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달래며 코리안드림 일구는 네팔인들의 ‘희망 쉼터’

글·사진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ㆍ청주에 노동자 30여명 거주
ㆍ자발적으로 기금 모아 운영
ㆍ고향 음식 나누며 서로 격려

지난 25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청주 네팔 쉼터’에서 스니따(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25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청주 네팔 쉼터’에서 스니따(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주택가. 네팔인 껄버나(28)가 다리를 절며 한 주택 1층 안으로 들어섰다. 창문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네팔 국기가 붙어 있었다. 거실에 있던 스니따(38)가 벌떡 일어나 껄버나를 반겼다. 스니따는 거실에 앉은 껄버나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저녁준비가 한창인 주방에서는 네팔 향신료인 마살라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거실 벽에는 ‘Happy New Year 2074’가 쓰인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지난 14일이 네팔 달력으로는 2074년 1월1일 새해였다.

약 80㎡에 방 3칸, 주방 하나가 있는 이 작은 집은 ‘청주 네팔 쉼터’다. 깔버나는 이곳을 ‘고향’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전북 전주의 한 돼지농장에서 돼지들에게 부딪혀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쳤다. 수술을 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농장 주인은 껄버나를 외면했다. 3개월간의 입원치료가 끝난 뒤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스니따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껄버나는 “정말 막막했는데 한국어를 잘하는 디디(스니따)가 쉼터에서 생활할 수 있게 자리를 내주고, 이주노동자인권센터에도 연락해 산업재해 처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며 “한국생활이 힘들지만 친구들과 편하게 이야기하고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쉼터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쉼터에는 30여명의 네팔인 노동자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한국생활 중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거나 네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향수를 달랜다. 쉼터는 스니따와 남편 고니스(38)가 지난해 6월 만들었다. 다른 곳의 지원을 받는 쉼터는 많지만 네팔인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 운영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500만원의 보증금은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했다. 33만원의 월세는 스니따가 아르바이트를 해 충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곳에서 1분 정도 떨어진 곳에 20㎡ 남짓한 여자 쉼터도 만들었다. 

스니따와 고니스는 10여년 전 각각 컴퓨터와 수학 전공으로 충북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스니따는 2012년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남편은 전공을 바꿔 현재 한신대에서 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262124005&code=620111#csidx1c0f0d4f213990d835bbee19d8eae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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