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주쿠구에서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 소속 회원들이 욱일기 등을 들고 혐한시위를 벌이자 ‘인종 차별주의 반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시민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 연합뉴스
#1 이상희씨(가명)는 재일동포 4세다. 그는 나이를 묻는 질문에 “20대 초반”이라고만 답했다. 자신의 국적은 일본, 부모의 국적은 한국이다. 조선학교를 다닌 부모와 달리 그는 어려서부터 일본 정규 교육과정을 밟았다. 그는 “그래서 한국 말은 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상희’라는 이름도 집 밖에서는 불릴 일이 없다.

일본 국적을 택하게 된 건 일상적인 차별 때문이다. “조선인이 강도질을 한다”, “지진 때문이 아니라 조선인이 문화재를 파괴했다”, “조선인들이 무너진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친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의 소문이 아니다. 2015년 도쿄 지진, 2015년 구마모토현 지진 때도 9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졌다.

이씨는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자신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그는 어린 시절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이씨는 “가는 길에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던 표정이 기억난다. 무시라고 해야 하나? 피한다고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후 치마저고리는 입지 않았다.

이씨는 종종 제주도를 찾는다. 증조할아버지 고향이 제주도다. 지난해 초 그는 제주도 여행을 검색하던 중 예멘인들이 내전을 피해 대거 제주도로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했다. 한국 여론을 본 이씨는 깜짝 놀랐다. 그는 “한국사람들이 난민에게 하는 말이 일본 우익들이 재일한국인에게 하는 말과 너무나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2 다큐멘터리 <하늘색 심포니> 박영이 감독(43)은 재일동포 3세다. 국적은 한국이다. 아버지 국적은 한국이고 어머니는 ‘조선적’을 유지하다 10년 전쯤 한국 국적을 택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건너간 조선사람들은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 국적을 받았다. 해방과 분단 이후 이들은 무국적자가 됐다. 박 감독은 이를 ‘난민’이라고 표현했다.

박 감독은 조선학교를 다녔다. 조선학교는 교복에서부터 차이가 드러난다. 학창시절 내내 온몸으로 차별을 겪었다.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는 일상이었고 돌을 맞는 일도 잦았다. 그는 “아주 어릴 때는 그냥 도망쳤고 청소년기에는 다른 학교 아이들과 많이 싸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말투는 시종 덤덤했다.

일본의 ‘혐한’은 현재진행형이다. 박 감독은 수없이 혐한시위를 목격했고 직접 촬영해 영화에 담았다. 그는 혐한시위에 대해 “정말 기분이 나쁘고 상처를 받는다”면서 “나는 민족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한창 정체성 문제로 고민할 시기의 어린아이들은 혐한발언이나 시위를 보는 게 정말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달 한국을 찾는다. 직업 특성상 한국영화도 많이 본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조선족에 대한 차별이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가 일본에서 당하고 있는 일을 한국 사회가 하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렇게 하면 일본에서 우리 동포를 차별하는 사람들과 같은 수준이 된다. 그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멘인에 대한 혐오 발언에 깜짝 놀라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에 대한 혐오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멘 난민 관련 기사에는 ‘한국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무슬림의 선교전략이다’ ‘정부가 예멘 난민 한 명당 138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난민 신청자들에게 집을 제공한다’ 등의 댓글이 많다. 모두 가짜뉴스다.

외국인 노동자나 중국동포(조선족) 관련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파키스탄인의 강간 비율은 한국인의 5.5배다’, ‘힘들다고? 그럼 니들 나라로 가라고. 배가 불렀네’, ‘외노자들 때문에 한국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는 조선족이다’ 등도 역시 혐오에 기반하고 있으며 사실이 아니다.

이런 이방인 혐오와 배제는 한국 사회가 분노하는 일본 사회의 혐한과 닮았다. “조선인들은 수도요금, NHK 수신료, 자동차세를 면제받고 통근 정기권을 할인받는다”, “공직과 언론사에 우선 채용된다” 등의 소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재일한국인은 선거권이 없고 국가공무원이 될 수 없다. 조선학교는 미용학교 등과 함께 ‘각종학교’로 분류돼 있다.

지난해 말 일본 오사카의 한 택시회사가 소속 택시 60여대에 ‘헤이트 스피치, 용인하지 않는다’는 스티커를 붙이고 운행한다는 사실이 한국에 알려지자 기사에는 응원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이 나타난다. 민족과 국민을 동일시한다”며 “그 결과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받았던 수모를 한국이 이방인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 일본을 욕하면서 정작 우리 얼굴은 못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차별을 겪은 이들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혐오발언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편견이 혐오가 되고 차별이 되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단계적인 과정이 아니라, 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가 저들을 반대한다가 되고 저들을 반대한다가 저들을 박멸하자가 되는 건 순간”이기 때문이다.(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에서는 혐오표현을 ‘표현’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금지한다. 일본도 오사카에서 2015년 시민들의 힘으로 ‘헤이트 스피치 대처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졌고, 2016년 5월에는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책 추진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처벌규정은 없지만 혐오표현 대처를 국가적 과제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3자도 혐오표현이 발붙일 곳 없도록 연대해야 한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은 현실의 권력관계를 인정하고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혐오가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의 ‘카운터스’처럼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카운터스는 혐한시위 등을 반대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차별이 없었어도 일본으로 귀화했을지 이씨에게 물었다. 이씨는 곧바로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귀화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무척 슬퍼했다”며 “강제는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강제귀화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방인 혐오가 한 개인에게는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면서 4대에 걸쳐 받았던 차별을 한국 사회는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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