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서 200일 시리아난민의 ‘터미널’… 영화와 달리 ‘새드엔딩’?

서동일 특파원입력 2018-10-04 03:00수정 2018-10-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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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공항서 체포돼 추방위기
시리아 난민 하산 알 콘타르 씨는 1일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말레이시아 국제공항 환승 라운지에서 살았다. 에콰도르,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탓이다. 인형과 화분, 스마트폰을 벗 삼아 지내고(왼쪽 사진) 공항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머리도 직접 깎으며 200일 넘게 공항에서 머물렀다. 사진 출처 하산 알 콘타르 씨 트위터
엄마 품 같던 고국 시리아는 8년째 내전(內戰) 중이다. 40만여 명이 죽었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다. 정부는 해외 근무 중인 나에게 “귀국해 참전하라”고 했다. 두려웠다. 그래서 병역을 거부했다. 그러자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나라도 사라졌다. 내가 지낼 수 있는 공간은 국제공항 환승 라운지뿐이다. 

올해 3월 초부터 200일 넘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숙식을 해결해온 시리아인 하산 알 콘타르 씨(37) 이야기다. 그가 1일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돼 시리아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다. 인권단체들은 “그를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선 안 된다”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2006년부터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보험 마케팅매니저로 근무해온 그는 2016년 10월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됐다. 시리아대사관이 병역 기피를 이유로 그의 여권을 갱신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간신히 받은 2년짜리 임시 여권으로 시리아 국민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로 왔다. 3개월 관광비자로 말레이시아에 머물던 그는 이 비자 역시 만료되자 에콰도르로 가려 했으나 출발 직전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했다. 이후 캄보디아로 목적지를 바꿨지만 현지에서 입국을 거부당해 다시 말레이시아로 돌아왔다. 말레이시아조차 그의 재입국을 거부하자 공항에 눌러앉았다. 

무일푼 상태인 그는 환승 라운지에서 자고, 화장실에서 씻었다. 식사는 항공업체의 지원을 받았고 휴대전화 사용료 등 소액의 생활비는 인권단체와 그를 알아보는 여행객들의 도움으로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항상 불이 켜져 있고, 여행객들로 소음이 끊이지 않는 공항에서의 생활이 힘들고 어렵다”고 호소해 왔다. 6월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아무도(어느 나라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 상처가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망명을 신청한 상태다. 

쿠데타 때문에 모국이 ‘유령국가’가 되면서 미국 공항에 갇혀 지내게 된 남성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 ‘터미널’(2004년)이 콘타르 씨에겐 실제 삶이자 현실인 셈이다.

다툭 세리 무스타파르 알리 말레이시아 이민국장은 2일 “콘타르 씨가 머무는 공간은 오직 비행기 탑승객만을 위한 공간이다. 그의 신변 처리 문제는 시리아대사관과 접촉해 상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던 말레이시아 정부가 갑작스레 그를 체포한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필 로버트슨 아시아지국 부국장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콘타르 씨가 시리아로 추방될 경우 심각한 고통과 박해를 받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제난민협약은 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난민을 해당 국가로 강제 추방할 수 없도록 하는 강제송환금지(농르풀망·non-refoulement)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말레이시아는 국제난민협약 가입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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