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행렬을 멈춰라-

이주노동자를 자살로 내모는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또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 때문에 죽었다. 지난 215일 밀양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30세의 네팔 노동자가 자살한 것이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의 친동생 증언에 따르면 한 달 동안 휴가를 주면 네팔에 다녀오겠다고 요청했는데 고용주가 허가해주지 않아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는 가족에게 일이 생겨 네팔에 다녀오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자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을 뿐 누적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과로로 힘들어 고용주에게 여러 차례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고 휴가를 가고 싶어 했다고 한다. 친동생에 따르면 고용주에게 폭언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과로와 고용주의 폭언 등에 시달리면서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고, 휴가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가정사에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게 되자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고용주의 허락이 없으면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고용주가 법률을 위반하면 옮길 수 있지만 이때조차 임금체불, 폭언, 폭행 등 고용주의 불법 행위에 대한 입증 책임은 이주노동자에게 있다. 한국의 언어, 법률,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에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마음대로 일을 그만두기도 어렵다. 계약을 중도 해지하려면 고용센터에 고용 변동 신고를 해야 하는데, 신고 주체는 고용주다. 그래서 이주노동자가 계약이 끝나기 전에 본국으로 돌아가려면 고용주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허가를 받지 않고 본국에 돌아가면 불성실한 이력이 남아 나중에라도 한국에서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고용허가제가 가족동반을 금지하는 것도 이주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짧게는 3, 길게는 98개월을 한국에서 일하게 하면서 가족을 만날 수 없게 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정서적·심리적으로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아무리 힘들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마음대로 사업장을 옮길 수도, 일을 그만 둘 수도, 가족을 만날 수도 없는 것이 강제노동, ‘현대판 노예제가 아니면 무엇인가!

 

고용허가제가 얼마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지는 산재 통계를 통해 잘 드러난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내국인의 6배가 넘는다. 산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수는 201671명에서 2018136명으로 급증했다. 사망에 이르지 않은 경우까지 합하면 한 해 7300여 건에 달한다. 산재 은폐가 빈번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고용허가제로 인한 이주노동자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2017년 네팔 노동자 깨서브 씨가 건강에 좋지 않아 다른 공장으로 옮기고 네팔로 돌아가 치료받고 싶은데 안 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한국에 온지 14개월 밖에 되지 않은 27살의 청년이었다. 바로 다음 날 25살의 네팔 노동자 다벅 싱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 역시 생전에 주변 동료들에게 고용주가 휴가도 안 주고 사업장 변경도 안 해준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고용주는 자살한 노동자가 오는 5월 체류기간이 만료되니 그때까지 일하고 가라며 휴가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은 부족한 일손을 메우며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고용허가제로 인간다운 대우를 해주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죽음의 행렬을 방치할 것인가.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노동권·인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2020221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