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 경계와 차별을 넘어

 

‘한민족’ 대한민국, 세계와 함께 살아가기

 

국내 체류 외국인이 120만명에 달하고 다문화 가정도 18만 가구를 헤아리는 등 우리 사회도 이제 급속히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다문화 사회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현실이 됐고, 생활 속 곳곳에서 외국인들과의 어울림은 일상이 됐지요. 취업, 결혼, 유학 등을 위해 우리나라에 온 이주민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며,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피부색과 인종, 언어, 종교, 문화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들을 따로 떼어 생각하고 차별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1. ‘코리안 드림’의 종착지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에 온 미얀마 출신 외국인노동자 아웅 멍(가명ㆍ28) 씨는 한국에 온 지 채 1년이 못돼 돈을 벌기는커녕 몸은 병들고, 병 때문에 직장을 쉰 것이 빌미가 되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고용허가제로 2009년 10월 입국해 경기도 김포시의 한 가구공장에 첫 직장을 얻어 목재를 프레스 기계에 올렸다 내리는 작업을 담당하던 멍 씨는, 작년 1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으로 함께 일했던 태국 출신 미등록(불법) 외국인노동자 2명이 연행된 뒤 크게 늘어난 공장 업무량으로 인해 목의 인대가 손상되었습니다. 그는 2주간 쉬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나흘만에 직장에 나갔으나, 사장은 “아프면 쉬어라. 일 못하면 돈도 못 준다”며 그를 내쫓았습니다. 멍 씨는 인간 기계 취급하는 사장의 횡포에 못 이겨 다른 직장을 찾고자 했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해당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기 부적합한 상해가 아닌, 경미한 부상으로는 사업장을 함부로 변경할 수 없다는 법규에 막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가구공장 사장을 찾아가 사죄하고 일을 시작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전립선에 염증성 질환이 생겨 몇 주간의 요양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며칠 쉬는 사이에 사장은 그를 ‘사업장 이탈’로 신고했고, 그는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사장에게 신고 취하를 요구했으나, 사장이 이를 미루는 사이 사업장 변경 신청 기한이 만료되는 바람에 한국에 온 지 8개월 만에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고용허가제 시행 후에도 외국인노동자 차별 여전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판받았던 산업기술연수제를 대신해 2004년 8월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됨에 따라 송출 비리 등 일부 문제가 개선됐지만 외국인노동자들이 받는 차별 대우는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노동자는 19만 1천여 명 가운데 16만 6천여 명이 제조업에 종사하며 소위 ‘3D’ 중소기업의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는데요, 이들은 대개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어 최저임금을 간신히 받고 있지만 경제 위기로 이마저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의 임금 체불액은 2007년 62억 8천만원에서 2009년 236억 8,500만원으로 2년 새 4배 정도가, 임금을 받지 못한 외국인노동자의 수도도 같은 기간 2,249명에서 9,452명으로 4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사업주가 외국인노동자에게 기숙사와 식사를 제공하는 현실을 감안해 최저임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해야 한다는 중소기업계의 입장이 관철돼 2009년 관계 법령이 개정됨에 따라 ‘컨테이너 박스’나 다름없는 기숙사에 사는 외국인노동자는 최저임금의 20% 가량 덜 받게 됐습니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이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을 맡고 있는 데다가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하다보니 일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아 건강권 침해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산업재해를 당한 외국인노동자가 2007년 3,967명, 2008년 5,221명, 2009년 5,231명으로 꾸준히 느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산재 인정 판정이 보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산재를 당한 이들은 이보다 많을 것이라고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업장 이동제한’이 외국인노동자 차별의 핵심

