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 망가진 채 떠나는 이주 노동자
[산재로 고통받는 이주노동자]<1>네팔노동자 S씨 사연
사고로 손가락 수술 후 발가락 잃어…우울증
“수술 과정서 충분한 정보 제공 안 돼”
재취업도 불투명…다친 채로 쫓겨날
황해윤 nabi@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6-11-04 06:00:00


▲ 이주노동자 S씨는 손가락 재건 수술을 받았지만 온전히 굽히지 못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많이 다친다. 노동현장에서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최근에도 전남 강진에서 일하던 한 네팔노동자가 기계에 손가락이 뭉개지는 사고를 당했다. 23살의 네팔 청년노동자는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고 현재 통원치료 중이다. 그는 현재 매우 불행한 처지다. 그가 한국에 들어와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하고 이후 겪어오고 있는 여러 일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보는 한 네팔노동자의 사연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해결방안에 대해 몇차레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지난 2014년 10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강진의 한 콘크리트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네팔 이주노동자 S(23) 씨. 그 역시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 좀더 나은 삶을 일구겠다는 꿈을 꿨을 터.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이 악몽으로 변했다. 그는 지난 4월 말 콘크리트 공장 내 콘베이어에 손가락이 끼어 엄지 손가락이 뭉개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사고 직후 광주의 한 병원에서 손가락 봉합 수술을 받게 된다. 절단이 아닌 협착으로 엄지 손가락을 잃게 된 것. 이미 손가락을 잃은 것으로도 큰 충격을 받은 그 였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 입원 치료를 받던 그는 6월말 한 차례의 수술을 더 받게 된다. 그의 엄지발가락을 이용해 엄지손가락 재건 수술이 이뤄진 것. 하지만 마취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의 발가락 상태와 손가락 상태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자신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기 때문.

 그는 그가 받는 수술이 무슨 수술인지 몰랐고 손가락을 다친 데 이어 엄지 발가락까지 없어진 것에 대해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손가락은 재건됐지만 기능이 온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어서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이고 엄지 발가락이 없어지면서 오랫동안 서 있거나 오래 걷거나 달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손가락과 발가락 모두 온전하게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 같은 수술을 받으면서 자신이 무슨 수술을 받는지 수술 후 겪게 되는 변화가 어떤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그는 “의사로부터 무엇인가 설명을 듣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냥 수술을 하자고 해서 거기에 응했다는 것이다. 한국어가 서투른 그는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요한 수술을 받으면서도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현재 상태가 양호하고 더 치료할 것은 없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토대로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0월31일로 요양을 종결했다. 다행히 지역 보건의료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요양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한국인 활동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요양기간 종료나 치료 종결, 장애 보상 신청 등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그는 3개월 안에 일터로 복귀하지 못하면 강제 출국당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 그가 다시 일터로 복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그의 원래 꿈인 네팔 무용수의 꿈도 날아가버렸다.

 이런 저런 문제로 현재 그가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도 심각하다. 그와 면담을 진행했던 한 활동가는 “현재 그는 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를 겪고 있다”면서 “손가락 등 절단사고를 당한 이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심한데 보통 외과적 치료만 이뤄질 뿐 심리적 문제에 대한 치료 프로그램은 전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회를 얻기 위해 한국땅으로 왔을 23세의 젊은 네팔 노동자의 원래 꿈은 네팔의 전통 무용을 하는 것이었다고. 하지만 발가락을 잃은 그에게 네팔 무용수의 꿈은 이미 이뤄지기 힘든 꿈이 됐다. 결국 그가 한국에서 얻은 것은 ‘기회’가 아니라 ‘상처’였고, 훼손된 것은 그가 가진 ‘노동력’인 셈. 그리고 지금도 그와 같은 산재 피해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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