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국인 배척법’ 닮은 트럼프의 反이민정책

서부개척 때 노동력 활용 후 숫자 늘자 중국인 이민 금지

입력 : 2017-08-05 05:00
19세기 ‘중국인 배척법’ 닮은 트럼프의 反이민정책 기사의 사진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개척 당시 미 대륙 횡단철도 건설에 투입된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선로를 연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미 의회도서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새 이민정책이 미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은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을 연상시킨다고 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 이민정책에서 합법 이민자들에게도 영어를 잘 하거나 미국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면서 사실상 비영어권 이주 노동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제한 없는 유입이 “미국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해 왔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배타적 태도는 1882년 도입된 미 최초의 이민 제한법인 중국인 배척법의 도입 근거와 유사하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1848∼55년 서부개척 당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금광 개발)’ 기간 동안 북미에 처음으로 유입됐다. 이들 중 1만4000여명이 미 대륙 횡단철도 건설에 투입돼 수많은 이들이 작업 중 목숨을 잃어가며 당시로선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횡단철도의 개통(1869년 5월 10일)을 실현시켰다. 

금이 풍부하고 노동력이 부족할 때는 중국인들이 환영받았지만, 이후 1870년대 미국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아시아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팽배해졌다. 일부 백인들은 철도 건설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증오를 드러냈고, 극심한 인종차별주의로 중국인 살해 사건도 빈번했다. 

1880년쯤 30만명까지 늘어난 중국인 이민자들이 캘리포니아 인구의 10분의 1에 육박하자 미 의회는 2년 뒤 ‘중국인 배척법’을 승인해 중국인의 노동 이민을 금지시켰다. 이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은 자율 정부 구성에 필요한 두뇌의 용량이 부족하다”와 같은 인종비하 발언까지 쏟아졌다. 

전형적인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격 악법이 1943년 폐지될 때까지 61년 동안 미국은 중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WP는 이주 노동자들을 ‘값싼 노예’로 부려먹고 팽개쳐버린 당시의 작태가 트럼프 대통령의 새 이민법을 통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민 악법의 부활을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주요 인사들의 이민 가족사를 되돌아봤을 때, 새 이민법을 당시에도 적용했더라면 그들의 조상이 미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WP에 따르면 16세에 독일에서 미국으로 온 트럼프 대통령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트럼프는 미국에 올 당시만 해도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트럼프 가문(The Trumps)’ 책의 저자 겸 트럼프 대통령의 전기 작가 그웬다 블레어는 “프리드리히 트럼프 이민 자료의 영어 구사 여부를 묻는 문항에 ‘할 수 없다(none)’고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어머니 메리 맥러드도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맥러드가 18세에 미국에 왔을 때 스코틀랜드 겔틱어 밖에 구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도 슬로베니아 태생으로 한때 특유의 동유럽식 영어 액센트로 조롱거리가 된 적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참모 중에도 이민자 가정 출신이 많다. 당장 새 이민 정책의 설계자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수석 정책고문의 증조할머니 새러 밀러는 1910년 인구조사 자료에서 이디시어(동유럽 출신 유대인이 사용하는 방언)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의 증조할아버지 파스칼 롬바르도 역시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으로 미국 이주 당시 이탈리아어만 구사했다. 트럼프의 ‘복심’인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고조할아버지 역시 바바리아(독일 바이에른주) 출신으로 미국 이주 당시 영어를 할 수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94500&code=11141400&sid1=all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