외국인노동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은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제한 규정을 ‘만악의 근원’으로 꼽습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근로조건이 계약조건과 다르거나 근로조건 위반 등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로 근로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 상해 등으로 외국인노동자가 계속 일하기 부적합하나 다른 사업장에서는 일할 수 있는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는데요. 이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외국인노동자의 과도한 임금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사업장을 자유롭게 옮길 수 없는 외국인노동자는 결국 고용주에 종속되고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감내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사업장 변경사유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장 변경 처리절차상 사업주가 고용변동신고서를 제출한 뒤 외국인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게 돼 있어 사실상 사업주 동의가 없으면 외국인노동자가 실질적으로 근무지를 옮길 수 없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동의하더라도 일할 곳을 구하지 못하면 체류 자격이 취소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관계 법령에서는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후 3개월 내 다른 일자리를 구하도록 했지만, 외국인노동자는 한번 비자를 발급받은 업종에서만 일할 수 있어 구제역이 발생해 일감이 떨어진 축산농가에 종사하거나 노동 수요가 적은 냉장업, 재활용업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 대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체류를 택하거나 고된 노동을 감수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지요. 또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사업장 변경 횟수를 3회로 제한한 것도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입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외국인노동자만 사업장 변경 횟수를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뿐만 아니라 근로의 권리와 직업선택의 자유도 침해한다”고 비판했습니다.


2. 교육 사각지대에 내몰린 이주아동

▲ 이주노동자의 자녀를 위한 특별반을 운영 중인 경기도 안산시 원일초등학교의 2010년 여름 운동회 모습(원일초등학교 제공)


한국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빛’이라는 이름을 가진 태국 출신 빗 톤세톤(18) 군은 어머니가 2000년 한국인과 재혼한 후 2009년 봄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한국에서 태어난 어린 동생들도 잘 따르자 빗 군은 한국에서의 새 삶에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는 집에서 한 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이주민지원센터에 다니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길 원해 지난 2년간 10군데가 넘는 학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10대 청소년의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입학을 허가해주는 학교는 아무 데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집 주변 고등학교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애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말고 무엇을 더하겠느냐”며 고개를 내저었고, 심지어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니라는 참담한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빗 군은 가족과 떨어져 태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이주청소년 15%, 입학거부 경험

선진국에서 온 외국인 자녀와 달리 후진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 여성의 자녀들은 한국 학교에 가지 않으면 교육 기회를 얻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1991년 가입ㆍ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부모의 인종, 피부색, 언어, 신분 등에 관계없이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했고, 우리 사회도 이주아동의 교육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현실적으로 일선 학교들은 이들을 받아들이는 데 매우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 이주노동자 자녀와 중도입국 자녀는 현재 2만~3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10년 4월 기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노동자 자녀는 2,040명, 중도입국자는 2,532명으로 전체의 약 10%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즉, 나머지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경제 형편, 체류 자격의 불안정성, 학습능력 부족 등의 이유로 학교 밖에 방치돼 있는 셈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재혼 외국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데려온 외국 태생 자녀(이하 중도입국 자녀), 이주노동자 자녀, 난민 자녀 186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상자의 15.2%가 입학 거부를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공교육 진입의 대표적인 장애요소로는 자신의 한국어 능력 부족(61.4%), 부모의 한국어 능력 부족(50.9%), 비자문제(34.3%), 입학절차의 이해 부족(37.2%) 등이 꼽혔습니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신혜영 활동가는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자녀나 한국말이 서툰 중도입국자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는 더더욱 어렵다”며 “보통 4~5번을 지원하고, 흔히 몇 학년을 낮춰서 진학하거나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습니다.


이주아동 입학 보장하고 특별학급 확대해야

 

교육과학기술부가 작년 말 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는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해도 자녀를 무조건 받아주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일선 학교들은 부족한 준비와 사고 및 학습부진이 예상된다는 등의 이유로 입학 신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또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나 검둥이, 튀기라는 친구들의 놀림에 상처를 받아 “피부를 하얗게 수술해 달라”고 부모를 졸랐다는 이야기 등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데요. 이처럼 이주아동이 학교 입학한 후에도 피부색이 다르고,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과 왕따를 당하는 일에 대한 학교와 교사의 적극적인 배려와 지원도 필요할 것입니다.


