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난민 루렌도 가족, 287일 만에 입국
  •  인천·안산/김영화 기자
  •  호수 632
  •  승인 2019.10.30 11:14

287일 동안 인천공항에서 생활했던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씨 가족이 드디어 한국에 ‘입국’했다. 그러나 이들이 ‘첫 번째 최종 목적지 한국’에 안착하기까지는 먼길이 남았다.
ⓒ시사IN 신선영10월11일 287일간의 인천국제공항 생활을 끝낸 바체테 씨(오른쪽)와 큰아들 레마 군이 기쁜 표정으로 ‘입국’ 했다.

300m 골목길을 단숨에 질주했다. 특히 막내 그라스(5)는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재빨랐다. 첫째 레마(9)와 쌍둥이 남매 실로·로드(7)도 그 뒤를 따라 달려갔다. 10월15일 루렌도 은쿠카 씨와 바체테 보베트 씨가 서울 중랑구의 녹색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동안, 지루해하던 아이들이 병원 밖으로 나섰다. ‘난민과 함께 공동행동(공동행동)’의 활동가인 이현주씨가 아이들을 쫓아가느라 애를 먹었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공항에선 어떻게 지냈을까요.” 아이들이 공항을 나와 이렇게 숨이 가쁘도록 달려본 건 9개월 만이었다. 혼내는 사람도, 유리벽도 없었다. 대신 선선한 바람이 살갗에 닿았다.

루렌도 가족이 인천공항 입국 게이트를 통과하기까지 287일이 걸렸다. 지난해 12월28일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입국하지 못했다. 그들이 살던 앙골라에서는 콩고인들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이 강했다. 앙골라 내전 당시 콩고 정권이 반군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루렌도 씨에 따르면, 콩고 출신으로 앙골라에서 택시기사를 하다 경찰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낸 후 경찰서에 구금돼 폭행을 당했다. 아내 바체테 씨는 경찰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후 루렌도 가족은 앙골라를 떠나 인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다.

ⓒ시사IN 신선영지난 3월6일 새벽 루렌도 씨 가족 6명이 불이 환하게 켜진 출국장 환승 대기실에 누워 자고 있다.

주식은 탈지분유·시리얼·햄버거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출입국)은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여 체류 자격에 맞지 않다’라는 이유로 난민인정 심사 불회부 처분을 내렸다. 난민법에 따르면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 난민 여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난민 심사에 회부할지 여부를 판단한다. 난민 심사에 회부되지 않으면 입국이 거부돼 국외로 송환될 수 있다. ‘공항 난민’이 된 루렌도 가족은 인천공항 제1터미널 탑승 구역에서 기약 없는 ‘공항살이’를 이어갔다(<시사IN> 제600호 ‘저 아이들에게 자유를 허하라’ 기사 참조).

10월11일이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 오후 4시 입국장 D 게이트로 여섯 가족이 걸어 나왔다. <시사IN>이 인터뷰했던 지난 3월 초와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그랬다. 4남매는 모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컸고, 루렌도 씨는 까만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자랐다. ‘Welcome Lulendo Family’라고 쓴 플래카드 앞에서 아이들은 웃고 떠들었고, 부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행복하면서도 슬펐어요.” 바체테 씨가 그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지만 그동안 가족들이 겪었던 고생도 함께 스쳐갔기 때문이다. 바체테 씨를 짓누르던 불안감이 입국장을 나서자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탈지분유와 시리얼, 햄버거가 지난 9개월간 이들 가족의 주식이었다. 몸에 남은 흔적은 공항 생활이 어땠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루렌도 씨와 바체테 씨는 위염과 고혈압 증상이 심해졌다. 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의 이보라 과장(내과 전문의)은 “루렌도 씨의 경우 당화혈색소(혈당 농도를 알기 위해 사용하는 혈색소)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나왔다. 당분 섭취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루렌도 씨가 바지를 걷자 다리에 흉터가 군데군데 있었다. 그는 앙골라에 있을 때 경찰이 곤봉으로 때린 흔적이라고 말했다. 이보라 과장은 “피부가 얇고 지방층이 없는 다리뼈 쪽에 흉터가 많이 발견되었는데, 주로 아프리카 국가에서 정치적 박해, 고문을 받아서 탈출한 사람들의 흉터와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바체테 씨는 공항에서 지내는 동안 치아 5개를 뽑았다.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공항 직원들이 협조적이지 않아 병원에 가는 게 매번 쉽지 않았어요.” 바체테 씨는 ‘긴급 상륙허가’를 받아 네 차례 외부로 나가 병원 진료를 받았다. 지난 8월에는 로드가 화폐교환기에 부딪쳐 발등이 1㎝가량 찢어졌지만 공항 내 약국에서 붕대로만 응급처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활동가들이 항의 전화를 하고서야 로드는 병원 치료를 받았다. 바체테 씨는 그사이 우울증이 심해졌다.

ⓒ시사IN 신선영인천공항 청사 밖으로 나온 루렌도 씨의 아이들(위)은 마음껏 신나했다. 공항 밖에는 혼내는 사람도 유리벽도 없었다.

