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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8-01 20:02
수정 2017-08-01 23:28
 

[현장] 한국 재입국제도 돌연 중단에 발동동

경기북부지역의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지난달 23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모여 고용허가제에 따른 재고용 절차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법무부가 올해 들어 장기체류 외국인 노동자에게 재입국 비자를 내주지 않아 이들 대부분은 머잖아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박경만 기자
“정당하게 재고용 절차를 밟았는데 이제 와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외국인 노동자 재입국을 막아버리면 외국인 일손으로 움직이는 영세사업장은 문닫으라는 얘깁니까?” 경기도 포천에서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박아무개(65)씨는 요즘 애가 탄다. 9년8개월가량 공장에서 일하면서 숙련도가 쌓여 공장장 구실을 맡긴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빈(41)이 공장에 없기 때문이다. 빈은 6월 초 고용허가제 비자 만료로 베트남으로 돌아간 뒤 재입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에 재입국시키는 ‘특별한국어시험’과 ‘성실근로자’ 제도의 시행을 올해 초부터 느닷없이 중단한 탓이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밥 먹듯 하는 이른바 ‘3D 업종’에 한국인 노동자는 가려 하지 않는다.

재입국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비자 만료를 앞둔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 신분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현상도 속출한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가마지(36)는 남양주시의 한 비닐제조공장에서 일한다. 그는 2012년 특별한국어시험을 치러 4년10개월 추가고용을 보장받고 다시 한국에 왔다. 그의 비자 유효기간은 7개월 남았다. 가마지는 “부모님 병원비와 아이들 학비를 혼자서 떠맡고 있어 일자리가 없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다. 합법적으로 일하고 싶지만 정 안 되면 불법체류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특별한국어시험 올초 돌연 중단
성실근로자 비자 재발급도 보류
이주노동자들 불법체류 등떠밀려
영세업체는 대체인력 없어 발동동

1일 <한겨레> 취재 결과, 법무부와 고용노동부가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재입국 절차 시행을 예고도 없이 올해 초부터 중단하는 바람에 저임금에도 숙련노동을 하는 이주노동자와 이들을 필요로 하는 사업주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제도가 사라져 진공 상태에 빠진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로 내몰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 제도 시행을 둘러싸고 법무부와 고용노동부가 엇갈린 설명을 하는 등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의 양상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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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최장 4년10개월 동안 일하고 본국에 돌아간 뒤 다시 국내로 입국할 수 있는 제도는 크게 두 가지다. 해당 국가에서 고용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실시하는 ‘특별한국어시험’에 합격해 들어오는 경우와 한국에 있는 동안 성실한 태도를 인정받아 법무부가 ‘성실근로자’로 인정해 비자를 재발급해주는 경우다. 국내에 입국해 최장 4년10개월(기본 3년+1년10개월 연장)까지 일한 뒤 자진 출국해 ‘특별한국어시험’을 치르고 6개월 안에 재입국하거나, 사업장을 바꾸지 않고 농축산업·어업·영세 제조업에 종사해 ‘성실근로자’로 인정받아 3개월 안에 재입국하는 방법이다. 각자 본인에게 맞는 제도를 선택해 4년10개월씩 고용을 연장할 수 있다.

제도가 중단된 상황에 대한 고용부와 법무부의 설명은 ‘엇박자’에 가깝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특별한국어시험을 거쳐 이미 9년8개월 한국에 거주한 사람을 성실근로자로 재입국시키면 총 14년6개월간 국내에 머물게 된다. 이는 3년~4년10개월간 단기순환 원칙인 고용허가제 취지에 맞지 않는다. 또 가족 동반 금지 등 인권침해 논란까지 빚고 있어 이(고용허가제) 틀로 10년 이상 장기체류하는 건 국제사회 비난을 초래하고 이민정책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용부 외국인력담당관 관계자는 “성실근로자 재입국 대상자가 많아 올해 특별한국어시험을 잠정 중단했는데 법무부가 정당한 절차를 거친 이들에게 비자 발급을 안 해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실근로자 쿼터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여서 특별한국어시험 재개 여부는 추이를 봐가며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두 부처가 충분한 사전협의를 하지 않고 현행 제도 시행을 멈추는 바람에 노동 현장의 혼란이 가중된 것이다. 이영 의정부외국인력지원센터장은 “법무부는 숙련인력, 고용부는 비숙련인력을 대상으로 부처 간 협의도 없이 제각각 정책을 펼쳐 이주노동자와 영세사업장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비자만료자들 미등록 신분 전락 위기
올해만 3900여명→내년 8800여명
고용-법무부 손발 안맞아 혼란 가중
9월부터 ‘점수제 비자’ 도입 논란

