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가 안 찾아간 보험금 관리 엉망
2012 09/11주간경향 992호
ㆍ삼성화재 미청구금 수백억 운용해 투자수익 논란

외국인 노동자가 받지 못한 퇴직금에 대한 처리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지급하지 않은 퇴직금을 외국인 노동자 복지사업에 활용하는 등 세부적인 처리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고용노동부(고용부)·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보험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부터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도입함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전용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용자(고용주)와 노동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외국인 전용보험은 네 가지다. 출국만기보험, 상해보험. 귀국비용보험, 보증보험이다. 출국만기보험·상해보험·귀국비용보험은 삼성화재보험을 주간사로 한 삼성화재컨소시엄(삼성화재·동부화재·현대해상화재·LIG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이 맡고 있으며, 보증보험은 서울보증보험에서 담당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2011년 12월 4일 서울 성동구청에서 열린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10주년 송년잔치’에 참석해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외국인 고용법’상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에서 취업할 수 있는 근로기간은 3년이며, 추가로 1년 10개월을 연장근무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최대 4년 10개월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셈이다.

출국만기보험·귀국비용보험 ‘논란’
외국인 노동자 전용보험 중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출국만기보험과 귀국비용보험이다. 출국만기보험은 일종의 퇴직금이고 귀국비용보험은 돌아갈 때 받는 항공요금이다. 2004년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시장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정부 추산으로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70여만명이다. 외국인 전용보험 시장은 도입 첫 해인 2004년 6000여만원에서 올해는 2500억원 규모로 팽창했다.

문제는 사용자 또는 노동자가 찾아가지 않은 출국만기보험금과 귀국비용보험금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미청구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될지 관련 법이나 규정이 없다는 데 있다. 올해 4월 말 현재 출국만기보험 미청구금은 241억원이다. 이 중 소멸시효(2년)가 경과되지 않은 미청구금은 202억원이며, 소멸시효가 끝난 미청구금은 39억원이다. 약관에는 보험사 측에서 미청구금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기간을 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귀국비용보험의 경우 미청구금은 총 179억원으로 소멸시효가 남은 보험금은 114억원,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은 65억원이다. 보험료 미청구금이 발생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근로계약 기간 중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 상태(불법체류)이거나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퇴직금을 해당 보험사에 신청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보험업계의 설명이다.

출국만기보험 및 귀국비용보험과 관련해 법적·제도적 문제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외국인 노동자가 1년 이상 근무하고 사업장을 이탈했을 경우도 퇴직금이 고스란히 사용자에게 귀속된다. ‘외국인 고용법(시행령)’에 따르면 피보험자 등이 사업장을 이탈하는 경우 그 일시금(출국만기보험금)은 사용자에게 귀속된다고 규정돼 있다.

사업장을 이탈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는 귀국비용보험도 사실상 찾을 수 없다. 귀국비용보험금을 수령하려면 해당 사업장에서 귀국확인서를 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하는데, 서로 불편한 관계 때문에 나온 직장에 가서 관련 서류를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보험금 찾아주기 노력 게을리 해
정부에서는 이 법 제정 당시 외국인 노동자의 불법체류를 막기 위해 이 같은 장치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비록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출국만기보험금을 사용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퇴직금 성격의 보험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보장하기 위해 출국만기보험이 만들어졌다”며 “근로기준법상 1년이 지나면 퇴직금 지급요건이 되므로 사업장 이탈의 경우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출국만기보험금을 귀속시켜야 한다는 조항은 삭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와 삼성화재컨소시엄이 보험료 미청구금을 찾아주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의원(민주통합당)은 “서독 정부는 1984년 파독 광부들에게 반환되지 않은 적립금을 우리 정부에 이관시켜 환급하도록 노력했다”며 “아직 찾아가지 않은 출국만기보험이 수백억원이라는 점은 정부가 보험금 찾아주기 노력을 게을리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미청구금을 주간 보험사인 삼성화재가 운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출국만기보험과 귀국비용보험의 소멸시효가 끝난 미청구금 처리에 대한 관련법 또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삼성화재는 미청구금을 운용해 투자수익을 거두고 있다.

특히 삼성화재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보험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단독으로 이 사업을 수행했으며, 2006년부터는 동부화재·현대해상화재·LIG손해보험과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2010년부터는 여기에 한화손해보험을 추가해 컨소시엄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지분은 60%이며, 현대해상화재 23%, LIG손해보험 6.5%, 한화손해보험 5,5%, 동부화재 5.0% 등이다. 이에 대해 삼성화재 관계자는 “정부가 외국인 전용보험 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전산시스템 구축, 콜센터 인원 확보 등 막대한 인프라 구축비용 때문에 금융권 어디에서도 이 사업에 뛰지들지 않았다”며 “업계 1위인 삼성화재가 정부 시책에 협조한다는 뜻에서 이 사업을 떠맡았다”고 밝혔다. 삼성화재는 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비용으로 지금까지 100억원을 투입했으며, 현재 외국인 전용 콜센터에는 15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외국인 전용보험 상품 이율이 다른 보험상품에 비해 낮다는 지적도 있다. 출국만기보험의 이율은 노동자가 4년을 계속 유지한다고 할 때 평균 연이율이 1% 미만이다. 출국만기보험은 가입 첫 해에 연 0.5%의 이율로 시작해 점점 올려 4년 차에는 연 4%의 이율을 지급한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출국만기보험의 경우 보험상품 중에서 유일하게 원금보장상품이기 때문에 이율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원금을 보장하는 다른 은행권의 상품도 조사해본 결과 높지 않았다”고 밝혔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