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미얀마 쿠데타 100일…‘군부·소수민족·외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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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1.05.09. 오전 10:28
지난해 11월 미얀마 총선거에서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NLD당이 압승한 이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NLD당은 전체 664개 의석 가운데 군부에게 헌법상 자동적으로 할당되는 166개 의석(25%)를 제외하고 396석을 얻었다.

민 아웅 흘라잉 군 사령관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NLD당이 원하는 건 헌법 개정이었기 때문이다. NLD당은 군부에게 과도한 권력을 보장하는 헌법을 바꾸고 싶어했다. 흘라잉 사령관은 결국 2월 1일에 쿠데타를 선택했다.

5월 11일은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동시에 ‘봄의 혁명’이라 불리는 시민들의 저항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100일 동안 미얀마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앞으로 미얀마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국내 미얀마 전문가 4명과 인터뷰를 진행한 후 현재 미얀마 상황을 관통하는 단어 3가지를 선정하고 그 배경과 의미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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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순으로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교수, 홍문숙 부산외대 아세안연구소 교수, 딴뚯우 동국대 글로벌경제통상학부 교수, 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

■군부 : 60년간 미얀마를 장악하고 있는 절대 권력

“미얀마라는 국가 안에 군부가 지배하는 또 다른 국가가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역 군인뿐 아니라 퇴역한 군인들, 그리고 군 가족들까지도 특혜를 누립니다. 군인들만 가는 학교가 있고요. 군인들만 가는 병원이 있고, 군인들만 즐길 수 있는 골프장이 또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장준영 교수)

미얀마에서 군인은 특권 계층이다. 60년에 걸친 군사정권 기간 동안 군부는 미얀마 사회를 완전히 장악했다. 시작은 1962년 네윈 군부의 쿠데타였다. 그 이후 군부는 민간 정권의 관료들을 모두 해고하고 군인들로 대체했다. 그리고 군부는 미얀마 경제를 장악했다.

“군부는 외국인투자법과 회사법, 보험법, 국영 기업법 같은 법들을 만들었습니다.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전부 자기들하게 유리한 경제 구조를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은 이미 제도화해서 차지했고 그 다음은 돈이 필요하니깐요.”(딴툿우 교수)

“군부는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합니다. 군부 기업들은 특정 산업 분야에서 독점적인 행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옥이나 루비와 같은 보석류가 있고요. 은행이나 방송국, 통신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얀마 내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대부분 기업들은, 웬만한 기업들은 다 군부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가 있겠죠. 그런데 막대한 수입에 대해서 외부에 알려진 자료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장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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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는 국민들에게 3대 대의를 강요했다.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3대 대의를 헌법보다 더 중요한 개념으로 여겼다. 2008년에는 헌법마저 바꿨다. 권력을 영구적으로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2008년 헌법은 현재 미얀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얀마 군부는 2008년 헌법을 근거로 쿠데타가 합법이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미얀마 헌법에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군 총사령관이 대통령 권력을 이양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3대 대의는 군부가 1990년대에 만든 일종의 프로파간다입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발간된 모든 출판물과 인쇄물의 앞 뒤에 국민의 3대 대의라는 것이 들어가 있는데요. 연방의 분열 방지, 국가의 결속, 주권의 영속을 의미합니다. 연방 분열이나 주권 영속에 방해되는 일이면 처벌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장준영 교수)

“현재 미얀마는 군 통수권이 대통령이 아니고 군사령관에게 있습니다. 내무부와 국방부, 국경부 장관은 현역 군인이 맡습니다. 또 의회 의석의 25%가 현역 군인에게 의무적으로 할당돼 있습니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75%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25%가 이미 군인인 상황에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딴툿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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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이후 저항하는 시민들을 잔인하게 탄압하는 행태에 대해 국제 사회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군부는 쿠데타 이전과 그 이후 달라진 게 없다. 국영방송을 통해 자신들이 집권해야 미얀마가 통합될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웅 산 수 치 측 세력인 민족통합정부를 비난하면서 미얀마 통합을 방해하는 단체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군부가 존재해야지 미얀마 연방의 구심점이 된다, 그래야 다른 나라처럼 분열되지 않는다, 나라가 분열되면 중국이나 태국, 인도와 같은 대국들이 소수민족 영토를 흡수할 수도 있다는 것이 군부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성입니다. ”(장준영 교수)

