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마에게>가 기록한 전쟁의 참상... 중동의 전쟁이란 이런 모습이다

[오마이뉴스 여옥 기자]

전쟁 영화는 많다. 인류가 쉬지 않고 전쟁을 해온 탓에 그만큼 숨겨진 사연이 많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가르는 극적인 상황과 스케일 덕에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경우도 많다.

그중 <사마에게>(2019)가 나의 관심을 끈 것은 포스터 정면에 엄마한테 매달려 있는, 이제 갓 돌이 지났을 것 같은 아기 '사마' 때문이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지듯, 내게 조카가 생긴 이후로는 유독 아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쟁을 체험하는 영화
 
▲  영화 <사마에게>에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세 가족. 왼쪽부터 함자 알-카팁, 사마 알-카팁, 와드 알-카팁.
ⓒ (주)엣나인필름

 
영화 <사마에게>는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알레포(Aleppo)에서 살던 사람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다가 빼앗겨버린 일상을 따라가는 기록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이자 감독이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학생이었다가 사마의 엄마가 된 '와드'는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시민들이 결국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던 과정을 직접 카메라에 담았다.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던 와드는 태어나서 본 게 전쟁밖에 없는 자신의 딸 사마에게 용서를 구한다. 

와드의 동지였다가 남편, 사마의 아빠가 된 '함자'와 그의 친구들은 병원을 만들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한 처참한 일상이 화면에 펼쳐진다. 영화 초반부터 쿵쾅대는 폭격소리에 움찔대다가 그 소리에 아주 조금 익숙해질 즈음 등장하는 사상자들의 모습은 탄식과 신음으로 입을 틀어막게 한다.

집으로 떨어진 폭탄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동생을 안고 뛰어온 형의 먼지 뒤덮인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르고,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가 통곡할 때 주변은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하다. 부상을 입어 위험한 상태에 처한 임신부에게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가 숨을 쉬지 않을 때는 나도 따라 숨이 막혔다. 병원마저도 폭격을 당해 카메라가 꺼져버렸을 때는 더 이상 한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처절하고 끔찍해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을 순간에도 끝까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와드 덕분에 <사마에게>는 4D 같은 체험 영화가 돼 버렸다.
 
사마가 포대기에 쌓여 싱긋 배냇짓을 하고 까꿍 놀이에 까르르 웃을 때마다 나는 더 불안해졌다. 혹시 영화 말미에 '세상을 떠난 사마에게 바치는 영상편지' 같은 문구가 나오진 않을까 초조해서 같이 웃을 수가 없었다(<사마에게> 연관 검색어로 '결말'이 뜨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만큼 많은 어린이들이 다치고 죽는다. 모든 전쟁에서 그렇듯이. 폭격이 시작되면 지하로 피해야 하고 밀려드는 부상자를 치료하는 것도 바쁘지만, 알레포 사람들은 이웃과 둘러앉아 밥을 먹고, 농담을 나누며 웃고, 어렵게 구해온 과일 하나에 행복해 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아이들은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뛰논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그곳에서 마음만은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일상을 지켜내려는 노력 그 자체가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이었다. 

아이들이 말하는 '확산탄' 
 
▲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서 ‘확산탄’을 검색하면 시리아에서 사용된 확산탄에 대한 뉴스와 사용중단을 촉구하는 당시의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확산탄금지협약 발효 4주년에 진행한 ‘지하철을 타자’ 캠페인.
ⓒ 전쟁없는세상

새까맣게 타버린 버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폭탄이 버스에 떨어졌는지 아느냐고 묻자, "확산탄"이라고 해맑게 대답한다. 확산탄(cluster bomb, 집속탄)은 큰 폭탄 안에 수많은 소형 폭탄이 들어 있어 넓은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무기다. 불발탄의 피해가 심각해 대표적인 비인도 무기로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금지운동 덕분에 만들어진 확산탄금지협약(The 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 CCM)은 2010년 8월 정식으로 발효됐고, 한국에서도 반대 캠페인을 나름 열심히 진행했다. 확산탄 생산기업인 한화와 풍산의 사옥 앞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이 기업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을 상대로 투자 철회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확산탄금지협약 2차 당사국회의에 참석하러 레바논에 갔었던 2011년은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해였고,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이 맞닿아 있어서인지 외교부에서 철수를 권고하는 경고 문자가 계속 왔던 기억도 났다. 회의에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아에서 확산탄 사용이 확인돼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졌는데, 그 확산탄이 알레포에도 떨어졌다는 것을 아이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아찔한 기분이었다. 

과연, 희망은 어디에
 
▲  영화 <사마에게> 중 한 장면.
ⓒ (주)엣나인필름

 
그동안 한국의 평화단체들도 시리아 내전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적이 있다. 기자회견도 하고 대사관 앞 1인시위도 했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시리아에 가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이란-미국의 갈등으로 위기가 고조된 중동에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내봐도, 결국 한국은 '독자 파병'이라며 호르무즈 해협에 청해부대를 보내기로 했다. 과거 이라크전쟁에 동참했던 과오에 대한 반성도 없이 국민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진행된 이번 파병을 보면서, 정말이지 할 말을 잃었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면서 다른 지역에는 군대를 보내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전쟁으로 인한 난민은 거부하면서 그 지역의 '안전'을 위해 군대를 보낸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태어나 보니 전쟁터'였던 사마에게 이 파병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알레포를 떠난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난민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 영화가 수많은 영화제에 초대받고 많은 상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시리아의 상황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23일 개봉한 이 영화는 벌써 전 세계 영화제 61관왕에다가 올해 아카데미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영관이 별로 많지 않아 언제 어디서 상영하는지 찾아보는 노력을 들여야만 만날 수 있다.

또다시 중동 지역에 군대를 보내버린 나라의 국민으로서 면목이 없어도, 영화를 통해서라도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들이고 괴롭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영화를 체험한 이후에는 인터넷 기사로만 스쳐지나가던 시리아 내전이, 중동의 분쟁이, 전쟁난민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지는 않을 테니까. 이렇게 시작된 감정의 변화가 관심이 되고 행동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 역시 사마에게 용서를 구한다.
 
▲  시사회장에서 나눠준 미니 포스터. 유엔난민기구에서도 함께 나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고, 외국 친구들도 꽤 많이 보였다.
ⓒ 여옥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