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의 00케미칼 공장 내부. 카본 포장지가 공장 마당 한 구석에 나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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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원료인 저밀도폴리에틸렌(LDPE)를 생산하는 업체에 근무하는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작업환경 조건으로 인해 피부병을 호소하며 병원에 데려다줄 것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 위치한 D케미칼에 근무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이슬람(가명)씨는 플라스틱 원료에 첨가하는 카본 가루로 인해 얼굴과 이마가 가려운 피부질환과 가슴통증 등을 호소했다. 하지만 회사 대표는 '꾀병'이라며 폭력을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플라스틱 원료에 카본 등을 섞어 비닐 등을 만드는 원료를 생산한다. 카본은 색상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데 가루가 날리면서 호흡기로 들어간다. 이슬람씨는 근무 중 마스크를 지급받았지만 비산먼지로 인해 가슴이 아프고 몸 전체가 가렵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슬람씨가 고통을 호소하자 회사 간부는 "술을 많이 마셔야 카본 비산물이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며 "안 그러면 나중에 암 걸린다"고 말했다며, 소변을 볼 때 맥주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슬람씨는 또 지난 1월 중순경 회사 식당에서 간부가 "왜 물량을 제대로 생산해내지 못하느냐"며 뺨을 때리고 발로 차는 등 폭행을 했고, 토요일에는 8시간 일을 했지만 4시간 임금밖에 지급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슬람씨는 지난 2월 12일 김해이주노동자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대구경북이주노동자연대회의 소속인 성서공단노조에서 사실을 확인했다. 성서공단노조는 회사에 이슬람씨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사업장 이동을 요청하자 회사 대표는 "어렵게 외국애들을 데려왔는데 이들이 나가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해 사업장 이동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것.

"폭행 없었다 진술하면 사업장 이동시켜주겠다" 회유도...

 경북 칠곡군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이슬람(가명)씨의 얼굴. 카본가루가 얼굴에 묻어 새까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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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공단노조 김용철 대표는 "지난 2일 사업장 근처에서 이슬람씨를 만났는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카본가루를 뒤집어쓴 상태였다"며 "심각한 심리적 공포를 보이고 있어 6일 긴급 피난을 시켰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대구서부고용센터를 방문해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고 고용센터 직권으로 이슬람씨의 사업장 이동을 요구하고 D케미칼의 외국인 고용허가 취소 등을 요구했다.

김 대표는 조사가 시작되자 회사 대표가 두 차례 전화를 걸어와 "고용허가 취소가 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므로 이슬람씨가 사업장 이동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자"며 합의를 종용하고 회사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폭행 사실이 없었다고 진술하면 원하는 대로 사업장 이동을 시켜주겠다"고 회유했다고 밝혔다.

D케미칼은 외국인 이주노동자 4명을 포함해 8명이 근무하는 영세업체다. 연간 매출액은 25억 원 정도로 작업장 환경도 매우 열악했다. 기자가 지난 24일 회사를 찾았을 때 공장은 매우 어두웠고 공장 바닥은 검은 카본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이 회사 이아무개 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사업장 개선을 해야 해 5000만 원 정도 돈을 들여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일하면서 욕설을 한 적은 있지만 절대로 폭력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나도 현장에서 일을 한다"며 "한국사람이나 외국사람이나 같은 근무환경에서 일을 하는데 방진마스크와 작업복을 지급하지만 (작업자들이) 게을러서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장 이동을 하기 위해 아프다고 핑계를 대는 것"이라며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법"이라고까지 했다.

고용노동부 대구서부지청 "근로기준법·산업안전법 위반 적발"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연대회의는 30일 오전 대구서부고용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상습적 근로기준법 위반하는 악덕업체에 대해 고용허가제를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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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또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오면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고 일도 모르기 때문에 가르쳐야 해 1년 정도는 인건비 줘도 적자"라며 "이슬람이 성서공단에 신고하는 바람에 회사만 어렵게 됐다"고 푸념했다.

이슬람씨가 공장 내에 집진시설이 없어 비산먼지로 인해 고통을 호소한 데 대해 이 대표는 "집진시설이 있었지만 고장이 나 제대로 가동이 안 됐을 뿐"이라며 "이번 일이 있고 난 후 1500만 원을 들여 새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D케미칼은 이주노동자 고용허가가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서부고용센터와 고용노동부 대구서부지청 등에 따르면 D케미칼에 대해 사업장 조사를 한 결과 이주노동자들이 폭력을 당한 사실을 진술했고 근로기준법 위반과 산업안전법 위반 등이 적발됐다며 고용허가 취소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최근 3년간 임금체불과 폭언·폭행,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1732건에 달하고 대구경북에서는 121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용허가가 취소된 사례는 41건밖에 되지 않고 대구경북에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대구경북이주노동자연대회의는 4월 30일 서부고용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업장 변경이 자유롭지 않은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을 이용한 강제노동, 노예노동을 D사업장 사례에서 확인했다"며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상습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상시적으로 시행할 것도 요구하고 D사업장에 대한 고용허가 취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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