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우린 이방인을 품을 수 있을까



구인난 시달리는 중소제조업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마비돼

농축어업도 이주민 손 빌려야

아이들 없어 생기 잃었던 농촌

결혼이민자들 덕에 지탱되기도

외국인주민 11년 새 3.5배 증가

69개 시·군·구에선 5% 이상 차지

고학력자 비중 74.5% 달하는데

대부분 질낮은 단순일자리 종사


지난달 8일 밤, 일본 참의원(상원)에서는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과 법무성설치법의 일부 개정 법률안’(이하 출입국관리법)을 통과시키려는 여당 측과 이를 막는 야당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여당의 강행으로 통과된 개정 법률은 오는 4월1일 시행될 예정이다.

외국인들을 위한 새로운 체류자격(특정기능 1, 2호)을 신설하고, 단순노동직에도 사실상 영주권의 문을 활짝 열었으며, 총 224억엔의 예산을 배정해 교육·생활·금융 등 다각적인 외국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이 법의 지향은 한마디로 ‘적극적인 외국인 끌어안기’다. 

보수적인 국가 일본이 ‘외국인 노동력 문제’ 논의를 시작한 지 10개월도 안돼 법안 통과까지 강행한 것은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이민 문제 전문가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취업지역을 골라서 가는 시대에 대한 절박함의 표현”이라며 “한국은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뿐 아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전통적 이민국가와는 달리 한국처럼 국가를 중시하던 독일도 2005년 이민·난민청을 설립하며 이민자의 사회통합정책을 강력 추진하고 있다. 1999년부터 21세기 인력 유치계획을 발표하고 외국인에게 각종 혜택을 준 싱가포르는 현재 이민자들이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한국은 이주민에 어떤 사회인가.

“다인종·다문화로의 진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외국인·이민 정책들을 통합·조정하기 위한 총괄기구를 설치할 것”을 지시한 이는 2006년 4월 국정과제 회의장의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이후 10여년. 다문화 사회로 가야 한다는 당위는, 늘 시기상조론에 막혔다. 이주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뭘 위해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지 논의 없이 갈팡질팡하던 사이 이미 이들은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경향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한 기업인, 농부, 상인들은 “외국인 없이는 장사할 수 없다” “공장 운영이 안된다”고 했다. “고향을 이들이 지킨다”고도 했다. 이들은 이미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됐다.

세계는 다양성의 가치를 적극 내세우며 함께 발전해 가는 윈윈 전략을 세우고 있는데, 우리는 막연한 혐오와 두려움, 불안감이 뒤범벅된 채 어정쩡한 내일을 맞고 있다. 이민 관련 전문가들은 이젠 ‘그들’이 아닌, ‘그들을 품은 우리’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이미 한 ‘공동체’ 안에…이주민들 없인 대한민국이 멈춘다

노래반주기 생산업체인 ‘TJ미디어’에서 외국 노래들을 수록하기 시작한 건 2002년부터였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업소용 외국곡 수량은 중국 3000여곡, 필리핀 1300여곡, 베트남 1300여곡, 태국 500여곡, 러시아 700여곡, 스페인 100여곡 순이다. 국내 거주 이주민 수가 많은 국가들과 비슷하다. 대부분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인력을 송출하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노래방을 찾는 이들이 이어지자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인구가 늘어나며 외국인들은 노동자이자, 소비자로, 주민으로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이 멈추면 대한민국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불편함을 겪게 되는 상황이 왔다.

■ 이들 없인 대한민국이 멈춘다

경기 김포시에서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소규모 PVC 공장을 운영 중인 장민준씨(37·가명)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한국의 제조업은 마비된다”고 말했다.

현재 공장에서는 공장장(본인)을 제외하면 세 사람이 일하고 있는데 한국인(68세), 중국인(47세·조선족), 인도네시아인(35세)이다. 공장이 해외로 갈 형편은 되지 않으니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 기억에 1992~1993년쯤 네팔인들이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공장도 외국인을 쓰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전엔 주로 아버지나 어머니 고향(칠곡)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물어서 중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공장에 와서 일하라고 했는데, 다들 학력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그 말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죠. 월급이 적으니까.”

장씨는 한국의 제조업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외국인 없이는 안 돌아갔다고 했다. 지방 공장엔 서울 사람들이 안 가려 해 더더욱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서 외국인을 쓴다는 걸 들었다고 했다.

우리들의 식탁도 농축어업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이주민들의 땀으로 차려진다. 딸기를 따고, 쌈채소를 키우고, 돼지를 치고, 원양어선을 타는 많은 이들이 이주노동자들이다.

