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나빠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18 전국이주노동자대회] 외쳐져야 하지만 말해지지 않는 것들
'사장님 나빠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30일 부평역 광장에서는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김포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미얀마인 T 씨는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들이닥친 출입국의 폭력적인 단속을 피하다 창밖으로 떨어져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T 씨의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각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겪은 자신의 노동과 노동환경에 대해 들려줬다. 

이주노동자 S 씨는 자신의 눈앞에서 동료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감전의 위험이 있는 작업현장에서 안전 장치 하나 없이 작업을 해오던 S 씨의 동료 이주노동자는 S 씨와 함께 일하던 중에 감전사로 목숨을 잃었다. S씨는 고용주에게 작업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근무할 수 없으니 회사를 옮기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S 씨의 고용주는 자신의 허가 없이 근무지를 옮길 수 없는 '고용허가제'의 허점을 악용해 고용변동신고서에 사인을 해 주는 대가로 100만 원을 요구했다. 그리고 S 씨의 마지막 달 급여 200여만 원도 포기해야 회사를 옮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S 씨는 감전사한 동료처럼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사장의 부당한 요구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 이주노동자 B 씨는 외딴 농장에서 딸기를 따는 일을 했다. B 씨는 농장 옆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남성인 사장과 같은 건물에서 단둘이 살아야 했다. 또한 근로계약과는 달리 하루에 10시간, 11시간 일을 했고 월급도 항상 두 달씩 늦게 받았다.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 사장님과 단둘이 있느니 차라리 밖에 나와 산을 보며 앉아 있는 것이 나았다. 한국에 온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한국 땅 어디에도 B씨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는 없었다.

비단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만난 이주노동자들은 부당하게 차별당했고 착취당했고,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그들은 월급이 밀리고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욕설을 들으며 불편한 기숙사에서 살아야 했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소수의 이주노동자들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겪는 부당한 일상을 '외국 사람이니까', '이주노동자니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라고 정당화시키는 한국 사회였다. 한국의 이주노동 정책과 법은 국적과 피부색에 따라 노동의 등급을 나누고 가치를 달리한다. 단지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고 차별을 제도화 하려 한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상여금도 연차수당도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곧 그들이 받는 최고임금이다. 농축산업 노동자들의 경우 이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곳이 수두룩한데도 최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른바 '외국인 근로자 수습제'라는 명목으로 외국인노동자가 단순 노무 업무를 수행하거나 입국 후 2년 이내에는 현행 최저임금보다 적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 이주공동행동


이주노동자를 향한 차별과 착취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국적과 피부색, 성별과 종교가 다르더라도 인간의 노동은 같다. 노동하며 흘린 땀방울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투명하고 정직하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외치기 위해 전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모인다. 

사업장이동의 자유 쟁취,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쟁취를 위해 다음달 14일 광화문에서 2018 전국 이주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착취에 내몰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고, 괜찮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는 자리, '이 세계에서 말해져야 하고 외쳐져야 하지만 말해지지 않는 것들, 애써서 말하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존 버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자화상' 중)을 함께 말하는 자리, 그 자리에서 더 큰 연대의 음성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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