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인권 침해하는 고용허가제 개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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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10-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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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지난 8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8.20 전국이주노동자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이주노조 등 이주노동자 단체가 주최한 이날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고용허가제 폐지,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등을 주장했다. 2017.10.09. (사진 = 뉴시스 DB)

 시행 14년째에도 사업주에게 모든 권한 
 사업장 이동 제한·열악한 노동환경 반복  
 "노동자 권리 보장 법 개정·정책 마련을"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 속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관련법을 개정,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할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주노동자들을 "편리한 노동력"으로 치부하는 인식을 개선하고 그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산업 연수생 제도의 대안으로 2004년 8월17일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살펴본다. 

 ◇고용허가제 문제점 '수두룩'
 
 9일 이주노조·이주민지원센터 친구·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취업 자격을 가진 외국인은 56만9809명(법무부 출입국 통계월보)이다. 

 이 가운데 비전문취업 비자(E-9·고용허가제)를 받아 한국에서 일하는 15개국 출신 이주노동자는 27만5806명이다. 
 
 이주·인권·노동단체들은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으로 사업장 이동·재고용·이탈신고 등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만 있다는 점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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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지난달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3권 보장 및 ILO(국제노동기구) 권고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2017.10.09. (사진 = 뉴시스 DB)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특정 사업장에서 3년 동안 일한 뒤 체류기간을 1년10개월 간 연장할 수 있다.

 '성실근로자 재고용 제도'에 따라 4년10개월 간 성실히 근무할 경우 자국으로 돌아가 3개월 휴식한 뒤 일했던 사업장으로 재취업할 수 있다.

 이 과정에 사업주 동의·휴업·폐업을 제외하고 근로 조건 위반 행위, 폭행·상습적 폭언 등의 부당한 처우 등을 받는 경우에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법(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상 심사 조건·기준이 까다로워 불이익을 받고도 사업장을 옮기는 이주노동자들은 소수에 불과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장관 고시에 따라 1년치 임금 중 30% 이상 체불이 있어야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고, 불합리한 차별 대우를 받는 기준도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사업장 변경 기간(3개월)과 횟수(3년간 3회)도 제한돼 있다. 

 이 같은 '사업장 이동 제한'과 '노동력 단기순환 정책(최대 9년8개월)'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권한에 종속되고 정주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 한다.   

 근무지 이탈 신고의 남용도 문제시되고 있다. 이탈 신고가 접수될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게 돼 부당한 근로 조건(장시간 근로·체불·불법 파견 등)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관리·감독 기관이 어떤 사유로 근무지를 이탈했는지 면밀히 살피지 않아 체류 자격을 잃는 이주노동자들도 많다"고 단체들은 설명했다. 

 '출국 이후 14일 이내 퇴직금과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규정'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통상임금 가운데 적립한 퇴직금 70%를 보험사에서 받은 뒤 나머지 30%를 자국으로 돌아가 받고 있다. 

 귀국 뒤 사측에서 퇴직금을 주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이 어려워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과 사회보장기본법 미적용, 불법 도급 강요,  언어 교육 체계 미흡 등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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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지난 4월 3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3권 쟁취!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를 하고 있다. 2017.10.08. (사진 = 뉴시스 DB)

 ◇착취 못 벗어나는 이주노동자들

 실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 하고 있다. 

 전남 함평군 오리 훈제 가공 업체서 일했던 40대 이주노동자 2명(방글라데시)은 지난 4년간 폭언·손찌검·불법 파견·잔업수당 체불·노후화된 작업복 착용 강요·근무 시간 화장실 사용 금지 등 업주의 횡포에 시달려왔지만, 업주가 사업장 변경을 동의해주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8월 광주지역 모 노무법인의 도움을 받아 노동청에 사업주의 횡포를 신고한 뒤 근무지를 변경할 수 있었다. 

 충남 서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했던 A(29·키르기스스탄)씨는 지난 6월15일 사업장 변경 신청을 승인받았지만, 변경 기한인 3개월 간 노동청 산하 고용센터의 사업장 알선을 4건밖에 받지 못 했다. 

 이마저도 계약이 되지 않자 A씨는 4개 시·군을 돌며 구직 활동을 이어갔고 지난달 12일 경기 화성 지역의 모 업체로부터 채용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사업주에게 "지난달 15일까지 고용센터에 근무처 변경 신청을 접수해야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사업주 일정상 마감 당일 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사업주가 '이주노동자 고용 쿼터(1년 단위 고용 허가 인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A씨를 채용하려 했고, A씨는 쿼터 제한과 기한 초과로 출국 대상자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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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지난 8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8.20 전국이주노동자결의대회에서 참석 이주노동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주노조 등 이주노동자 단체가 주최한 이날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고용허가제 폐지,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등을 주장했다. 2017.10.09. (사진 = 뉴시스 DB)

 지난해 지난 6월15일 경기 평택의 한 알류미늄 제조업체서 일하던 B(40·네팔)씨는 잦은 야간 근로 때문에 같은 지역의 플라스틱 용기 가공 공장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B씨도 공장주가 사업장 변경 신청서를 마감 기한(지난해 6월30일)까지 제출하지 않으면서 비전문취업 비자가 취소됐다. 

 B씨의 신청 요구를 무시해온 공장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B씨를 터미널에 내려줬고,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 B씨는 이주민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B씨는 민사 소송에서 승소 뒤 1년 뒤 비자를 회복했지만, 이 기간 일을 하지 못하고 불법 체류에 따른 벌금을 냈다. 

 명백한 사업주의 잘못인데도 맞춤형 대응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은 셈이다. 

 이밖에도 불법 파견·체불을 일삼은 사업주가 야간 근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자 10여명을 강제 해고한 사례, 심한 배 멀미로 근무지 변경을 요청한 부산지역 선원 노동자를 이탈 신고한 사례, 제조·건설·농축산업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근로·주거 환경을 제공하고 방치한 뒤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은 사례 등 업주들의 횡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네팔 노동자 2명이 사업장 변경 제한을 비판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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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지난4월3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3권 쟁취!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를 하고 있다. 2017.10.09. (사진 = 뉴시스 DB)

 ◇이주노동자 편의·필요에 맞춘 법 개정 시급 

 단체들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극도로 제약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5년 이상의 체류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각종 인권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관계법 적용, 노조 결성·가입 권리 보장, 노동청의 관리·감독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족 동반 허용, 언어 교육·통역 지원 대폭 확대,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정주 권리와 연계된 정책 마련도 요구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한 베트남 이주노동자는 "도급제를 강요당했을 때 근로계약한대로 일하겠다고 하면 사업장에서 쫓겨나게 되고, 산업재해 처리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현장의 특성상 작업이 끝나면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데, 이 같은 경우에도 합의에 의한 근로 계약 해지로 인정돼 사업장 변경 횟수에 포함된다. 이 때문에 3년(비자 기간)이 지나기도 전에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비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며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고용센터나 지방노동위원회를 찾아가도 통역이 부족해 포기하는 사례가 잦다. 개선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이주민지원센터 친구 조영관 사무국장은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주들의 편의와 필요에 맞춰져 있다"며 "이는 근로 관계의 종속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사무국장은 "이주 노동자들의 바람은 노동 조건이 열악한 사업장에서 옮길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 이현서 변호사도 "이주노동자들은 노동권 침해에도 문제 제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칫 체류권을 박탈당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며 "사업주에게만 유리한 법을 개정, 다양한 사유로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도록 이주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dhdrea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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