경기 포천시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김모씨(56)는 남편과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함께 양계장에서 일을 한다. 3만마리나 되는 닭을 키우는데 닭진드기가 사람에게도 들러붙고 옷 속으로도 들어온다. 여름에는 극도로 덥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인은 구할 수 없어 대부분 태국이나 베트남 쪽 사람들을 쓴다.

2018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 산업별 취업자는 광·제조업(45.8%)이 가장 많고, 도소매·음식·숙박업(18.5%),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16.0%), 건설업(12.5%), 농림어업(5.6%) 순이었다.

기울어 가는 농촌은 때론 결혼이주민들의 힘으로 지탱되기도 한다.

충북 괴산 출신으로 안산에 사는 박관봉씨(63)는 고향 부모님댁 옆집에 사는 필리핀 여성 ‘나은 엄마’가 고향을 다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5년 작고한 박씨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나은이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옆집 나은이는 5세 여자아이다. 나은이는 박씨의 어머니를 ‘까까(과자) 할머니’라 부르며 매일 놀러왔다. ‘나은 엄마’가 오고 나서야 마을에 20여년 만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았다. 명절에 가도 매번 죽은 동네 같더니 아이들 소리가 들리니 역시 활기가 생겼다. 나은 엄마는 소 키우는 일, 괴산 특산품인 청결고추 재배 등을 도맡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어머니 안부까지 묻는 등 멀리 사는 자식들보다 더 어머니에게 잘했다고 했다. 박씨는 살가웠던 나은이와 나은 엄마 덕분에 어머니가 5년을 더 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나은 엄마’들은 많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7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을 보면, 지난해 11월1일 기준 외국인 주민은 모두 186만1084명이고, 이 중 외국인 노동자가 49만6000명, 결혼이민자가 16만1000명, 유학생이 11만7000명으로 주요 유형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로 많아졌던 결혼이민자들의 2세들도 이제 성인이 됐다. 곧 3세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외국인 주민 수는 최초 조사 연도인 2006년 53만6627명에서 2017년 186만1084명으로 약 3.5배 증가했다. 186만명이라는 숫자는 17개 시·도 가운데 주민 수 216만2000명인 충남 다음, 9번째 광역지자체 규모에 해당한다. 외국인 주민이 1만명 이상 또는 인구 대비 비율 5% 이상인 ‘외국인 주민 집중거주지역’은 전국 69개 시·군·구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은 내·외국인이 자주 만나고 부딪치며 관계와 문화도 바뀐다.

부천 도당동의 부천강남시장에서 ‘새마을정육점’을 하는 제대성 상인회 회장(65)은 “그 친구들(외국인) 없으면 장사를 못한다”고 했다. 도당동의 외국인 주민은 10% 남짓이지만 손님 비율은 내·외국인 반반 정도다. 내국인들은 시장보다 대형마트를 즐겨 찾기 때문이다. 야간작업을 많이 하는 외국인 주민들은 주말에 멀리서도 택시를 타고 장을 보러 온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상 가장 많이 찾는 건 돼지 부산물이나 뒷다리다.

“초창기엔 우리도 이 친구들 많이 무시하고 ‘밥 먹었어?’라며 반말하고 그랬죠. 지금은 달라졌어요.”

아이가 큰 병에 걸렸다는 집은 어떻게든 복지센터와 연결해주고, 가족 얘기, 친구끼리 유원지 놀러가고 벼룩시장 행사 간다는 얘기도 하는 친한 단골이 많다.

상인회와 주민들은 매년 ‘강남시장 마을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가 끝나면 소주도 함께 기울인다.

“우리도 예전에 설움받은 시절 있었잖아요. 이들도 지금은 한국에 사니 대한민국, 도당동의 주민이죠. 저희 시장에선 그 친구들에게 편견 없습니다. 모두들 다 지식인들이에요. 술 마시고 지나친 행동하는 건 되레 한국 사람들이고요.”

휴일인 27일 오후 경기도 부천 강남시장 상인회장인 제대성씨(왼쪽)가 시장 안에서 단골 손님들인 동네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 이들에 대한 시선, 서서히 변해간다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왔고, 1990년대 초부터는 결혼이민자가 그 대열에 합류했으며, 2000년 이후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가세했다. 

1991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 정부는 중소기업에 인력을 공급하고자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라는 편법으로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제도를 채택했다. 

산업기술연수제도는 불법체류와 인권침해 등 문제점만 노출했고, 정부는 대신 2004년부터 외국인 고용허가제도를 도입했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을 겪고 있는 사업장에 일정한 요건하에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제도다. 

