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중소기업 휴·폐업 잇따르며 줄줄이 해고
재취업기간 2개월뿐…“구직중엔 출국유예를”


지난해 10월 한국에 들어온 란짓(33·스리랑카)은 오는 10일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가구공장에서 취직한 그는 지난 1월10일 해고됐다. 일하다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게 되자 가차없이 해고 통보가 날아온 것이다. 그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개월 안에 재취업을 하지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로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다른 공장 동료들도 줄줄이 해고되는 마당에 아픈 몸으로 새 일자리를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는 “한국에 온지 반년도 안돼, 지금껏 번돈을 다 합쳐봐야 입국비용 400만원에도 못 미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된 일터인 영세 제조업체들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일터를 잃은 이주노동자들이 줄줄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각 지역별 노동지원센터에는 일자리를 잃은 이주노동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안산지역 노동지원센터 관계자는 5일 “올 들어 이주노동자들의 고용 지원 문의가 2~3배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행 규정상 ‘고용허가제’에 따라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3년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지만, 일자리를 옮길 경우 2개월 안에 재취업해야 한다. 재취업 기간을 넘기거나 사업장 이동이 3차례 이상일 경우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그러나 영세 제조업체들의 휴·폐업이 급증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주노동자들의 해고와 재취업 전쟁은 훨씬 더 가열될 전망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집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안산·시흥 지역에서 휴업을 신고한 제조업체는 모두 608곳으로 지난해 상반기 월 평균 휴업업체 20여곳에 견줘 30배 가까이 늘었다. 공장 문을 닫거나 쉬는 업체들이 급증하면서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신청’ 건수도 크게 늘었다. 노동부에 신고된 사업장 변경등록 현황을 보면, 2007년 1월 1684건에서 2008년 12월에는 6745건으로 2년 새 4배 이상 늘었다.

외노협과 이주인권연대, 이주노조 등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 불황으로 길거리로 내몰리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사회적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된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중단 △구직 기간 제한 등 폐지 등을 주장했다.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본인 책임이 없는 경우에도 두달 안에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강제출국시키는 규정은 현실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며 “이주노동자가 구직 노력을 하고 있는 동안은 강제 출국을 유예하는 등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지난 2007년 노동부에 “외국인근로자 불법체류 양산의 원인으로 단기적인 구직활동기간과 엄격한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 등을 들 수 있다”며 사업주의 부당한 근로계약 해지 등 이주노동자에게 원인 제공이 없는 경우에는 강제 출국을 유예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