안산 원일초등학교에서 6년째 외국인근로자녀 특별학급을 맡고 있는 손소연(41) 교사는 “이주아동을 위한 교육 시스템, 특히 특별학급 확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사가 학급에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학생까지 가르치기는 현실적으로 벅차기 때문에 말을 가르치고 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는 예비학교 개념의 특별반 운영이 지역별로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현재 이런 목적의 특별반이 운영되는 곳은 전국 8개 학교에 불과합니다. 손 교사는 “성남 가구공단이나 인천 남동공단 등 외국인노동자가 많은 지역에 특별반을 갖춘 초중고가 하나씩만 있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며 “주요 거점에 확실한 시스템을 갖춘다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대다수의 이주청소년들이 한국어 실력만을 고려하는 학교 측에 의해 자기 나이보다 낮은 학년에 배정되고 있는데요. 이런 관행을 바로잡아 나이, 학습능력, 본국학제 등을 고려한 학년 배정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학교 부적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3. 열악한 처지에 내몰린 결혼이주여성


우리나라에서 외국인과의 혼인은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늘어나 2004년 이후 매년 전체 결혼의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결혼이민자 18만 1,671명 중 여성이 16만 1,999명으로 전체의 89.1%에 달했습니다. 결혼이민자의 출신은 중국동포가 32.7%로 가장 많았고, 중국 28.3%, 베트남 19.1%, 필리핀 5.8%, 일본 2.9%, 그리고 캄보디아, 몽골, 태국 순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아시아 여성이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국내에 들어오고 있지만, 여러 가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우리 사회에 온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많은 수의 이주여성이 남편이 아닌 화려한 한국의 이미지를 보고 시집을 오는데, 이 이미지와 남편의 현실과는 차이가 크다”면서 “남편과의 심한 나이 차이, 문화 차이, 언어소통 장애 등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한국인 남편과 가족이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길 기대하지만, 오히려 이들의 욕설과 폭력으로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권미경 이주여성 긴급지원센터 상담팀장은 “가정폭력 등 문제가 생겨 경찰을 불러도 정작 피해 여성은 한국말이 서툴러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고, 경찰은 남편의 변명만 듣고 상황을 종결해버리는 사례도 꽤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남편과 가족의 부당한 대우를 견디다 못해 이혼을 고민할 때도 ‘신분 문제’를 걱정해 주저하지 않을 수 없는 신세입니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국민의 배우자’ 비자(F-2-1)를 발급받게 되어 출입국사무소로부터 보통 1~2년 단위로 체류기간을 연장 받는데, 이때 결혼 관계 확인을 위해 보통 배우자의 동행이나 동의가 필요합니다. 한국 국적은 한국인과 결혼한 후 2년이 지나면 신청자격을 주고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1~2년 정도 후에 취득할 수 있습니다. 즉, 배우자의 동의가 없으면 체류 연장도, 국적 취득도 어려운 현실인 것입니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조직팀장은 “일부 불량 남편들은 ‘동의를 해주면 신부가 도망갈 것’이라며 동의를 일종의 권력처럼 휘두르고, 결혼이주여성들은 불법체류자로 전락할까봐 남편의 부당한 폭력을 참고 견디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혼 과정에서도 한국법을 잘 모르고 한국어에 미숙한 외국 여성은 남편의 귀책사유를 입증하기가 어려워 자기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4. 편견의 색안경부터 벗자

 

