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역 인근 골목을 한참 걸어 도착한 ‘동대문 네팔 노동자 쉼터’. 침구류와 옷장, 간이책상 등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용품이 구비된 7평 남짓한 반지하 방에 네팔노동자 서너명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구석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노동자, 인터넷에서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 야간근무를 마치고 낮잠을 자는 노동자 등 이들은 이곳 반지하 방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며 제각각 ‘코리아드림’을 꿈꾸고 있다.
이 쉼터의 정식 명칭은 ‘네팔 누와콧 커뮤니티센터’. 네팔노동자들은 이 공간을 ‘코리안드림 센터’라고 말했다. 겉보기에는 작고 허름하지만, 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공간. 긴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달 29일 ‘동대문 네팔 쉼터’에서 거주자들을 만났다.
네팔인들이 자비 털어 쉼터 만든 이유
쉼터는 2015년 봄에 문을 열었다. 한국인들이 지자체 등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외국인노동자센터와 달리, 먼저 한국에서 자리 잡은 네팔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만든 쉼터다.
쉼터 회장인 솜 타망(Som Tamang·44)씨는 “한국에 처음 도착한 네팔인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센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2005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한국어도 잘 모르고, 일자리 정보도 없고, 서울 방값도 너무 비싸서 엄청 고생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자리 잡은 친구들이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자고 했어요. 한국에 처음 와서 돈이 없는 사람들을 재워주고, 정보도 알려주는 센터 같은거요.”
솜 타망씨는 뜻이 맞는 친구 34명과 함께 10만원씩을 걷어 센터설립기금 300만원을 마련했다. 부동산 보증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냉장고와 간이책상, 침구류 등을 구입해 센터 구색을 갖췄다. 월세와 공과금 35만원은 친구들이 매달 1만원씩 모아 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네팔인 커뮤니티를 통해 센터 이름이 알려졌고, 서울에서 일하는 네팔노동자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가입비 2만원만 내면 센터를 평생(?) 이용할 수 있고, 몸이 아프거나 고용주들의 횡포 때문에 쉼터로 쫓겨온 노동자들에 한해서는 돈을 받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센터도 많은데 네팔인들은 왜 자비를 털어 센터를 만들었을까? 주누 그룽(Junu Gurung·41)씨는 “네팔 문화에 좀 더 적합한 쉼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누 그룽씨는 동대문역 인근에서 남편과 함께 네팔식당을 운영하며 쉼터 운영을 돕고 있다. “한국에 처음 와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센터에서 생활했는데 힘들었어요. 힌두교 신자인데 매일 교회예배를 해야 하고, 센터 통금시간도 있어서 야간작업을 할 수 없었어요. 일부 센터들은 외국인노동자를 이용해 지원금을 챙기는 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네팔노동자들이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쉼터가 필요했어요.”
쉼터에는 평균 5~7명 정도의 네팔인들이 거주한다. 거주기간은 2주부터 6개월까지 다양하다. 한국에 처음 와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동자들과 ‘고용허가제’ 허점으로 일자리를 잃고 쫓겨온 노동자 등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자가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할 경우 정부에 요청해 허가를 거쳐 이주노동자를 들여오는 제도다. 취업비자(E9)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회사 폐업 같은 특별한 사유나 사업자의 허락이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이직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을 악용한 사업자의 괴롭힘으로 인해 이주노동자 자살사건이 잇따르는 등 ‘고용허가제 폐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6개월동안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하다 2주전에 쉼터에 왔다는 유바라 푸얄(yubaraj phuyal·25)씨는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에게 효도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네팔인들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에요.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어요. 돈 벌어서 네팔로 돌아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일하다가 힘들어 죽은 외국인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다시 일을 찾고 있는데 형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좋은 일을 구해 오래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 그는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쉼터 운영자들 “많은 네팔인들 코리안드림 돕겠다”
주누 그룽씨는 센터 운영자들의 꿈을 묻는 질문에 “쉼터를 거쳐간 많은 네팔인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자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한국에 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돌아가거나, 사고를 당해 죽기도 해요.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로워서 어렵겠지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요. 쉼터에 오면 한국에서 자리 잡은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줄 거에요. 이곳에서 지낸 많은 네팔인이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지원금도 많이 들어와 쉼터를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길 수 있지 않을까요?”
솜타망 회장 등은 긴 추석 연휴를 쉼터에서 보낼 네팔인들을 위해 ‘서울투어’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추석과 설 연휴에 ‘파티’와 한국 문화체험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는데 가장 호응이 좋았던 행사가 ‘서울투어’였다는 것이다. “쉼터 노동자 중에서 한국이 생소한 사람들이 많아 남산, 한강 등을 다니며 연휴를 보낼 거에요. 서울 명소를 다니며 좋은 기운을 받아 이 사람들이 추석 후에 좋은 일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