■소수민족 : 군부 저항 세력이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

“소수민족과 버마족이 화해를 하면 군부가 정당성을 잃게 됩니다. 군부가 그런 두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군부는 계속 버마족과 소수민족의 통합을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NLD 의원들이 소수민족 지역에 찾아갈 때마다 거기에서 군부가 일부러 폭행 사건도 일으키고 문제를 발생시켰어요. 그런 것들이 버마족과 소수민족의 관계를 계속 방해하려고 했던 겁니다.” (딴툿우 교수)

지난해 미얀마 총선거에서 당선된 NLD당 의원 17명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미얀마 연방의회 대표위원회, CRPH는 현재 미얀마 군부에 저항하는 구심점이다. CRPH는 지난달 16일에 민족통합정부를 출범했다. 쿠데타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국가고문 자리에는 우윙민과 아웅 산 수 치가 임명됐다. 부통령과 총리를 비롯해 11개 부처 장관은 새로 선임됐다. 이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카친족과 카렌족, 친족 등 소수민족 출신이 6명이나 포함됐다는 점이다. 민족통합정부가 소수민족과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내각 명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방군을 만드는 것이고. 연방군을 만들기 위해서 소수민족 반군들이 필요합니다. 소수민족 반군을 결합해서 연방군을 만들어야 미얀마 군부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딴툿우 교수)

민족통합정부가 소수민족에 손을 내미는 것은 연방군 창설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UN이나 미국 등의 군사적 지원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체적인 군사력이 절실하다. 물론 연방군을 창설하더라도 군부와 직접적으로 맞붙기는 힘들다. 소수민족 반군은 다 합쳐도 7만여 명에 불과하지만 군부의 규모는 50만 명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군사력이 있어야만 저항을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민족통합정부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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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통치 전략 자체가 다수와 소수를 이간질하는 전략이었어요. 영국은 버마족을 무시하고 소수민족에게 많은 특혜를 줬고 독립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미얀마가 독립하면서 버마족이 기득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소수민족이 원했던 미래가 하루아침에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버마족은 소수민족을 영국에 협력한 앞잡이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고 소수민족의 입장에서 버마족은 우리를 항상 지배하려고 하는 그런 집단으로 보는 것이죠.”(장준영 교수)

하지만 연방군이 만들어지는 것조차 쉬운 것은 아니다. 그만큼 버마족과 소수민족의 갈등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은 여러 차례 버마족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아웅 산 수 치의 아버지 아웅 산 장군이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해줬던 1947년 ‘팡롱회담’이 아웅 산 장군의 죽음과 군부 쿠데타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소수민족들은 아웅 산 수 치가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지난 민주정부 시절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소수민족들에게도 군부는 가장 큰 적이기 때문에 연방군 창설을 포함한 협력 논의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버마족과 소수민족이 화학적으로 유기적으로 결합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 70년 이상 정부와 군부랑 싸웠는데 과연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서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며 연방군 창설에 가담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장준영 교수)

■외교전 : 미얀마의 미래를 결정하는 키포인트

쿠데타 이후 군부와 민족통합정부가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분야는 외교전이다. 서로 미얀마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자신들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유엔이나 아세안 같은 국제기구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성패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버마와 아주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미얀마 정부를 군사 정부로 규정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았어요. 2011년에 힐러리 클린턴이 미얀마를 방문했던 일이 중요한 모멘텀이었어요. 그리고 2012년에 22년 만에 미국이 미얀마에 외교대사를 보냈습니다. 정치적인 제재가 풀리니까 수출입 은행 같은 것들이 생기면서 기업들도 들어가게 됐죠.”(홍문숙 교수)

