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와 예멘 난민<간서치의 둔한 서평 (124)> 박한식·강국진의『선을 넘어 생각한다』
간서치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폰트줄이기프린트하기메일보내기
승인 2018.07.09  08:02:47
페이스북트위터

이 책이 처음 인쇄된 날이 올 4월 6일이다. 그 후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 7일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말 그대로 꿈만 같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그 어떤 영화, 소설보다도 극적인 순간들이 3개월 사이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극적인 순간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손을 맞잡은 바로 그 찰나였다. 그 짧은 순간은 지난 70년 적대관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은 멀지만, 북미 두 정상이 평화와 신뢰를 위해 손잡았다는 그 자체만으로 분명 ‘세기적 만남’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쉽게 둘이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왜 그러지 못했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 달 사이 두 차례나 남북정상이 만남을 가진 것을 목격한 이들은, 과거 9년 두 정부의 무능력을 다시 한 번 느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지난 3개월이 꿈만 같고, 기적 같은 것이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지금 이렇게 전 세계가 놀라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전쟁의 코 앞까지 갔던 한반도는 지금,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의 물결로 가득하다. 남북은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 하고 당국 간 만남을 갖고,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해 신중하지만 또한 느리지 않게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전직 CIA 국장 출신 미 국무부 장관은 마치 제 집 드나들 듯 평양을 방문해 트럼프의 의중을 김정은에게 전하고 있다. 이 역시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북미가 약속한 비핵화와 그에 상응한 조치가 양측의 신뢰 구축과 더불어 점차 구체적으로 이행된다면 향후 북미 간 수교와 한반도 평화협정도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그 정도로 우리는 성큼 성큼 전진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꿈같은 일들이 이어질까. 지금의 평화가 그야말로 항구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완벽한 평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속단할 수 없다. 북미 간 협상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이고, 양측의 치열한 외교전이 이제부터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7월 7일) 평양회담을 마치고 돌아간 폼페이오 일행을 향해 북한은 “일방적으로 CVID만 요구했다”며 비난하고 있다. 북한의 운명을 건 비핵화 협상이기에 절대 쉽게 양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 그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북한의 비핵화를 이뤄내겠다고, 역사상 처음 정상회담까지 치른 트럼프 대통령 역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비핵화를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 박한식·강국진 지음, 『선을 넘어 생각한다 –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부키, 2018. 4. [자료사진 - 통일뉴스]

때문에 다시 이 책을 꺼내든다. 저자는 “‘신뢰’가 있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세상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신뢰라는 것은 대화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국가 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원인, 그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 처음 만난 북미 양국은 더디더라도 꾸준히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오해도 풀리고 상호 간 신뢰도 쌓을 수 있다. 상대에 대한 신뢰 없이 북이 ‘생명줄’로 여겨왔던 핵을 포기할 리도, 미국이 ‘악마’로 여겨왔던 북한을 인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한 또 하나의 과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차별과 배제의 습관이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어 차별하고 배제해온 습성을 고치지 못한다면 도저히 통일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슬픈 현실이 바로 예멘 난민을 둘러싼 지금의 갈등이다. 얼마 전 제주에서 일어난 난민 반대 집회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큰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 하나 같이 예멘 난민을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글뿐이었다. 그들이 가짜 난민이라는 비난부터 모두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무참한 주장도 적지 않았다. 글을 읽는 동안 무참함이 어느 새 분노로 바뀌어갔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통일 따위 차라리 하지 말자.”

500여 명 남짓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통일의 순간 맞이해야 할 2500만 북 인민들을 향해 과연 댓글을 단 이들은 무어라 소리칠 것인가. 상상마저 두려울 따름이다. 차별과 배제가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들은 가짜 동포요, 잠재적 간첩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아니면 세금만 더 오르게 만드는 불편한 존재들이 아닐까.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지금도 약삭빠른 이들은 북한에 대한 투자를 이야기한다. 순간순간 북한을 착취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눈빛이 두렵다. ‘통일은 대박’이라 외쳤을 때, 그 대박은 온전히 우리만의 것이었을 뿐, 상대인 북한에겐 다만 흡수였을 뿐이었다.

바로 그 논리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한 편에선 차별과 배제의 대상, 한 편에선 착취의 대상일 따름일 북, 차라리 통일 따위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예멘 난민에 대한 갈등은 두고두고 나에게 상처로 남을 것 같다.


현실을 도외시한 너무 감상적인 생각이라 할 수도 있겠다. 제주도민이 아닌 입장에서 함부로 비판할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예멘 난민 갈등으로만 내려진 결론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곳보다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된 곳이다. 예멘 난민은 그 중 최전선에 있을 뿐이다.


예멘 난민이란 단어 자리에 다른 단어들을 넣어보자. 조선족(재중 동포), 전라도 출신, 임대 아파트 거주자, ‘지잡대’ 졸업생, 워킹맘, 성소수자, 장애인, 노인, 비혼 여성, 탈북인, 이주 노동자, 이주 여성,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 비정규직 노동자, 최저임금의 외줄에서 위태로운 알바생까지. 이들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때론 무자비하게 현실적인 차별과 배제를 매일 일삼고 있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그런데도 통일을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까. 너무 뻔뻔한 것 아닌가.

저자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을 향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바라보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을 저자가 굳이 계속 강조하는 것은 그동안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그만큼 삐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북한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너와 나를 잔인하게 구분 짓는 저열함이 내면화 수준에까지 이른 우리의 심성 자체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책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자. ‘선을 넘어 생각’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게 보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처지와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지금 벼락 같이 몰아치고 있는 한반도 평화의 물결을 끝내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해와 관용, 존중과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비단 한반도 북쪽 동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 나아가 세계 모든 힘없고 상처받은 이들에게도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통일을 꿈꿀 수 있다. 그럴 자격이 있다. 그렇다면 번영도 분명 함께 할 것이다.

책은 오랜 시간 북을 연구하고 또한 남북의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노학자의 열정과 지극함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공동집필한 강 기자는 원고 섭외 건으로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던 인연이 있어 더 반갑다. 강 기자의 글은 날카롭지만 약자에 대한 따뜻함이 늘 함께 있기에 읽기 좋았던 경험이 있다.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북 전문가의 해박함과 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 기자의 글 솜씨가 잘 어우러진 좋은 책이다. 북을 연구하는 이들은 물론, 한반도 평화를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박 교수님의 건강을 기원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연재를 너무 많이 쉬어 송구한 마음뿐이다. <통일 뉴스> 편집국이 그럼에도 아무 독촉 없이 기다려 주신 까닭은, 비록 지금은 흔들리고, 툭하면 나자빠지는 형편없는 녀석이지만 언젠가는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 주셨기 때문이라고 멋대로 혼자 생각해 본다.

그 믿음 저버리지 않도록, 형편없는 글이지만, 더욱 분발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나름 이리저리 흔들려보니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씀도 전한다. 더욱 더 사람 같은 형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