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도 해 줄 수 없는 난민 부모라 미안해, 아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ㆍ이집트인 난민 신청자 아살 부부의 기약 없는 기다림

이집트인 난민 신청자 아나스 엘 아살 부부가 지난 29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병원 신생아실에서 잠들어 있는 아들 모타셈을 바라보고 있다. 전현진 기자

이집트인 난민 신청자 아나스 엘 아살 부부가 지난 29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병원 신생아실에서 잠들어 있는 아들 모타셈을 바라보고 있다. 전현진 기자

모국서 언론인이던 남편 
정권 비판 보도로 밉보여

2016년 입국 후 난민 신청 
2년 다 돼서야 나온 ‘불인정’

갓 태어난 아들 보며 눈물 
“출생 신고할 방법이 없어
주변선 인종차별적 폭언”
 

지난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병원 신생아실. 이집트인 아나스 엘 아살 부부는 유리창 너머 갓 태어난 아들을 바라봤다. 아살 부부는 아들의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다. 국적법상 신생아는 부모의 국적을 따르게 돼 있지만 이들은 이집트 군사정권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난민 신청자 신분이다. 한국에 있는 이집트 대사관에 찾아가 출생신고를 할 수가 없다. 아살은 “아들을 보면 행복해서 눈물이 나고, 미안해서 또 눈물이 난다”며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났는데 한국에서도, 이집트에서도 아들의 탄생을 신고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아살은 2016년 7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난민 신청을 했다. 이후 1년10개월 만인 지난 5월에서야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 다시 이의신청을 냈지만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아내 역시 난민 신청을 했지만 심사는 더디기만 하다.

아살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군사정권의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보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테러를 당하거나, 3차례 감옥에 갇혔다. 이집트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판결까지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입국 절차가 가장 빠른 곳을 찾다보니 한국으로 오게 됐다.

그러나 한국은 아살을 반기지 않았다. ‘G1-5 비자’를 발급받은 난민 신청자는 난민 심사가 끝나기 전까지 연장을 계속해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알루미늄 공장이나 공사장 등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하루 6만~8만원의 일당을 받았다. 무슬림인 제납은 히잡을 쓰고 다녀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임신을 한 뒤에는 외부 활동도 어려웠다. 

<b/>“난민보호법 준수를”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난민지원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긴급 기자회견에서 단식농성 중인 이집트인 난민신청자 압둘라흐만 자이드가 난민들이 처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난민보호법 준수를”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난민지원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긴급 기자회견에서 단식농성 중인 이집트인 난민신청자 압둘라흐만 자이드가 난민들이 처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한가닥 희망이었던 난민 신청 결과가 ‘거부’로 돌아오자 아살은 다른 이집트인 난민 신청자들과 함께 지난 16일부터 청와대 인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무기한 단식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출산 전날까지도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난민 인정 요구 집회에 참석했던 제납은 출산 1시간 전에야 병원에 도착해 아이를 낳았다. 예정일보다 2주 정도 빨랐지만, 3.81㎏의 건강한 남자아이였다. 아살 부부는 아들의 이름을 ‘모타셈’이라고 지었다. 아살은 “모타셈은 아랍어로 저항과 시위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아살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제주 예멘 난민사태 이후 달라진 한국인들의 시선이다. 아살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우리 한국 국민은 이슬람의 교활함을 알고 있다. 당신네들이 더 발악할수록 우리 국민은 분노하고 난민법은 더 빨리 폐지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라”라는 등의 비난·협박 메시지가 부쩍 많이 온다고 했다. 

힘들게 단식을 하면서도 아살은 아들을 보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아들이 커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훌륭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어느 나라의 사람도 아니지만, 한국에서든 이집트에서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납도 “아이를 낳고 나니 고향에 있는 엄마와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 지금 이집트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도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30일 아살은 한국의 난민 지원 시민단체들과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살은 이 자리에서 “제 아들의 신생아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주변에선 저와 가족들을 향한 인종차별적인 폭언이 계속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난민 보호를 위한 법을 준수하고,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갈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302145005&code=940100#csidx915b7676ff93a7e9ffc90685d379500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