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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시작된 귀환, 배움 나누며 미래 일궈요

등록 :2021-01-30 12:19수정 :2021-01-3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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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란주의 할 말 많은 눈동자
⑭ 아웅틴툰

난민살이 접고 미얀마 정착할까
몇차례 오가며 고민하던 어느날
코로나에 가로막혀 주저앉은 고향

깨지고 쓰레기 쌓인 마을 우물
이웃들과 손잡고 새단장하는 데
한국에서 한 경험과 배움이 도움

아직 답답하게 막힌 내 나라
더 나은 삶과 민주주의 위해
고르게 배울 기회 나눌 수 있다면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한국에 일하러 왔던 아웅틴툰(46·남성)은 뜻하지 않게 정치 난민이 되었다. 근래 미얀마의 정치 상황이 달라지면서 고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자, 한국과 미얀마를 오가며 차분하게 귀환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반체제 인사’ 입국 허가에 들떴지만

내가 미얀마 땅을 다시 밟은 것은 3년 전이었다. 열아홉살이던 1994년에 떠났으니 24년 만이었다. 군부가 통치하던 미얀마가 2010년 총선을 거쳐 명목적이지만 민간정부로 바뀐 뒤, 국외 반체제 인사의 입국을 허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소식에 나는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한국 주재 미얀마대사관은 딴소리를 했다. 그동안 밀린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과거 미얀마 정부는 모든 국외 체류 미얀마인에게 수입 여부와 관계없이 체류기간에 따라 계산한 세금을 무조건 내라 했는데, 그것을 자발적으로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금액이 커 부담이기도 했고, 군사정권에 돈을 안 보태겠다는 납세 거부 운동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를 써도 소용없는 것이, 여권을 재발급받으려면 꼼짝없이 덜미를 잡히고 만다. 다행히 문민정부 꼴을 갖춘 2011년부터는 세금이 없어졌는데, 그래도 그 전까지 밀린 것은 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준법서약서(!)까지 써야 한다. 내게 붙은 세금은 무려 700만원이었다. 나는 ‘배 째라’는 심정으로 대사관과 담판을 지어 액수를 절반으로 깎았다. 망설이는 손을 다그쳐 준법서약서를 쓰고 미얀마 여권을 받았다.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법무부 출입국에 문의했을 때는 더 기막혔다. 난민인정자가 귀환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당분간 난민 자격을 유지한 채 미얀마를 오가며 귀환을 준비할 수 있을지, 영구 귀환을 한 뒤 다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지,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가고 싶으면 난민 지위 포기하고 가면 되지 않아요? 갔다가 왜 다시 와요?’ 내 아무리 난민이지만, 삶의 뿌리를 그렇게 단번에 뽑아 옮기기는 힘들어서요, 혀끝에서 찰랑거리는 말을 누르고 입을 닫았다. 그런 말조차 구차스러웠다. ‘난민’이 되기도 어려웠지만 돌아가는 길도 어려웠다. 그냥 내 방식으로 하자, 하다 보면 뭔가 길이 나오겠지.

17년 전, 한국 체류 미얀마 사람들이 만들었던 단체 ‘버마행동’은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싸웠다. 한국까지 와서 힘겹게 일하고 있는 국민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국민을 상대로 위조여권을 팔아먹고, 여권 재발급 비용을 수백만원씩 받고, 세금이라며 돈을 갈취하는 정부와 공무원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말이 좋아 ‘싸움’이지 내용은 보잘것없어서, 그런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몇번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미얀마 정부는 우리를 과격분자로 몰아갔다. 그럴수록 우리의 목적과 요구는 점점 나라의 민주화로 확장되었다. 정치적인 활동 하지 말라고, 한국 오기 전부터 신신당부하던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지만 한번 잡은 호랑이 꼬리를 중간에 놓을 수는 없다. 미얀마 정부는 우리에게 ‘테러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한국 정부에 우리를 잡아 보내라고 했다. 나와 동료들이 느닷없이 ‘반체제 인사’가 되고 ‘난민’이 된 과정은 이토록 어이없다.

