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의 #Me Too  간담회장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장에서 참석자들이 요구사항을 낭독하고 있다.
▲ 이주여성들의 #Me Too 간담회장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장에서 참석자들이 요구사항을 낭독하고 있다.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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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찬 간담회장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주여성쉼터와 지원 단체 통·번역 활동가들이 피해 당사자들을 대신해 피해 사례를 읽어 내려갔다. 간혹 보도 자료를 읽다 울컥하여 숨을 고를 때마다 자리에 함께한 이들도 표정이 바뀌었다. 대부분 한국인 참석자들은 부끄러움에 차마 고개를 들지도 못하겠다는 듯 발표자를 따라 보도 자료를 읽기에만 집중했다. 

9일(금)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주여성들의 #미투' 간담회장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그동안 이주여성들은 한국어를 못하고, 말할 창구가 없고, 들어주는 이도 없지만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제까지 언론이 주목한 미투 운동 가해자들은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이었다. 문단 어른으로 대접받던 고은부터 연극과 영화계를 주름잡던 연출가들, 대권을 꿈꾸던 안희정 등을 보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던 유명인이자 권력자들이었다. 지위를 이용한 폭력 앞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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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주여성들의 #미투' 현장에서 거론된 가해자들은 그런 이름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흔히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공장 사장·감독관, 농장주와 같은 평범한 한국남자들이었다. 동네에서 우연하게 부딪힐 수 있는 오빠와 아저씨 같은 소시민마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무슨 권력이 있다고 그런 짓을 할까 싶지만 이주여성에게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요 폭군이나 다름없었다. 가해자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제공한 제도와 잘못된 인식을 배경으로 삼고 이주여성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 그곳엔 인륜도 없고,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형부가 처제에게 성폭행을 저지르고, 친구가 사돈을 성폭행하도록 돕고, 사장과 농장주는 외국인 직원을 짓밟았다. 

이주여성들은 성폭력 피해를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외쳤다. '#미투'라고. 자신들의 피해에도 관심 갖고 지켜봐 달라고. 제도를 바꾸고, 인식을 바꿔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 호소마저 다른 사람 입을 빌려야 할 정도로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여성 #미투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


#사례1
2016년에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이 결혼식에 친정가족을 초청했다. 결혼식 45일 전에 입국했던 피해자는 결혼식 4일 전에 형부 될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남자는 필리핀 처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1심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에서 일어났던 이 사건은 현재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례2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출산 후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어머니를 초청했다. 이 여성의 여동생도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살고 있다. 두 딸이 있는 한국에 왔던 피해자는 딸의 요청으로 사돈댁 농사일을 도우러 갔다가 사돈 친구에게 강간당했다. 친구가 강간하는 동안 사돈은 밖에서 망을 보았다.

#사례3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캄보디아 여성은 입국한 지 두 달이 되지 않았을 때 사장에게 처음 성폭행 당했다. 피해자는 사장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때 사업주 동의가 필요하다. 사업주 동의가 없으면 미등록(불법체류)신분이 된다. 사업주가 가해자일지라도 이주여성노동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증해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워서 누구한테도 얘기도 못했다. 그러자 사장은 이후로도 반복해서 성추행과 성폭행을 일삼았다. 아무리 거부해도 소용없었다. 피해여성은 사촌언니에게 도움으로 이주여성쉼터를 알게 됐고 7개월간 법률 공방을 벌여야 했다.

이주여성들의 #Me Too  간담회장 현장에 적혔던 문구들
▲ 이주여성들의 #Me Too 간담회장 현장에 적혔던 문구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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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성폭력, '위드유'가 절실하다 

이날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가 일상이었음을 알렸다. 더불어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4가지 요구안을 발표했다. ▲ 체류 지위와 관계없이 국내 체류 모든 이주여성의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 종합적인 대책과 창구 마련 ▲ 체류 불안 없이 폭력 피해를 호소하고 폭력 피해 이주여성의 인권 보호를 위한 지원 체계 마련 ▲ 이주여성 노동자의 인권보호와 성폭력 대책 마련 ▲ 선주민에 대한 다문화 감수성에 기초한 폭력 예방 교육과 인권 교육.

위 4가지 요구안은 이주여성이 한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피해여성들을 상담하거나 통번역활동을 하며 지원활동을 해 왔던 이들은 피해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사회에 호소했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통번역을 하는 태국 출신 결혼이주민 니감시리 스리준 씨의 말이다.

"가해자가 평범한 한국남성이라는 점이 이주여성 피해 사건에 관심이 덜한 이유 같다. 이주여성들 피해사실이 더 밝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기를 원한다."

필리핀 출신 오혜진 씨는 마음이 힘들고 가족까지 걱정하는데도 당하고 있지만 않을 거라며 용기를 낸 피해 여성들을 응원했다.

"어릴 때 성희롱을 당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야 되는지, 말하면 믿어줄 것인지 걱정을 많이 했었다. 당했다는 것이 증거가 없기 때문에 말로만 하면 거짓말이라고 할까봐 그 답답한 것을 가슴 속에만 담아뒀었다. 피해 이주여성들은 비록 즉시는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말해서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참 용감한 여성들이다."

간담회장에서 어떤 방송사 기자는 피해 당사자가 없다고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주여성들의 #미투' 현장은 피해자 당사자가 직접 증언에 나서는 최근의 흐름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그동안 이주여성 피해자들은 경찰이나 검찰, 인권위와 같은 공적 기구들을 통해서 피해를 호소하지 않았다. 이주여성쉼터와 같은 민간단체의 도움을 얻어 비공개적으로 호소해 왔다. 사회적 약자인 이주여성들은 노출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들에게 비록 간담회를 통해 공개했다 해도 직접 나서라고 하는 건 폭력이나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한국에 왔지 투사가 되기 위해 한국에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간혹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이주민들은 '주제넘은 전사들'로 치부된다. 혹자는 '외국인은 대한민국에서 자기 권리, 인권을 주장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삶일진대, 그 누가 다소곳하게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상처투성이의 기구한 삶, 피해를 당해도 침묵을 강요당해야만 하는 이주여성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이는 연대, #위드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투 현장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제도와 시민사회의 지지가 #위드유다. '관심 가져 달라는'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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