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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우리) 저버린 US(미국)

등록 :2019-03-25 15:02수정 :2019-03-2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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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아웃’ 감독 조던필 신작 ‘어스’

‘도플 갱어’ 통해 생생한 공포 자극 
트럼프의 이민정책 등에 날선 비판
1인2역 연기력도 흥행에 한몫
영화 <어스>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어스>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새롭고 독창적이면서도 날이 선 공포영화 <겟 아웃>으로 전 세계 영화 팬을 단숨에 휘어잡았던 조던 필 감독이 신작 <어스>로 돌아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공포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하고 풍부한 은유와 송곳 같은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가득하다. 한국에서도 214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깜짝 흥행’에 성공했던 <겟 아웃>처럼 <어스> 역시 영화 속 숨겨진 코드를 해석하기 위한 ‘엔(N)차 관람’ 열풍을 불러올 수 있을까? 한국보다 앞선 지난 22일 개봉한 북미에서는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겟 아웃> 흥행성적의 3배를 뛰어넘는 기세를 올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겟 아웃>을 통해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 갈등에 카메라를 들이댔던 흑인 감독 조던 필. <어스>에서는 그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미국 사회 전체로 확장한다. 영화 <어스>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온 이민자 문제, 계층 문제, 인종 문제, 미국과 멕시코 국경문제 등의 속살을 이리저리 헤집는다. 공포의 깊이 만큼이나 문제의식도 깊이를 더했다.

영화 <어스>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어스>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는 1986년 미국을 휩쓴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Hands Across America) 캠페인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는 인종·성별·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길거리로 나와 15분간 손을 맞잡는 퍼포먼스를 하며 굶주린 사람을 위한 기금모금을 독려했던 캠페인이다. 그 후 30여년, 그들은 정말로 하나가 됐을까? 극 중 어린 애들레이드는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 운동의 ‘인간 체인’이 완성된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비치 놀이공원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 이후 어른이 돼 가족을 꾸린 애들레이드(루피타 뇽)는 식구들과 함께 산타모니카를 다시 찾고, 그곳에서 가족들과 똑같이 닮은 ‘도플갱어’의 습격을 받으며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진다.

영화는 애들레이드의 가족은 물론 그 이웃, 미국 사회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은 ‘도플갱어’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단번에 밝히지 않는다. 가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날뛰는 도플갱어의 모습에 경악하며 공포영화의 장르적 재미에 젖어들 때쯤, 영화는 감독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슬그머니 드러낸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냐?”고 묻는 애들레이드 가족의 물음에 도플갱어가 “우리는 미국인이야”라고 답하는 장면이나, “너희들이 지상에서 호의호식할 때, 우리는 지하에서 살았다”고 일갈하며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인간”이라고 강조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도플갱어에 쫓겨 도망갈 곳을 고민하는 가족에게 애들레이드가 “멕시코로 가자”고 말하는 장면에선 쓴웃음마저 번진다. 이는 ‘이민자의 나라’라는 정체성을 망각한 채 이민자를 배척하며 경계 짓는 현실의 미국 사회에 던지는 감독의 칼날 같은 비판인 셈이다. 영화의 제목인 ‘어스’(US)가 ‘우리’와 ‘미국’(United States)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떠올리면 감독의 메시지는 좀 더 분명해진다.

영화 <어스>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어스>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어스>는 공포라는 장르적 특성에 맞게 고어와 슬래셔 무비에 가까운 다소 잔혹한 장면도 꽤 등장한다. “무섭다”며 눈을 감기 전에 생각해보자. 그 역시 포용성을 저버린 미국 백인 주류사회의 보수성이 유색 인종이나 이민자에게는 공포와 폭력, 그 자체임을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영화를 관람하기 전부터 하나의 해석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조던 필 감독 역시 “내가 담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지만, 사람마다 이 영화가 각자 다른 의미와 그림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다양한 미장센에도 주목해보자. 마이클 잭슨의 명곡 ‘스릴러’, 스필버그 영화 <죠스>가 그려진 티셔츠, 시종일관 영화에 등장하는 하얀 토끼와 가위…. 전작 <겟 아웃>의 티스푼과 사슴, 목화솜처럼 관객의 넘쳐나는 ‘해석’을 기다리는 은유다. 마지막으로 꼭 언급해야 할 것은 주연인 루피타 뇽을 비롯해 아역 에반 알렉스에 이르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도플갱어까지 ‘1인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표정 하나로 소름 끼치는 명장면을 만들어낸 이들의 연기력은 바로 <어스>의 가장 큰 무기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87273.html#csidxca0c8dd92a7d36b82328179a73da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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