가족들이 다 같이 공항을 나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21일 가족들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이 열리는 인천지방법원에 출석하기 위해 출입국 직원들과 함께 공항을 잠시 나왔다. 난민 신청을 하게 된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직접 답하기 위해서였다. 통역가가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루렌도 씨가 입을 뗄 기회도 없이 재판이 마무리됐다. 문제는 그 뒤였다. 법정을 빠져나가는 루렌도 가족을 향해 비난과 폭언이 쏟아진 것이다. 난민 반대 단체 회원들이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채 “고 투 유어 컨트리(Go to your country)” “자국민이 먼저다” “난민이 무슨 비행기를 타고 오냐”라며 목청을 높였다. 이들의 반발을 피해 루렌도 가족은 출입국 측의 차량을 급히 타고 자리를 떠났다.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은 외출이었다.

공항 내부도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루렌도 가족의 사연이 알려진 뒤 이들에게 음식이나 옷 등 도움을 주기 위해 찾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와서 우리 사진을 몰래 찍어갔어요.” 첫째 레마가 말했다. 불쾌한 방문에 자주 노출되었지만 막을 방도가 없었다. 어느 날은 한 남성이 가족에게 찾아와 시비를 걸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대뜸 ‘고 투 유어 컨트리!’라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아이들은 원래 공항 직원들에게도 말 걸고 다가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 이후로 겁을 잔뜩 먹고 얼어붙었어요.” 당시를 회상하는 바체테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남성은 이후로 두 번 더 찾아왔다.

4월26일 1심 재판부는 루렌도 가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난민 신청에 대한 명백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출입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루렌도 가족 측은 항소했다. 9월27일 서울고등법원은 결정을 바꾸었다. 2심 재판부는 경찰에 의해 불법 구금을 당하고 박해받았다는 가족의 주장 중 앙골라의 국가 정황 부분이 현실에 부합하는 점 등을 들어 일단 심사에 회부돼 난민 인정 여부를 최종 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루렌도 가족의 법률대리인 이상현 변호사는 “난민 인정 회부 심사는 1주일 안에 마치는 간이 심사인데, 그동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을 청구하면 사람들을 공항에 가둬둔 채 출입국 당국이 증거 수집을 하는 게 타당한지, 재판 과정에서 출입국에 의해 수집된 증거가 믿을 만한지 문제 제기를 했다”라고 말했다. 법무부 측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시사IN 신선영10월15일 루렌도 씨(맨 오른쪽) 가족은 녹색병원에서 종합 건강검진을 받은 후 안산에 마련된 임시 쉼터에서 휴식을 취했다.

9월27일 승소 결과를 받고도 공항 밖으로 나오기까지 2주가 더 걸렸다. 법무부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되리라 예상돼 입국을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월10일 변호사가 가족들에게 “내일 공항을 나갈 수 있다”라는 말을 전했다. 첫째인 레마는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는 이제 자유야!”라고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진짜인지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이제 공항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남았다. 바체테 씨는 공항에서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앙골라로 돌아갈 수도 있다”라고 종종 말하곤 했는데, 공항을 나온 뒤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나쁜 짓하면 공항으로 다시 간다”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기겁을 했다. “아이들이 공항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생각하면 그저 미안할 뿐이에요.” 바체테 씨가 말했다.

루렌도 가족은 공항을 나서며 C-3-1(단기방문) 비자를 받았다. 단기 방문자에게 발급되는 비자다. 영리 목적의 활동을 할 수 없고, 서울·인천·경기도로 생활권역이 한정되었다. 체류 기한은 한 달이다. 한 달 단위로 갱신해야 한다.

4남매는 공항에서 나가면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레마는 학교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했다. “공항에서 알렉스라는 친구를 만나 사귀었는데, 내가 자는 동안 여행을 떠나버렸어요.” 공항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모두 짧을 수밖에 없었다. 로드도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고 싶다. 실로는 스포츠를, 막내 그라스는 온종일 게임을 하고 싶다고 했다. 네 아이 모두 앙골라를 떠난 뒤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 대신 스마트폰 스크린에 익숙해졌다. 막내 그라스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자, 금세 유튜브 앱을 열어 음성 인식 버튼을 능숙하게 눌렀다. 마이크 부분에 입을 갖다 대자 프랑스어로 진행하는 게임 방송이 나왔다. 게임 유튜버, 파워레인저, 아동 콘텐츠를 연이어 봤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이미 바체테 씨의 휴대전화에는 게임 앱 열댓 개가 깔려 있었다. 크게 떠들 수 없었던 탑승구역에서 가족이 버텨온 방법이었다.

루렌도 가족은 공동행동의 도움으로 경기도 안산에 한 달간 머무를 숙소를 마련했다. 방 세 칸과 거실이 있는 깔끔한 가정집이었다. 공항에서 살림이 늘어난 탓에 카트 11개를 동원해도 짐이 다 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주고 간 옷이며 장난감들을 버릴 수 없었다. 루렌도 씨는 “그저 행복하고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방마다  ‘Lulendo family’라고 쓰인 박스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루렌도 가족 모두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은 매달 출입국을 방문해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이상현 변호사는 “대법원이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처리할 경우 3~4개월 안에 판결이 나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대법원 판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최종 승소하면 난민 ‘신청자’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후 난민 심사를 거쳐 난민으로 인정할지 여부가 결정된다. 이 기간 루렌도 가족은 G-1-5(난민 신청자) 비자를 갖는다. 최대 6개월마다 체류기간 연장을 출입국에서 허가받아야 한다. 압수된 지 9개월 만에 돌려받은 루렌도 가족의 여권은 모두 새것처럼 빳빳했다. 이 가족의 첫 번째 최종 목적지는 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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