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투일 수 밖에 없는 이방인의 삶, `21 days`
2017-08-09 06:02:06 

[게임의 법칙-44] 시리아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발생한 난민 문제로 유럽과 중동 여러 나라가 한동안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난민 수용에서 발생하는 현실적 문제로 인해 전체적인 여론이 난민수용 반대로 흘러가던 시점에 공개된 단 한 장의 사진은 각국의 난민 정책을 수용 중심으로 뒤집는 효과를 낳았다. 2015년, 해변에 떠밀려 온 3살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낳은 결과였다. 

지금 다시 봐도 슬픔을 주체하기 어려운 한 장의 사진은 사진이 매체로서 품을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 사례였다.
난민 수용에 대한 입장은 여러 가지가 있고 여기서 그 정책을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15년 당시의 사진만큼 짧고 강렬하지는 않지만, 난민 문제라는 소재를 게임이라는 매체 형식을 통해 접근한 시도가 무려 한국에서 작년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인디 게임 `21 days`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시리아 난민의 독일 생존기, 21 days 

`21 days`는 시리아 난민인 주인공이 독일에서 난민 신분을 획득한 뒤 보내는 21일간을 중심 소재로 삼은 게임이다. 주인공은 일단 난민 숙소에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도착하지 못한 아내와 아이를 위해 돈을 벌어 계속 송금해 주면서 가족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일정 시간마다 ATM기로 송금할 돈을 모으고, 그러면서 동시에 주인공 스스로도 낯선 땅에서 먹고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게임은 기본으로 삼는다. 

독일어에 익숙하지 않은 전직 아랍어 교사 주인공에게 열리는 직업은 주로 단순 노무직이다. 공사장 잡역, 식당 설거지 등을 통해 소량의 임금을 벌지만 선진국 도시에서의 삶은 버는 것 이상으로 소비를 필요로 한다. 게임은 단지 먹고 마시는 일뿐 아니라 교통비 지출을 적지 않은 비중으로 다루는데, 예를 들어 숙소에서 공사장으로 일하러 대중교통비를 내고 갔을 때 오늘 일자리가 없다며 거절당하는 경우, 시간과 비용 양 측면에서 동시에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비용 지출이었다면 난민으로서의 추가 지출은 어학원에서 발생한다. 실수를 줄이고 좀 더 높은 급여의 업무를 찾기 위해 주인공은 어학원에서 일정 비용을 내고 수업을 들어야 한다. 게임은 언어 숙련도를 게임 속에서 사람들의 대화를 `ㅁ` 처리하는 형태로 나타내 거의 반강제적인 추가 지출을 유도한다. 

이런저런 지출의 압박은 얼마 되지 않는 주인공의 급여를 압박하고, 여기에 겹치는 것은 아내가 이따금 보내 오는 송금 요청이다. 아이와 함께 국경을 넘어 오는 과정인 아내로부터의 전언은 대체로 급박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들로 점철되어 있다. 며칠 안에 송금이 어려울 경우 기차를 탈 수 없다거나 하는 설정은 안 그래도 쪼들리는 게임 속 상황을 더욱 긴박하게 만든다. 

점차 빡빡해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량을 늘리면 되겠지만 게임 속 주인공을 구성하는 두 개의 수치는 한계로 작용한다. 허기는 시시각각 빠져나가며 식비 지출을 강요하고, 정신력은 불안한 노동 환경에서의 스트레스로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이슬람 교도인 주인공은 가장 싸고 편리한 패스트푸드를 먹을 때마다 할랄 푸드(이슬람 율법에 의해 허용된 음식)가 아닌 음식을 먹음으로써 발생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물론 할랄 푸드 전문점도 있고 여기서 식사하면 고향의 맛과 함께 정신력도 회복되지만, 만만찮은 가격이 발목을 잡는다. 

점점 높아지는 가족의 송금 요구, 그리고 그와 함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벅차 오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 속에서 어떻게든 송금을 완료하고 가족들과의 상봉을 기다리는 난민의 입장을 그려낸 게임 `21 days`는 그리 길지 않은 플레이타임과 간단한 게임 구조임에도 시리아 난민 사태라는 어려운 주제를 나름의 시선으로 풀어내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던 게임이다. 그리고 이 게임이 품고자 했던 메시지는 어떤 면에서는 비단 난민이라는 말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난민을 넘어선 이방인들의 이야기로 

`21 days`가 난민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집중한 부분은 작은 고무보트로 지중해의 파도를 넘거나 스산한 국경지대를 돌파하는 이주의 과정이 아니라 난민 지위를 얻은 이후의 정착 과정이다. 최소한의 주거는 난민 숙소를 통해 보장되는 상황이고, 난민 관리국이라는 공권력으로부터의 지원도 적잖이 (게임 속에서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없지만) 받고 있어 언뜻 괜찮아 보일 수는 있지만, 막상 플레이해 보면 그다지 녹록한 상황이 아님은 단번에 알 수 있다. 

난민의 정착 과정에 집중하면서 게임이 다루는 소재는 난민을 넘어선 범주로 확장된다. 도시와 국가가 품는 일반적인 언어와 문화, 종교와 관습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이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게임의 메시지는 폭을 넓힌다. 난민보다는 오히려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마치 모든 것이 보장되는 듯하지만 오히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로 `21 days`는 자리한다. 

도시와 국가의 주류로 살아가는 `일반인` 들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삶은 삶이라기보다는 분투의 연속임을 게임은 이야기한다. 삶과 의식의 뿌리가 내려져 있던 고향을 어쩔 수 없이 등진 이들이 새 토양에 자리 잡기 위해 견뎌야 하는 것들은 단지 자신의 적응만이 아니라, 새 도시의 정주민들이 가진 의식의 변화까지도 수반해야 함을 게임은 게임 속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한다. 물질적 토대부터도 힘든 상황에 문화적 이질성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받아 안은 이방인들의 삶은 그 자체로 분투이며, 심지어 게임의 한 과정으로 옮겨질 수 있을 만큼 비일상적인 상황임을 `21 days`는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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