준비 없이 다시 맞은 고국 생활

하늘에서 내려다본 양곤의 하늘은 깜깜했다. 전기가 많이 부족하구나. 아니 내가 풍족한 사회에 익숙해진 탓이겠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첫 방문에 나는 들뜨고 행복했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나라 곳곳을 돌아보았다. 여전한 가난이 마음 아팠다. 그 뒤 몇차례 미얀마를 방문하며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정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생활 근거가 한국에 있는데 다 접고 돌아오면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두 주먹에 움켜쥔 패기만 믿고 국경을 넘었던 어릴 적 무모한 짓을,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 또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얀마에 여러 날 있다 보니 미디어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한국으로 연수 왔던 미얀마 정보통신부 공무원들을 통역하며 인연을 맺은 적이 있는데, 내 방문 소식을 듣고 반갑게 부탁해 온 것이다. 한국에서 이주민방송에 참여하며 미디어를 배운 뒤 줄곧 이주민들에게 미디어 제작을 가르쳐왔고 방송제작사에서도 일하고 있던 터라, 교육은 내가 어렵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여러 방송사 직원들과 학생들에게 카메라 사용법과 편집기술을 가르친 것이 첫 시작이었다. 이후 여기저기서 요청받아 국영 언론의 사진기자들, 만달레이대학 교수들, 학생들, 시민들과 ‘스마트폰 디렉터’라는 제목으로 교육을 했다. 국영 언론의 사진기자들은, 더이상 사진만으로는 뉴스를 제작하기 힘들다는 판단으로 영상뉴스를 제작하고자 했으나 영상장비와 편집용 컴퓨터를 마련할 예산이 없어 벽에 부딪혀 있었다. 교육에 참여한 이들은 별도 장비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영상뉴스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교수들도 스마트폰으로 수업자료로 쓸 동영상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한국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내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귀환해서 무슨 일을 할지, 마음속에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이제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아뿔싸, 2019년 다시 미얀마에 왔던 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줄줄이 맞아야 했다. 한국 비자가 끝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데, 미얀마에서 재발급받은 여권에 이름 한 글자가 잘못되어 다시 발급받느라 여러달을 속절없이 까먹었다. 곧이어 코로나 상황이 닥쳐왔다. 비행기 길은 막히고 한국 비자도 죽었다. 어느새 나는 방문객과 귀환자 사이 어디쯤에 멀뚱하니 서 있었다. 귀환은 그렇게 덜컥, 시작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도시에서 하려던 교육이 모두 취소되었다. 방역을 위해 지역 간 방문도 금지되었다. 나는 고향 마궤주 차우투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고향에서는 연간 3모작을 한다. 봄·여름 사이에 벼농사를 지어 수확한 뒤, 논에서 물을 빼고 해바라기, 콩 등을 심어 기름을 짠다. 쌀과 기름은 주로 가족들 식량이다. 그 뒤에는 마늘을 심는다. 마늘은 팔아서 돈을 번다.

농사를 짓다 보니 날이면 날마다 화가 치밀었다. 우리 나라는 독자적으로 종자 생산을 하지 못하고 중국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농간과 우리 정부의 무능력이 겹쳐 농민들은 종자를 1㎏에 3000~5300차트(약 2500~4500원)를 주고 사야 한다. 추수한 벼를 팔 때는 최고 품질도 1㎏에 겨우 350차트를 받는다. 종자 가격이 벼 판매가의 무려 15배라는 얘기다. 나는 제일 비싼 종자를 샀는데도 발아율이 너무 낮았다. 이거 망했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모를 심고 내 논과 이웃 논을 오가며 종자별로 벼 키와 이삭 길이, 낟알 수를 비교하고 어떤 병이 있는지 점검하며 생육과 수확량을 연구했다. 직접 농사짓는 것은 처음이지만, 한국종자원을 방문한 미얀마 농림부 공무원들에게 통역하며 배운 것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기록하고 문제를 진단했다.

여러 문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 정부가 책임지고 좋은 종자를 생산해서 싼값에 공급하는 일이다. 물론 나는 초보 농사꾼이라 더 힘들었지만 베테랑인 이웃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웃들이 샀던 값싼 종자는 발아율이 더 형편없었고, 낟알 수는 내 벼의 절반도 안 됐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계속 손해만 쌓여가는데도 농민들은 그저 묵묵하다. 논밭갈이 트랙터를 빌리는 데도 시간당 거의 3만차트를 줘야 한다. 피 같은 돈이다. 농민들에게 좋은 종자와 새로운 농사기법은 너무 멀고 돈을 갈취하는 자들은 악착같다.

‘예빈’을 정비하며 신바람 난 청년들

고향 마을에는 주민들이 같이 사용하는 예빈이 있다. 예빈은 우물인데, ‘물이 나무처럼 살아 있다’는 뜻이다. 땅에서 절로 솟는 물을 대형 콘크리트 수조에 저장해두고 사용한다. 솟는 물을 바로 받으면 식수로 쓸 수 있고, 수조에 저장한 물은 씻고 빨래하는 데 쓴다. 각 가정에는 펌프도 우물도 없으므로 이 물이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물이다. 주민들은 저마다 물통에 물을 담아 어깨에 지거나, 오토바이·자동차에 싣고 물을 가져간다. 물 받아 갈 사람이 없는 집은 한통에 300차트를 주고 사기도 한다. 국수 한그릇 값 정도이지만, 없는 이들에게는 이것도 큰돈이라 움직일 수 있으면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물을 길어 간다. 새벽에는 따뜻한 물이 솟아 너나없이들 나와 목욕을 한다. 왜 새벽에만 따뜻한 물이 솟는지는 지금껏 불가사의다. 우리는 그저 감사하며 행복하게 몸을 씻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만큼 예빈은 우리 마을의 중심이고 생명이다.