동남아지역 등 16개국에서 외국인력(비자종류: E-9)을 도입하는 일반 고용허가제와 중국·구소련 국적의 동포(비자종류: H-2)를 도입하는 특례고용허가제로 구분한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땅을 밟는 이들은 고국에선 상대적으로 고학력자들이다. 특히 한국에 오는 이들의 학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민정책연구원 측은 15~64세의 이주민 고학력자(대졸 이상) 비중이 약 74.5%로, 한국인의 고학력 비중보다 15%포인트가량이나 더 높다고 밝혔다. 

이민정책연구원 측은 “질 낮은 단순일자리가 여전히 많아 이주노동자들도 고생이고,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도 늦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 부분을 좀 더 고민해 장기적으로 바꿔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주민들을 보는 시선은 느리지만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공동대표는 지난해 10월 경기 고양시 저유소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의 피의자로 경찰이 스리랑카 노동자를 지목했지만 ‘희생양 만들기’라며 경찰 발표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어 결국 석방된 일, 종교적 이유로 난민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던 이란 출신 중학생이 동급생 친구들의 국민청원 활동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은 일 등을 보며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중학생 친구들의 자발적 연대의식과 풍등사건 때 시민들이 보여준 시민의식이 우리 사회의 행복과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화두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풍등사건’의 훈훈한 뒷얘기도 함께 전했다. 풍등을 맨 처음 날린 학교의 학부모들 사이에서 스리랑카 노동자가 벌금을 물게 된다면 우리가 모금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가 공정성을 지향하고 있구나’ 감동받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주민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자고 했다. 관용(Tolerance)이 있는 사회에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인재(Talent)가 모여들고, 이를 통해 기술(Technology)이 발전하며 발전과 혁신이 일어난다는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의 3T 이론이다.

연말정산 하고 세금 꼬박꼬박 내는데…근거 없는 외국인 혐오는 이제 그만



국내 이주민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논쟁들이 있다. 대표적인 쟁점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 봤다.

일자리 뺏는다? 필요 의한 ‘초청’

우리 사회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16개국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노동자들을 ‘초청’하는 이유는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력부족 업종인 중소 제조업과 농축산업, 어업, 일부 서비스업 등이 대상이다. 실업난이 심각하지만, 내국인들은 소위 3D 업종에 가려 하지 않아 이들 업종은 만성적인 구인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9월 ‘외국인 고용 애로 해소 중소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한 중소기업 관계자들의 요구도 “고용허가제 인력 쿼터 확대”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쿼터 확대” 등 대체로 외국인 노동자를 늘려달라는 것이었다. 강동관 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대체탄력성(외국인이 들어옴으로써 내국인이 얼마나 대체되는가의 정도)은 일부 제조업과 일반서비스 업종 몇 개에 존재하긴 하지만 미미하고, 오히려 보완적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적용을 받지 않는 재외동포나 미등록 체류자 일부는 건설업이나 서비스업에서 제한적으로 한국인과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범죄 많다? 내국인보다 비율 낮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공식통계에 나타난 외국인 범죄의 발생 동향 및 특성’ 보고서를 보면, 외국인 범죄율은 내국인의 절반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통상적으로 범죄율이 높은 20~59세 남성 인구가 많은 국내 체류 외국인의 인구 특성을 반영한 외국인 인구 추정치와 내국인의 주민등록인구 기준 연령 보정 자료를 사용해 내·외국인의 인구 10만명당 검거인원지수를 계산했다. 2011~2015년도 매년 내국인의 검거인원지수가 2배 이상 높았다. 다만 살인은 기수와 미수를 합쳐 외국인이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작성한 최영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살인범죄 건수는 아주 적고 피해자, 가해자, 원인 등 세부내용이 파악되지 않아 조심스럽다. 대체로 외국인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동일 국적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차별과 무시가 쌓여 분노감정으로 표출되는 범죄가 많은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금 덜 낸다? 그만큼 지원도 안 해

국세청이 2013년에 낸 외국인 노동자의 연말정산 현황을 보면 2013년에 연말정산을 신고한 외국인은 48만명, 이들이 낸 세금은 6025억원이었다. 아시아인권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노동자 증가를 고려해 국세청 발표처럼 노동자 수와 총급여 등으로 결정세액을 추계해보니 2014년엔 6964억원이 나왔다. 2016년 법무부 외국인정책본부가 발표한 중앙과 지방의 외국인 정책 예산 규모는 6758억원이었다. 외국인 정책 예산의 상당 부분이 다문화지원센터 인건비 등 내국인 일자리 만들기와 조직운영비다. 외국인들이 낸 세금만큼 외국인에게 직접 지원되진 않는 셈이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입의 상당 부분을 본국으로 송출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가족들이 다 본국에 있는데 당연하지 않으냐. 최장 10년 가까이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반면 가족 초청을 불허하는 것은 선진국 어느 곳도 없다”며 “인권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손해인 만큼 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현숙 전국사회부장·박은하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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