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전문인력 노동착취 통로 된 ‘E7 비자’

등록 : 2016.09.28 04:40
수정 : 2016.09.28 04:40

요리사ㆍ디자이너 등 85개 직종

전문성 갖춘 입국자 대상 비자

3년새 20% 늘어 4만여명 발급

비전문 단순노동직 비자와 달리

정부의 현장 근로감독서 제외

“부처 간 협업해 실태 점검해야”

서울 이태원의 한 인도음식점에서 2011년부터 요리사로 일한 방글라데시인 A(37)씨와 B(37)씨는 월급 전액을 직접 받아본 적이 없다.


월급통장은 물론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같은 나라 출신 귀화자인 사장 김모(51)씨가 도맡아 관리한 탓이다. 매달 150만원이 입금됐지만 현지 가족에게 지인을 통해 50만~90만원 정도 전달됐을 뿐 통장에 모인 수천만원의 목돈은 김씨가 수시로 출금했다. 일주일에 엿새나 하루 12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두 사람이 손에 쥐는 현금은 김씨가 생활비 명목으로 주는 월 10만원에 불과했다. 신분증을 빼앗겨 달아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이들은 지난 7월 김씨를 서울 용산경찰서에 고소했고 지난달 고용노동부에도 진정을 냈다. 경찰은 김씨와 동업자 최모(44ㆍ여)씨를 외국인노동자들의 임금을 가로챈 혐의(사기 및 업무상 횡령)로 최근 불구속 입건했다.


사장의 불법 행위가 5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건 특정활동비자(E7)의 허점 때문이었다. 피해자들은 E7 비자로 국내에 들어왔다. E7 비자는 단순취업(E9) 비자(27만5,502명ㆍ올해 7월 기준)와 달리 요리사, 디자이너 등 전문성을 갖춘 85개 직종이 대상이다. 입국자수가 2012년 3만5,907명에서 지난해 4만3,300명으로 3년 사이 20.6%나 증가하는 등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문제는 E7 비자는 당국의 사후관리를 받지 않는 등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서울 송파구의 한 인도 레스토랑 사장은 1,000만원 상당 외국인노동자 임금을 체불해 200만원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달 서울 마포구에서는 한 외국인 요리사가 식당에서 숙식하며 휴일 없이 일했는데도 월 50만원 밖에 받지 못해 고용부에 진정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서울시 노동옴부즈만 최미숙 노무사는 “최근 웰빙 트렌드에 힘입어 인도ㆍ중동 요리점이 각광받고 있으나 사실상 ‘감금노동’에 시달리는 외국인 요리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외국인 전문인력들의 불안정한 지위도 노동착취를 가능케 한 이유로 꼽힌다. 이들은 언어 장벽이 크고 법 지식이 부족한데다 고용주에게 맞설 경우 강제출국 등 불이익을 당해 부당한 대우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A씨 역시 경찰 조사에서 “사장이 세금 관련 서류라고 속이고 우리 명의로 도장까지 몰래 파 통장을 임의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관계 당국들은 관리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비전문 단순노동직인 E9 비자 소지자는 고용부가 사업장 자료를 갖고 있어 지속적인 근로감독이 가능하나 E7 비자 업무는 법무부 소관”이라고 말했다. 반면 법무부 관계자는 “E7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노동자의 출ㆍ입국 및 갱신 때마다 근로 계약서 작성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장 근로감독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체류 점검(법무부)과 근로감독(고용부)이 이원화된 관리 체계 속에 악덕 고용주들이 명목뿐인 계약서를 내세워 외국인노동자의 임금을 가로채며 정부의 감시망을 피하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분야의 외국인 전문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련된 E7 비자가 노동인권 침해의 통로로 악용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서광석 인하대 이민다문화정책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주로 외국인 육체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집중하느라 원어민강사와 요리사 등 전문인력의 열악한 처우를 외면해 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부처간 협업체계를 구축하거나 장기적으로 이민청 같은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이주민 노동 실태를 꾸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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