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차별 야기하는 감염병예방법 개악 시도를 즉시 중단하라! >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비용이 국민에게 계속 부담이 된다면 외국인 입국자에게 진단비와 치료비 부과를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건복지부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중앙·지방정부와 건강보험료에서 치료비를 지불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우리는 정부에 관련 보도 내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실 확인을 먼저 요구하며, 관련 검토가 무분별하게 추진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외국인 입국자의 진단비·치료비 부과를 검토하기 위해 내세운 논거는 입국 외국인의 코로나19 확진 증가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722일 기준으로 해외 유입 확진자 중 내국인은 1,438명으로 67.7%이며 외국인은 687명으로 32.3%이다. 정부는 초기에 비해 외국인 확진자 비중이 늘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전체 규모에서 외국인 확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적은 현실에서 단순히 외국인 확진자의 증가만을 비용 부담의 이유로 드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왜 외국인 확진자가 최근에 부쩍 늘고 있는지 다각도로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먼저이다. 오히려 정부는 외국인 확진자 증가가 외국인들이 한국에만 가면 공짜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돌고 있기 때문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21일 유태호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도 이 근거 없는 낭설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식적인 근거를 갖추지 못한 주장에 정부 부처가 휘둘리고 이에 근거하여 정책을 바꾸고 법률을 고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정부가 감염병예방법 개정을 저울질하는 것은 국제보건기구가 정한 체류 국가의 감염병 확산예방을 위한 진료, 접종, 격리 등의 비용 청구금지 규칙에도 어긋난다. 정부는 해외 실태를 파악한 결과, 이를 제대로 지키는 나라는 손꼽을 정도에 그쳤음을 확인했다고 핑계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서 모범적인 방역 국가로 우뚝 서게 한 문재인 정부가 이런 빈약한 핑계와 논리를 앞세워 국제기구의 규칙에 위배되는 일을 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이는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다짐과도 맞지 않는다.

 

혹자는 국민을 우선으로 삼아야지 외국인이 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19 진단비와 치료비의 80%는 건강보험료에서 부담하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에 가입한 외국인이라면 감염병 검사와 치료에 관한 한 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 90일 이상 장기체류하는 외국인은 대다수가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다.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고 필요도 없는 단기체류 외국인이라면 합리적 범위에서 별도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노동과 유학 등 장기체류 외국인에게까지 획일적으로 비용을 물리고자 한다면, 이는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서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 할 것이다.

 

정책이나 제도를 재검토할 때는 정당성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재정만을 고려한 차별적 행정이 어리석게 추진된다면, 노동력 공백으로 인해 생산현장의 위기가 점점 증가할 수도 있고 유학생 감소로 대학운영의 위기가 증가할 수도 있다. 외교적 마찰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부가 감염병 대처에 관한 한 외국인을 내국인과 다르게 대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 국민이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국익을 위하고 정부가 표방한 우리 국민을 위한 방역인지 돌아보기 바란다.

혹시라도 감염병예방법에 손질을 가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우리 사회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힘들게 구축해 온 보편적 의료복지 원칙을 훼손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정부의 감염병 관리 실태와 대응 수준을 점검하게 함으로써 팬더믹 현상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보건복지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우리는 믿어 왔다. 그러나 내국인에게만 치료비가 면제되는 개악이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추구해 온 보편적 의료 복지 원칙은 한순간에 인종차별로 바뀔 것이다. 참으로 외국인 입국자의 확진 증가 추세가 우리 사회의 복지 원칙을 후퇴시키고 법정신을 훼손하며 국제사회 규칙마저 무너뜨리면서까지 법 개정을 검토할 일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외국인 혐오가 코로나19를 구실로 터져 나오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인간존중과 포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연대와 협력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많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 구축한 감염병 대응 모범국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법과 제도를 함부로 손대는 것은 감염병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대다수 이주민들이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듯, 위기 때마다 가장 힘없는 이주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비뚤어진 관행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실직하거나 고용 위기에 처한 이주민 현황을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함을 거듭 천명하는 바이다.

 

<우리의 주장>

 

- 정부는 감염병예방법의 개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고통 겪는 이주민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

- 정부는 코로나19를 틈타 기승을 부리는 이주민 혐오와 차별에 적극 대처하라.

- 정부는 집권 후반기를 맞아 포용력 있는 이주민 정책수립 및 시행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라.

 

 

2020. 7. 23.

 

 

경남이주민센터(이사장 선종갑, 대표 이철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경남지부(지부장 박미혜)

경남이주민연대(14개국 : 네팔/몽골/미얀마/방글라데시/베트남/스리랑카/우즈베키스탄/인도네시아/일본/중국/캄보디아/태국/파키스탄/필리핀 교민회)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