미국은 의외로 미얀마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 2010년에 미얀마가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총선거를 치르기 이전까지 미국은 미얀마를 군사독재 국가로 규정하고 각종 금융제재를 해왔다. 2011년부터 관계를 회복했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크지 않다. 2016년 기준으로 미얀마 외국인 투자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건 아니다. 직접 금융제재에 나서는 한편 미국·일본·인도·호주 4자 동맹인 콰드(Quad)를 통해서 미얀마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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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가 장기 집권을 하는 방식으로 가게 되고 그 장기 집권을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는 경우엔 태평양과 인도를 엮으려는 바이든 정부의 외교력이 의심받겠죠. 또 미얀마는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었던 국가잖아요. 자유 민주주의 세력의 입장에서 미얀마가 민주주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못 이뤄내는 것이 이데올로기적이나 정치 외교적으로 임팩트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홍문숙 교수)

현재 미얀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미얀마에 송유관과 가스관, 철도 도로망, 댐 등 천문학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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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1949년 건국 이후에 최초로 수교를 맺었던 국가가 미얀마입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미얀마와 중국은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맺었던 국가 관계이고요. 대체로 중국이 미얀마에 대한 경제적인 원조 형태로 미얀마의 아주 극빈한 경제적 상황에 일정한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원동욱 교수)

2008년 이후에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봉쇄 전략 때문에 미얀마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중동 원유가 말라카 해협을 통해서 중국으로 오게 되는데 미국 해군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말라카 해협을 지난다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부담이죠.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양양 전략이라고 하는, 소위 태평양과 인도양 양쪽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그런 전략 구도에서 미얀마의 항만을 통해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게 군사 전략 측면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원동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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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중국도 미얀마가 내전 사태로 치닫는 건 원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은 내정불간섭이라는 외교 기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서 미얀마 사태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월 7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됐던 내외신 기자 회견을 보면 당시 왕이 외교부장이 나름대로 어떤 해법을 제시하거든요? 지금까지 진행됐었던 민주화로의 전환 과정을 지지한다고 하는 그런 입장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각 이해 당사자들이 협상 테이블로 들어와서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중국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세안이라고 하는 일종의 협상 기제, 협력 기제를 활용해서 이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 그런 의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원동욱 교수)

미얀마 쿠데타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안으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게 아세안이다. 지난달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깜짝 합의문이 나왔다. 즉각 폭력을 중단하고 군부와 반 쿠데타 진영이 아세안의 중재 아래 대화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다음날 미얀마 군부가 또다시 강경진압을 하면서 합의를 번복했지만 진전은 있었다는 평가다. 미얀마에 많은 투자를 한 아세안의 개별 국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국가 중 핵심은 일본과 인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 인도가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이 굉장합니다. 그 다음에 미얀마에서 큰 역할을 하는 국가들은 싱가포르와 태국,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베트남입니다. 미얀마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런 나라들이 어떻게 지금 미얀마 군부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 저는 이게 앞으로 수개월 동안 미얀마의 군부를 누가 설득할 수 있느냐의 키라고 생각합니다.“(홍문숙 교수)

현재까지의 균형추는 아무래도 군부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민족통합정부는 군부보다 주변 국가들을 설득할 유인책이 적기 때문이다. 군부는 주변 국가들에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혜택을 미끼로 주면서 자신들의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설득할 가능성이 크다. 민족통합정부가 무리한 요구를 하기보다는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족통합정부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 민족통합정부를 인정하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저는 적극적으로 공감하고요. 다만 정부가 받을 수 있는 카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민족통합정부가 대체로 온라인으로 지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떠한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을 가질지 아직 미지수입니다. 대신할 수 있는 일은 한국의 의회가 나서주는 부분인 것 같아요. 한국의 의회와 전문가 그룹들, 그리고 이제 시민사회가 함께 민족통합정부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죠.“ (홍문숙 교수)


이현준 (hjni1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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