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혐오를 넘어](2) 강자 아닌 약자 향해...거꾸로 흐르는 분노

이영경·김찬호·유설희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기나긴 경제불황, 사상 최악의 실업난, 치솟는 집값…. 좌절과 불안이 일상이 된 삶에서 사람들은 고통의 원인을 손쉽게 사회적 약자에게 돌린다. 분노와 혐오는 권력구조를 타고 흘러 이주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향한다. 그 배경에는 혐오를 양산하는 온라인, 대중매체와 미디어,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보수세력과 정치인이 있다. 일러스트 김번사진 크게보기

기나긴 경제불황, 사상 최악의 실업난, 치솟는 집값…. 좌절과 불안이 일상이 된 삶에서 사람들은 고통의 원인을 손쉽게 사회적 약자에게 돌린다. 분노와 혐오는 권력구조를 타고 흘러 이주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향한다. 그 배경에는 혐오를 양산하는 온라인, 대중매체와 미디어,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보수세력과 정치인이 있다. 일러스트 김번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다. 혐오 언어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유튜브에서 교실로, 보수집단의 선동적 언어에서 정치인의 입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특히 여성·성소수자·이주민·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는 ‘합리적 이유’로 포장돼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취업준비생 김모씨(30)는 ‘여혐(여성혐오)’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평균 한국 남자라고 생각하고, ‘페미(페미니스트)’는 “노력도 안 하면서 유리천장 탓으로 돌리며 열등감을 표출하는 노답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한편 주변 남성들은 자기비하에 젖어 있다. “중소기업 대리인데 여자를 어떻게 사귀냐, 결혼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기비하 쩐다”고 말했다.




‘노력·자기비하·열등감’은 혐오의 구조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신자유주의 이후 경기불황으로 나빠진 삶, 좌절과 불안은 일상이고 안정되고 행복한 삶은 요원하다. 우리 삶을 가리키는 수치는 비관적이다. 지난 8월 기준 대졸 실업자는 50만명을 넘었고, 3분의 2가 청년층으로 나타났다. 올해 주택 마련에 드는 재무적 부담(주택구입부담지수)은 60.1로 5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자신이 힘들다’는 생각에 매몰되면 타인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죽도록 ‘노오력’을 해야 정규직이 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사회적 약자들은 생떼를 쓰는 존재들이다. 차별과 고통은 삭제되고, 열등감에 젖은 이들로 보일 뿐이다. “나의 고통이 ‘성장통’으로 간주되는 판에, 남의 고통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길까.” 사회학자 오찬호는 말한다.

■ 사라진 구조, 거꾸로 흐르는 분노 

전체 노동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비정규직이고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만 받는다. 비정규직은 왜 양산됐을까. 기업이 정규직을 줄이고, 적은 돈을 주고 쉽게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 수를 늘렸기 때문이다. 치솟는 집값, 주거 불안은 누구 때문일까. 부동산 투기세력이 집값을 올리고,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건물주들이 월세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분노는 ‘강자’를 겨누지 않는다. 거꾸로 흐르는 분노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교수는 “현 세대는 승자독식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으며 성장했지만, 처참하기 그지없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자신이 비참해진 원인은 원래 가져야 할 특권을 약자들이 무임승차해 빼앗아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경제위기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나타난 예는 많다. 나치의 유대인 혐오와 학살의 배경에는 독일의 경기침체가 있었고, 현재 유럽에서 확산되는 인종혐오 범죄도 경제위기와 맞닿아 있다. 박진영 심리학자는 “고통의 원인이 ‘거대한 구조’에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눈앞에 보이는 ‘구체적 대상’ 탓으로 돌리는 게 손쉽다”고 말했다. 

비뚤어진 ‘착시현상’. 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남성 청소년·대학생·취업준비생·직장인 모두 20~30대 여성이 나라에서 가장 혜택받는 집단이라고 꼽았다. 남성 청소년은 41.3%가 이같이 응답했다. 하지만 실제 여성은 어떤가. 30대 여성 이모씨는 “20대에는 성희롱·성폭력에 시달리고, 취업은 남학생보다 어렵고, 취업해서는 임금 격차, 승진 차별에 시달린다”며 “ ‘맘충’이라고 엄마를 혐오하지만 실제는 ‘독박 육아’에 시달리고, 경력단절에 처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주민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주민은 ‘범죄자’ ‘일자리를 빼앗는 자’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주민이 받는 차별, 저임금, 인권침해적 노동여건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도 배려하고 도와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이들이 특수학교 설립과 같은 권리를 요구하고 나설 때, 무릎 꿇은 부모를 향해 욕설을 내뱉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윤보라 여성학 연구자는 “사회적 약자가 권리를 획득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자리를 침범하고 위협하는 것을 뜻한다”면서 “이주노동자는 일자리를 빼앗고, 여성들은 노동·소비·연애와 결혼 등 모든 영역에서 더 이상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며 예측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했다. 

■ 구조맹·공감맹을 넘어서 

직접적 폭언·폭력을 행사하는 이들만 혐오를 확산시키는 것은 아니다. 제3자의 침묵과 방관은 혐오가 벌어지는 상황을 유지하고 공고하게 만든다. 인종차별이나 성희롱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제3자가 침묵하는지, 아니면 제지하고 나서는지에 따라 문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혐오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공기’가 필요한 것이다. 

‘혐오 과잉시대’, 도처에 혐오가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혐오는 권력관계를 타고 흘러 사회적 약자에게 향한다. 권력관계를 타고 흐르는 혐오는 약자의 삶을 위협하고 권리를 빼앗고, 차별을 공고화한다. 

‘구조맹·공감맹’을 넘어서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 구조맹을 벗어나기 위해 진정 우리를 곤경과 고통에 처하게 만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 공감맹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편견과 혐오를 넘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081912001&code=210100#csidx14f80f442a3201cbc7085b6eea491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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