“한국 정부가 세계의 쓰레기들은 다 모아놓고 있습니다. 반드시 후일에 다문화의 이익에 눈이 멀어 한민족을 말살하려고 의도했던 매국노들은 국민과 역사 앞에 심판이 있으리라.” 이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한 다문화정책 반대 카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이 카페에는 결혼이주여성이나 외국인노동자를 ‘쓰레기’ 등으로 비하하며 범죄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글들이 넘쳐나는데요, 전세난도 “외국인들에게 영주권을 주니까 전셋집이 줄어들면서 돈 없는 서민들은 서울 외곽으로 떠밀려 가는 것”이고, “예전에 산업연수생 제도가 없었을 때가 서민들이 그나마 살기 좋았다”며 취업난의 화살도 외국인노동자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는 이 카페 외에도 다문화주의를 배격하는 인터넷카페들이 다수 개설돼 있습니다. 매년 총 결혼건수의 10% 이상이 국제결혼으로 이뤄지는 등, 다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변화지만 한편에서는 이처럼 편협한 국수주의적 시각이 우리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백인에게는 호의, 동남아인은 무시

이주여성이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반감은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편견이 발현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를 발음상 유사성 때문에 ‘바퀴벌레’라고 일컬으며 비하하기도 하고, ‘동남아 마약상 같은 외모’라는 등의 인종차별적 표현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어가 능숙한 조선족 중국동포도 삐뚤어진 시선에서 빗겨나 있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중국동포 출신 육아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는 김 모(38) 씨는 “아직 4살밖에 안된 아이인데 조금 버릇없게 굴면 조선족이 키워서 그렇다고 주위에서 수군댄다”면서 “그 나이 때 애들이 으레 하는 행동인데도 이유를 도우미에서 찾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백인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만 흑인이나 동남아, 서남아인에 대해서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른바 ‘GNP(국민소득) 인종차별’도 여전한데요. 영어학원마다 외국인 강사들이 많지만 흑인은 찾아보기 어렵고, TV에도 우리 말이 어눌한 백인 출연자는 쉽게 볼 수 있지만 다른 피부색의 외국인은 드뭅니다. 실제로 아시아 저개발국 출신 결혼이주여성에게 ‘돈 때문에 결혼했을 것’, ‘많이 배우지 못했을 것’ 등의 편견을 가지고 무조건 무시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위엉 쑤안(가명ㆍ24) 씨는 “한국에서는 얼굴이 하얗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외국 신부는 대우받지만, 얼굴색이 짙고 아시아인처럼 보이는 신부는 차별받고 무시당하기 일쑤”라며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를 꼬집었습니다.


변화하고 있는 인식, 다문화교육 늘려야


과거에 비해서는 외국인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나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2003년 국내에 정착한 몽골 출신 경기도의원 이라 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버스 옆자리가 비어도 아무도 앉지 않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인들은 한민족이라는 핏줄의식이 여전히 강하다”면서 “우리도 국민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다문화를 이해하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조화로운 다문화사회를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한국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특히 자라나는 세대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과서의 다문화관련 기술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현재 주요 학년의 사회 교과서에는 다문화관련 단원을 따로 마련해 이주여성이나 외국인노동자를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소개하는 등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올해 개정된 초등학교 5학년 도덕 교과서에는 한국계 흑인혼혈인 미국프로풋볼(NFL) 스타 하인스 워드의 이야기가 실려 혼혈아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문화관련 단원만 벗어나면 교과서에 실린 가정이나 학급의 모습은 거의 예외 없이 검은 눈과 검은 머리의 전형적인 한국인들로 채워져 있어 여전히 한민족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교과서에서 아시아에 대한 소개도 국과 일본에 편중돼 있고,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몽골, 필리핀 등 국내 이주여성의 모국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공무원, 경찰, 교사 등에 대한 다문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금도 각 기관별로 다문화관련 업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다문화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의무가 아니라서 수강자는 한해 수십명 수준에 불과합니다. 서울대 중앙다문화교육센터 성상환 소장은 “교육을 받기 전과 후의 인식태도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다르다”면서 “해당업무에 종사하는 경찰과 교사, 공무원들이 관련 프로그램을 일정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듣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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