리안 드림] <하> 외국인 근로자 분노의 사연들




“반장이 작업 늦다며 코뼈 부러뜨리고 미안하단 말 한마디 안해”


인도네시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구미 이슬람 센터’(구미시 사곡동)에서 서로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내 외국인근로자 100만명시대. 하지만 그들은 차별과 편견 탓에 여전히 ‘우리(We)’ 밖에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문화와 환경에 익숙지 못한 상태에서 작업장에 곧바로 투입되다 보니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흔하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 어려움도 따른다. 무시당하고 욕설을 듣는가 하면 아예 임금을 못받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다. 주위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성매매 않으면 월급 못준다 협박
참다못해 유흥업소에서 도망나와”
“퇴직금 달라고하자 도리어 욕설만”


◆힘든 일은 외국인 근로자의 몫

한국에 온 지 2년 된 닛밥씨(24)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고향인 캄보디아에서 집을 짓는 게 꿈이다. 한국에 오기 전 고향에서 쌀, 수박 등 농사를 지었다는 그는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제조업체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자재를 옮기는 작업을 계속 하다 보니 허리와 어깨에 무리가 왔기 때문이다. 닛밥씨는 “35㎏ 정도 나가는 철근을 하루에 수백개씩 맨손으로 옮겼다. 작업반장은 우리 같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만 힘든 일을 시켰다.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을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반장은 내 멱살을 잡고 욕설을 했다”고 말했다.

닛밥씨의 회사 동료 A씨(27)는 얼마 전 한국인 작업반장에게 주먹으로 맞아 코뼈 골절상을 입었다. A씨는 “한국말도 서툰데다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나 때문에 작업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작업반장이 다짜고짜 다가와 폭언을 하다가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졌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고 했다. 산업현장 곳곳에서 각종 인권 침해에 시달리는 외국인 근로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내국인이 꺼리는 일을 대신하고 있지만,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열악한 근무조건을 참아야 한다. 권리를 요구하면 사업주로부터 보복을 당하기도 한다. ‘꿈을 이루는 사람들’(구미지역 외국인 근로자 쉼터) 김아영 팀장은 “열악한 환경의 사업장에 외국인을 투입하고서도 사고만 나지 않으면 된다는 일부 사업주의 그릇된 인식이 문제”라며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줄이려면 적극적으로 감시·감독하고 사후 처벌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툭하면 임금·퇴직금 체불

외국인 근로자 B씨(여·25) 등 4명은 2014년부터 구미산단 내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지난해 9월 그만뒀다. 불황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사업주가 외국인 근로자들을 해고했기 때문이다. 사업주는 1인당 400만원씩, 총 1천600만원에 달하는 급여도 주지 않았다. 이들은 “당장 생활비도 없고, 집에 돈도 보내야 한다”며 급여 지급을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 외국인근로자센터의 도움으로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으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업주로부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B씨는 “사업주가 말로는 밀린 월급을 준다고 했지만 매번 지키지 않았다.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온 C씨(40)는 구미산단의 한 섬유업체에서 1년6개월을 근무했으나 퇴직금 260만원을 받지 못했다. 퇴직금을 왜 안주냐고 물었으나 사장 D씨는 “그동안 월급에 퇴직금을 포함해 지급했다”며 C씨에게 되레 욕설을 내뱉었다.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은 급여에 포함시켜서는 안되며 일시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결국 C씨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후에야 D사장으로부터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장 D씨는 퇴직금을 주는 자리에서도 “당신들(고용노동부)이 지금 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냐. 자국민을 보호해야지, 왜 외국인 근로자 편을 드는가”라고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김도연 주임은 “실제 외국인 근로자들의 상담을 받아보면 급여와 퇴직금 문제가 제일 많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근로자들이 국내 근로 관련법을 잘 몰라서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여성 성매매 ‘악몽’

필리핀에서 밴드 가수로 활동했던 미란다씨(여·28·가명)는 한국에서 음악공연을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지난해 입국했다. 사전에 한국 연예기획사를 통해 ‘연예인비자’로 불리는 예술·흥행(E-6) 비자도 발급받았다. E-6 비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연예, 연주, 연극, 운동경기 등의 활동을 하고자 하는 자’에게 한국 법무부가 발급하고 있다. 하지만 A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가 처음 도착한 곳은 구미의 한 유흥업소였다. 업주는 A씨를 보자마자 계약서 작성 명목으로 여권과 신분증 등을 뺏어간 뒤 돌려주지 않았다. 그후로 A씨는 유흥업소에서 술을 마시며 손님 접대를 해야 했다. A씨는 “업소에서 노래보다는 남자 손님과 술을 마시며 매상을 올려야 했고, 퇴폐적인 행위까지 강요받았다”고 진술했다.

A씨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업주가 A씨에게 손님 접대에 이어 성매매까지 강요했던 것. A씨는 “성매매를 하지 않으면 월급을 줄 수 없다고 업주가 말했다. 업주로부터 폭행을 당할까봐 거부도 못하고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지난 2월 여권과 신분증을 포기하고 업소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후 업주의 신고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A씨는 현재 구미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연예인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오는 외국인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유흥업소로 빠진다. 나는 도망쳐 나왔지만 당시 업소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업주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나가야 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E-6비자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여성은 3천900여명에 이른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외국인 여성 1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5%가 성폭력을 경험했으며 18%는 성매매, 15%는 출장데이트를 강요받았다고 응답했다. 유엔 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과 2012년 한국에 온 외국인 여성들이 성매매,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는 것을 우려한다며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관계자는 “E-6 비자의 발급 절차를 강화하는 등 실질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구미 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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