영세업체들도 “일손 없어 문닫을판”
주먹구구식 ‘고용허가제’ 혼란 자초
노동계 “정책 총괄·조정 기구 필요

이런 흐름에 반발해 ‘불법체류자’를 자처하겠다는 이주노동자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난 1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성실근로자가 되기 위해 사업장도 옮기지 않고 시키는 대로 일해서 재고용을 약속받았는데 한국에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북부지역 영세공장에서 일하는 아시아 각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어차피 다시 못 들어올 바엔 불법으로라도 남아 일을 계속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양주의 청바지 제조공장에서 7년째 일하는 네팔 출신 피야크(33)는 “어차피 우리가 하는 일은 힘들고 위험하고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3D 업종이어서 한국 사람들은 이 돈(최저임금)을 받고 일하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2011년 12월부터 시행한 특별한국어시험과 2012년 7월 도입한 성실근로자 제도로 국내에 들어온 이들의 체류기간 만료가 올해 초부터 본격 시작됨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재입국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체류기간이 만료되는 재입국자는 특별한국어시험 1548명, 성실근로자 2412명 등 모두 3960명이다. 내년에는 8874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고용노동부는 내다봤다.

고용노동부의 통계를 보면, 올해 5월말 현재 고용허가제(E-9)비자로 국내에 체류중인 이주노동자는 네팔·베트남·타이·몽골 등 15개국 26만9168명이며, 중소기업 등 5만2천여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밖에 재외동포 방문취업(H-2) 비자를 적용받는 외국인이 23만6632명으로, 비전문 이주노동자 수는 모두 50만5800명에 달한다. 전체 이주노동인력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런 가운데 법무부가 다음달부터 이주노동자에게 장기체류의 길을 트는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E-7-4) 제도를 실시하겠다고 밝혀 또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점수제 비자’는 주조·금형·용접 등 ‘뿌리산업’과 농림축산어업 분야에서 4년 넘게 일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연령과 경력, 숙련도, 한국어 능력 등을 평가해 일정 수준의 점수를 넘기면 장기체류할 수 있는 비자로 전환해주는 제도란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법무부는 비전문취업(E-9), 방문취업(H-2), 선원취업(E-10) 비자 등으로 입국한 외국인 55만여명 가운데 올해 300명 규모로 시범운영을 거친 뒤 내년부터 이 제도를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아시아 각국에서 몰려든 이주노동자들이 지난달 23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곳에 모여 “고용허가제에 따른 재고용 절차를 시행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의정부/박경만 기자
비판의 초점은 노동자가 새 비자제도의 요건을 충족하기 까다로워 사업장에서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도 사업주의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등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최근 성명을 내어 “(새 비자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줄을 세우는 반인권, 반노동 정책”이라며 “사업주에게 노예처럼 종속돼 있는 현실을 더 강화시키고, 박근혜 정권의 반인권적 이주노동자 정책과 전혀 차별성이 없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주공동행동 정영섭 집행위원은 “일부 노동자들의 기대감이 있겠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동종업계 평균 이상으로 연봉을 받아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점수제를 만족시킬 만한 노동자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이자 장기적 관점이 없는 또 하나의 미봉책으로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에 법무부 관계자는 “어느 나라든 젊고 유능하고 재정자립도 높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민정책을 시행한다. (새 비자제도는) 학력과 재산 등 차등을 둬 정착할 생각이 있으면 미리 준비하도록 가이드해주는 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불법체류 등 악순환을 없애려면 현재 세번으로 제한된 사업장 선택을 자유롭게 하고 사업주가 노동자를 데려오는 쪽으로 설계된 고용허가제 대신 이주노동자가 취업 비자를 자유롭게 발급받아 국내에서 일하는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영 센터장은 “외국인력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기구를 만들거나 고용노동부가 업무를 전담해 혼란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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