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을 추모하는 토착민의 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지난 15일 호주 출신의 한 백인 남성이 뉴질랜드의 이슬람 사원에 총격을 가해 50명을 살해하고 그 장면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계했다. 말 그대로 ‘테러 라이브’였다. 사냥을 하듯 혹은 게임을 하듯 그는 사람들을 죽였다. 무려 74쪽 이르는 선언문도 내보냈다. 선언문에서 그는 무고한 아이들까지 죽이는 이유도 적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백인 아이들의 자리를 다 차지할 테니 후손들을 위해 미래의 적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병권의 묵묵]이주민을 추모하는 토착민의 춤

도무지 행동이나 말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변호인에 따르면 그는 침착하고 심지어 ‘상당히 명쾌해’ 보인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이 변호인조차 필요 없다며 해임시켰다. 법정에서 직접 신념을 설파할 모양이다.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당연히 이 연설을 세상에 알리지 않을 것이다. 총리는 테러범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같은 행동은 드물지만 신념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선언문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들로 이루어져있고 그중 몇몇은 극우 성향의 지도자들이 애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괴물인 이유는 ‘어떻게 저런 짓을 할까’에서 ‘저런 짓’이 아니라 ‘할까’에 있다. 그는 사람들이 가슴속에만 품고 있거나 기껏해야 집회에서나 떠들어대고 인터넷 댓글로나 내뱉던 것들을 실제로 저질렀다. 

그는 선언문에서 자신을 평범한 백인이라고 소개했다. 조직에 속한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없는 서민일 뿐이라고. 다만 그는 백인의 나라에 들어와 이러저런 자리를 차지하는 ‘침략자들’에 분노한다고 했다. “우리의 나라는 우리의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백인이 한 명이라도 살아 있는 한 그들은 결코 우리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테러를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을 자주 썼다. 선언문의 제목 자체가 ‘거대한 대체(The Great Replacement)’이다. 이는 이민자 유입에 반대하는 프랑스 작가 르노 카뮈의 책 제목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카뮈의 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프랑스 여행 중에 너무 많은 ‘침략자들(비백인들)’을 보았으며, 그들이 문화와 정체성을 파괴하는데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염세적 프랑스인들에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싸우지 않으면 “유럽인들의 완전한 인종적, 문화적 대체가 일어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썼다. 

그는 ‘거대한 대체’를 ‘백인에 대한 인종청소’라고도 불렀다. 원래 이 말은 미국의 테러리스트 데이비드 레인이 쓴 것으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애용하는 표현이다. 비백인 이민자들의 유입과 인종 혼합 때문에 세상에서 백인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게 그 핵심이다.

물론 ‘거대한 대체’니 ‘인종청소’니 하는 말들은 모두가 끔찍한 헛소리다. 테러범의 선언문에서 이 표현들을 처음 접했을 때 내게는 1990년대 호주에서의 역사 논쟁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가 호주 출신 백인이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논쟁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1992년 호주 최고재판소가 토착민의 본래적 토지소유권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호주를 식민화할 때 백인들은 ‘주인 없는 땅(terra nullius)’이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토착민들이 배타적 소유권을 행사한 흔적이 없는 땅은 차지해도 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최고 재판소는 이 원칙의 부당성을 인정했다.

또 하나는 1997년에 간행된 호주의 ‘인권과 기회균등 위원회’의 보고서였다(제목이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기>다). 이 보고서는 식민화 과정에서 토착민에 대한 인종청소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토착민 아이들을 백인 문화에 동화시키기 위해 백인 부모에게 강제 입양시킨 일이 들어 있다. 충격적인 것은 이런 반인륜적 관행이 1960년대까지 활발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때의 아이들은 어머니가 트럭을 쫓아오며 울부짖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뉴질랜드 테러범은 백인들이야말로 식민화를 통해 자리를 차지했고, 인종혼합을 통해 인종청소를 자행했다는 걸 감추었다.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신화적 기억으로 토착민에게 저지른 ‘거대한 대체’와 ‘인종청소’의 폭력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토착민들이 백인에게 당한 폭력의 이름을 백인 것으로 만든 뒤 이민자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은 뉴질랜드 테러 현장에 ‘하카’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하카는 잘 알려진 것처럼 마오리족 전사들의 춤이다. 토착민들은 무슬림 이주민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하카를 추었고 많은 뉴질랜드인들이 하카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다고 한다. ‘코 아우, 코 코에, 코 코에, 코 아우.’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나입니다. 토착민들은 하카를 추며 이주민들에게 이런 노랫말을 건넸다. 토착민과 이주민이 반대말이 아닌 세계를 그렇게 열어보인 것이다. 

참고로 뉴질랜드의 테러범은 한국에서 자신의 모범을 보았다고 한다. 다문화주의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보수적 가치를 잘 지키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 4·3의 땅 제주에 예멘의 난민들이 왔을 때 우리의 춤은 무엇이었고 우리의 노랫말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나입니다. 우리는 누구로서 누구에게 말했던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242048025&code=990100#csidx7ae6e56b3d480dca6779715a2033b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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