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2015! <5> 외국인 노동자 '코리안드림'

"아이들은 타국서 고생 않도록 고향에 학교 짓고파"

  • 국제신문

 

6일 부산 사상구 감전동 한 주물공장에서 캄보디아 출신 근로자 두옹 위볼 씨가 작업 도중 취재진을 향해 미소를 띠고 있다. 김성효 기자
- 캄보디아 출신 두옹 위볼 씨
- 대학 나오고도 일할 곳 없어
- 처자식 남겨두고 한국으로
- '교육만이 조국 바꿀 수 있다'
- 고된작업 속 교육자 꿈 키워
- 비자 연장돼 돈 더 모았으면

6일 오후 5시 사상구 감전동 한 주물공장. 거푸집에 쇳물을 붓고 벌겋게 달군 쇳덩어리를 옮기는 근로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기계는 끊임없이 돌아가 엄청난 소음은 물론 쇳가루와 분진이 날아다녔다. 용광로가 터지는 사고도 종종 일어나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서는 잠시도 작업할 수 없는 곳이 이런 주물공장이다. 이들 가운데 캄보디아 출신 두옹 위볼(31) 씨는 쇠몽둥이로 거푸집을 때려가며 자동차 부품을 분리하는 작업을 했다.

캄보디아 명문 노턴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두옹 씨가 일할 수 있는 곳은 조국에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2012년 6월, 3년 기한 취업비자(E-9)를 받아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는 "가족이 함께 지낼 집도 없어 뿔뿔이 흩어 지낼 정도로 가난했다.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입국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첫 겨울은 혹독했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추위에 벌벌 떨었고 사장은 따뜻한 물 한 바가지 주지 않을 정도로 차디찼다. 각종 중금속을 다루는 도금공장에서 일했지만 얼음 같은 물에 손을 담글 엄두가 나지 않아 씻는 것을 포기했다. 구멍 난 장갑과 신발을 신고 일한 탓에 크고 작은 부상과 각종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그는 "사장이 모든 잔업에서 빼버려 한 달에 쥐는 돈이 100만 원에 불과했던 게 가장 속상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직장을 옮겨 지금 직장에 자리 잡았다. 일은 힘들지만, 잔업에도 꼬박꼬박 참여해 월급이 배 가까이 오른 데다 동료와도 사이좋게 지낸다. 1년 전 부산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 다니며 배운 한국어 실력도 부쩍 늘어 이젠 대화에 무리가 없을 정도다. 지난해 센터 주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 두옹 씨의 꿈은 교육자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캄보디아에 학교를 지어 운영하고 싶다. 교육만이 조국을 바꾸고 발전시켜 자라나는 아이가 다른 나라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는 몇 년간 일만 하느라 부모와 아내, 자식,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일부는 한국에서 일하다 숨졌다"고 말했다.

두옹 씨는 비자 연장이 안되면 6개월 후에 한국을 떠나야 한다. 지금 모아둔 돈으로는 그의 꿈을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홀로 아내와 딸 부모 동생을 모두 돌보느라 집 지을 땅만 겨우 마련했다. 그는 "올해 소망은 비자가 연장돼 1년 10개월 더 머무르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도 꿈을 이루려면 한국에 좀 더 남아야 한다"고 전했다.

부산고용노동청은 지난해 말 기준 부산지역 외국인 근로자는 8480명이라고 밝혔다. 전국에는 25만7026명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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