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150만 시대의 그늘> 법 보호 못받는 농업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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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업 이주노동자 권리 보호 촉구(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18일 오전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 9개 단체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축산업 이주노동자 권리를 촉구하는 소비자·이주노동자·생산자 선언' 기자회견에서 캄보디아 출신 농업 이주노동자 스레이 나비 씨(오른쪽에서 다섯번째)가 자신이 겪은 열악한 근로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4.12.18 utzza@yna.co.kr

 

근로기준법 63조 개정 '시급'장기 인력 활용대책 세워야

(서울·이천·여주=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젊은이가 떠난 농촌의 빈자리를 채운 농업 이주노동자의 처지가 딱하다.

국내 일반 노동자와 비교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제조업 분야 이주노동자와 비교해봐도 '2류 노동자'.

우선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상 보호 대상이 아니다. 1997년 제정된 근로기준법 제63조가 농축산업 분야 근로자를 적용 대상에서 뺐기 때문이다. 고용주가 허가하지 않으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고, 어렵사리 사업장을 바꾸겠다고 해도 3개월 이내 새 직장을 찾지 못하면 출국해야 한다. 이런 탓에 노동 3권에 대한 보장은커녕 숙식 등과 관련한 생존권조차 위협받기 일쑤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1021일 발표한 '고통을 수확하다: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 실태보고서에서 농업 이주노동자를 "농노와 같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반면 앰네스티의 이런 판단은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어 수입이 불균등하고, 전통적인 농가의 생활 여건을 고려해보면 앰네스티가 요구하는 국제기준은 국내 현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휴일도 안 주고 매일 11시간씩 일 시켜"

법무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고용허가제에 따라 한국으로 들어와 일하는 이주근로자는 246695명이고, 이 가운데 19726명이 농업 분야 근로자다. 고용허가제 근로자 중 8%에 달한다.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는 이젠 청장년층이 빠진 농촌의 주력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급여와 생활 여건은 균일하지 않다.

실제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소재 삼영농장의 박영표 대표는 "20년 가까이 농장을 운영하면서 우리나라 인력을 구할 수 없어 10년째 외국인 노동자를 써 왔으며 여름 농번기에는 25, 겨울 농한기에는 10명가량을 고용해왔다"고 현실을 전했다.

연합뉴스는 최근 경기도 여주와 이천 지역 3개 농장을 찾아 고용주 3명과 이주노동자 7명을 상대로 고용 계약 내용과 이행 여부, 생활 여건을 알아봤다.

급여는 막 입국해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면 월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임금 인상을 거쳐 34년차가 되면 월 120160만원을 받았다. 비닐하우스 농사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축산 분야가 다소 높았다. 쌀과 부식재료, 전기·가스 등을 제공받고 있었다. 그러나 주거 시설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임시 건물이거나 비닐하우스를 고쳐 지은 것이 대부분이어서 열악한 수준이었다.

여건에 대한 이주근로자들의 반응은 다소 달랐다.

여주의 쌈 채소 재배 농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K(36), S(25·)씨는 "150160만원의 급여와 숙소, 그리고 쌀·전기·가스를 공급받고 있다""여건에 만족하며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에 앰네스티 조사에 따르면 채소 농장에서 20127월부터 2년간 근무했다는 캄보디아 출신의 G(24)씨는 "계약서에는 8시간으로 돼 있지만 매일 11시간 일을 했고, 매월 이틀 휴일을 준다고 했지만 한 달 반에 하루씩 휴식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근로기준법 제50"1일의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과 입국 당시 계약서에 명시된 월 노동시간 규정인 226시간을 넘겼다는 것이다.

전남의 벼 농가에서 20123월부터 2년여 동안 일한 캄보디아 노동자 H(25)씨는 "사장이 해남과 진도의 다른 농장에서 일을 시켰는데 하루에 세 곳에서 일했고, 그 기간 7080명의 고용주와 300여 곳의 밭에서 근무했다"고 진술했다.

고용허가제 근로자는 계약서에 명시된 농장에서만 일할 수 있다. 이른바 '파견 근로'는 적법하지 않다.

 

"농축산업 근로자도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 포함해야"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은 농축산업 분야 근로자를 적용 대상에서 뺀 근로기준법 제63조가 개정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육체적으로 고강도 노동을 하는 만큼 이들도 당연히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20048월 시행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고용허가제에 따라 모든 이주근로자도 우리나라의 노동법에 따라 내국인 근로자와 같은 노동권, 임금 및 복지에 대한 자격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근로기준법이 적용돼야 농업 이주노동자도 근로시간, 휴식, 휴일 등 노동 여건에 대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고용주가 이주근로자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가진 반면 이주근로자는 새 직장을 구하려면 반드시 사업장변경신청서에 고용주의 서명을 받게 돼 있다. 사업장의 휴업·폐업 등의 경우 3차례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장 변경 허가를 받더라도 이주근로자는 3개월 내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출국해야 한다.

이재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은 "농업 분야 이주근로자는 말 그대로 '() 중의 을'"이라며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농협 등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할 만하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나려 하는 데다 사업장을 무단으로 이탈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 새내기 농업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적용받지만, 일손이 달리는 46월 농번기에는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고용주에게 이직을 강력하게 요구해 마찰이 생기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농가를 대상으로 한 농협의 전문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농촌 인구 급감에 따른 장기 대책 마련해야"

농촌 인구 급감에 청장년층 유출로 농업 이주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커진다.

베트남·캄보디아·미얀마·태국·네팔 등이 주축인 농업 이주노동자는 연간 9천여 명이 필요하지만 공급은 6천여 명에 불과해 이들을 확보하려는 농가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제는 정부가 장기적인 농업 이주노동자 활용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정부가 고용허가제의 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과 근로기준법 제63조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난방, 수도, 잠금장치가 있는 문, 적절한 환기 시설, 식수 접근성 등 국제기준에 근접하는 생활 여건을 의무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고용 농가와 이주노동자가 함께 부담하도록 한 건강보험 가입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농번기와 농한기가 분명한 현실을 감안해 이주노동자가 한 곳이 아닌 두 곳 이상의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꿔 파견 근로를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현행 규정을 보면 고용 농가와 이주노동자가 근무처 추가를 신청하면 파견 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절차가 번거롭고 비용이 적지 않아 대부분 이를 꺼린다.

앰네스티로부터 사회권규약, 자유권규약, 인종차별철폐협약 등 국제조약에 규정된 대로 고용주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이주근로자를 보호해야 할 주의의무(due diligence)를 다하지 못했다는 통보를 받은 우리 정부는 지난 11월부터 이주노동자 노동 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담당인 고용노동부는 내년 2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책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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