하지만 이런 찬사가 민망하다. 만든 지 오래된 예빈 둘레가 다 깨져 다치기 십상이고 주변에 쓰레기가 산처럼 쌓였다. 저걸 해결해야 하는데 생각하고도 차일피일 미루던 중에 이웃 동생이 내게 물었다. 새로 공사하고 싶은데 나서줄 수 있겠느냐고, 같이 공사할 사람은 모을 수 있다고. 같이 하겠다는 사람들 이름을 적어보라 하니 스무명 남짓이었다. 그렇게나 많은 이들이 문제를 느끼고 있고 같이 할 의향이 있는데, 왜 직접 추진하지 못하는 것인가. 동생은 나서기 두렵다고 했다. 돈을 모으고 일을 진행하는 방법을 모르니 내가 끌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이웃들에게 우선 돌을 모으자고 했다. 강을 오갈 때 강바닥에 지천으로 있는 돌을 주워 하루 한 자루씩만 옮겨놓자고. 그 말에 씨익 웃던 이웃들이 돌을 모으기 시작했다. 돈 있는 이들은 돈을, 시멘트를 가진 이들은 시멘트를 한 포대씩 내놓았고, 좀 더 가진 이들은 모래를 한 차씩 기부했다. 며칠 이어진 공사에 젊은이들이 나와 힘을 보태고 쓰레기를 치웠다. 동창에게 부탁해 굴착기와 트럭으로 쓰레기 치우는 일을 시작하니, 그걸 본 이웃 트럭 2대가 더 나와서 같이 움직였다. 쓰레기 양이 어마어마해서 2.5톤 트럭으로 20번 넘게 치워내야 했다. 청년 중 한명에게는 모은 돈을 관리하는 법을 가르쳤다. 한푼이라도 쓰면 영수증을 받아 빠짐없이 기록하고, 모든 이에게 사용 내역을 공개하도록 했다. 우리 힘으로 깨끗해진 예빈은 마을의 자랑이 되었다. 같이 땀 흘려 일하면서 공익활동의 기쁨을 맛본 청년들은 신바람이 났다. 요즘은 나에게 용접과 미디어를 배우고 있다. 청년들은 무엇이든 배우고자 열망이 높으나 배울 데가 마땅히 없다.

나는 논밭에 굴러다니던 돌을 모아 한편에 쌓았다. 아버지 때부터 이리저리 귀찮아 밀쳐내기만 했던 돌멩이들이다. 제주도에서 돌담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왜 진즉 이 생각을 못 했단 말인가. 돌담만이 아니라, 늘 배움에 목말랐던 내게 한국은 거대한 학교였다. 공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한국어와 컴퓨터, 미디어를 익혔다. 어디든 무엇이든 배울 데가 있으면 기를 쓰고 찾아다녔다. 특히 성공회대 노동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큰 배움을 얻었다. 우리 삶을 둘러싼 많은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토론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학습과정은 실로 놀라웠다. 서울 강동구에서 경험한 매니페스토 활동도 주민 자치에 대해 배우는 소중한 기회였다. 억압과 감시로 굴러가던 미얀마 사회에서 자란 나에게 이런 배움은 머리가 열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이었다. 한국으로 출장 온 미얀마 공무원들에게 통역하며 여러 분야에서 배웠던 다양한 정책과 실천 방안 또한 두고두고 꺼내 쓸 일이 많을 터다.

나는 운이 좋아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웃들은 기회조차 없다. 아직 답답하게 막혀 있는 미얀마 사회가 열리려면 시민들이 배워야 한다. 고른 배움 기회를 어떻게 나눌까 고민하던 나는 한국에서 접했던 <교육방송>을 떠올렸다. 누구나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방송을 미얀마에서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배움은 더 나은 삶을 일구는 힘이 될 것이고, 민주주의를 다지는 힘이 될 것이다. 미얀마는 배움이 절실하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꾼. 국경을 넘어와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주민들은 저마다 깊은 사연이 있다. 떠나온 사회와 살아내야 할 사회에 하고픈 말이 많지만 그 말은 발화되지 못한 채 눈동자에 잠기곤 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 당사자 시점으로 전한다. 4주에 한번 연재.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1083.html?fbclid=IwAR0Qq9f7Fx0eI9Y5pA1jDe5VOgii6VQeCwue4CbD42dpmDSzhvTMtxWEhvc#csidxa31307593d5523d966f43f8fc4588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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