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다문화정책] ① "차별 없는 세상" 대선공약 4가지

종합지원체계 확립·교육권 보장·다문화 수용성 확대 등 약속
선거운동 때 '무지개유세단' 활약…이주민 지지 선언도 잇따라 

<※ 편집자 주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55일이 지났습니다. 촛불민심의 토대 위에 세워진 정권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개혁과 사회 통합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뜨겁습니다. 이주민과 다문화 가족들도 대통령의 가치관과 공약대로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차별이 없는 사회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분야에 관한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을 점검하고 새 정부의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기사 3꼭지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5월 1일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가운데 남성)가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제19대 대통령선거 유세전이 한창이던 지난 4월 26일.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다문화거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연호하며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들 유세단의 면면은 한국인과 달랐고 선거 구호의 한국어 발음도 다소 어눌했다.

중국·러시아·베트남·필리핀·몽골·네팔·키르기스스탄 등 20여 개국 출신 귀화자 40여 명으로 꾸려진 '무지개 유세단'은 안산을 시작으로 충남 천안, 전북 전주, 광주광역시, 전남 광양, 울산, 경남 김해, 서울, 인천, 강원도 원주 등지를 돌며 40차례에 걸쳐 거리 유세를 펼쳤다.

이처럼 이주민들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앞서 4월 22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16개국 출신 귀화인 50여 명이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문재인 후보의 정책은 모든 이주민의 바람"이라며 지지를 선언했고, 경남·대전 등 각지 이주민과 다문화 관련 단체 등의 지지 선언도 잇따랐다.

무지개 유세단을 조직한 강신성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각종 특혜와 불평등을 지켜본 이주민들이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정책과 문 후보의 의지에 공감해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특히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한국 사회의 발전에 뭔가 기여하고 싶다는 열망이 이들을 거리 유세에 나서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문 대통령 "다문화가정은 소중한 자산"

후보 시절이던 3월 4일 문 대통령은 코리아평화네트워크 주최 국민대통합 포럼에서 "다문화가정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대한민국 품에 안긴 다민족과 이주민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가나 관가에서는 문 대통령이 오랜 기간 인권변호사로 활동해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자녀, 난민 등의 인권에도 관심이 많을 것이라며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민을 위한 정책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2006년 4월 노무현 정부가 '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대책'을 발표하며 다문화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나섰을 때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점을 들어 "참여 정부를 계승한다고 밝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적극적으로 다문화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는 사람도 많다.

다문화정책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장관 후보로 지명된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와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에 내정된 은수미 전 국회의원이 모두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라는 점도 새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다문화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으로 보는 전망에 힘을 싣는다.

다만 2006년 이후 정부의 다문화정책 기조가 흔들린 적이 거의 없었고 주요 이슈에 관해 여야의 이견이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존 정책 방향이나 중점 과제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으리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지난 3월 31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2017년 제1회 결혼이민자 취업박람회'에서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채용정보를 살펴보며 통역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 결혼이민자 종합지원·다문화 수용성 교육확대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내놓은 공약집에서 다문화정책은 ▲결혼이민자 정착 및 인권 보호를 위한 종합지원체계 확립 ▲다문화가족 자녀 학습 및 정서 지원을 위한 '생활-학습 돌봄 멘토링 사업' 실시 ▲다문화가족 자녀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특별학급과 대안학교 지원, 다문화 교육에 대한 교과 개발 및 교사 연수 실시 ▲국민 대상 다문화 수용성 교육 내실화 및 확대 등 4가지다. 이와 별도로 농업정책 분야에서 '이주여성 농어업인 후견인제 등 다문화가정 지원정책 확대'도 약속했다.

그동안 다문화가정, 혹은 이주민에 관해서는 여성가족부 말고도 법무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농수산식품부 등의 부처가 각기 지원 업무를 펼쳐왔다. 이에 따라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업무 중복 현상이 나타나거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공약집은 그 폐해를 막기 위한 컨트롤 타워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신 결혼이민자의 종합지원체계를 확립하겠다는 표현으로 부처 간 업무 조정에 대한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다.

다문화 자녀들을 위한 멘토링과 교육에 무게를 둔 것은 이들이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이 사회의 공존과 화합을 도모하고 국가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2000년대 들어 국제결혼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이후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속속 학령기에 접어든 추세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문화 수용성을 높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자 시대적 흐름이다. 사회 일각의 반다문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시민교육을 강화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로 대두한 것이다.

이주여성 농어업인 후견인제는 이미 각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긴 하지만 새 정부의 지방 분권과 국토 균형 발전, 양성평등 등의 기조 아래 확대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고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은 설명한다.

◇ 여가부 장관 임명 후 정책 방향 구체화할 듯

현재로써는 공약집에 있는 내용 말고는 새 정부의 다문화정책 방향을 가늠할 구체적인 밑그림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강신성 위원장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러 지역의 다양한 이주민과 다문화 관련 종사자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이민청 설립'이나 '헌법에 다문화인의 권리 명시' 등의 주장과 요구가 쏟아졌다"면서 "우선 공약집에는 일부만 넣었지만, 앞으로도 이분들과 긴밀히 논의하고 관계 부처와 야당 등과 협의해 정책과 입법 등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태규 자문위원은 "우리 분과에서 사회 전반의 국정 과제를 점검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다문화정책에 관해 검토하거나 논의한 것은 없고 앞으로도 특별한 제안이나 의견을 제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의 한 간부는 "현재 신임 장관의 임명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부처의 입장을 말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서 "대통령 공약과 국정기획자문위의 제언 등을 토대로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우선순위가 마련되면 그에 맞춰 신임 장관이 다문화정책 청사진을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文정부 다문화정책] ② 컨트롤타워 설치되나…주요 현안들

다문화정책 시행 12년, 다문화가족법 제정 10년…"새 틀 짜야 할 때"
"종합 거버넌스 체계 구축해야" "지원 위주 벗어나 소통 주력" 

전북대가 지난 5월 25일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연 대동제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학생들이 함께 비빔밥을 비비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2000년 1만2천여 건이던 국제결혼은 2005년 4만2천여 건으로 급증, 전체 결혼 건수의 13.5%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의 다문화가정은 27만8천여 가구로 전체의 1.3%를 차지하며, 국내 체류 외국인은 지난해 6월 200만 명(인구의 3.9%)을 넘어섰다.

정부는 2006년 4월 '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대책'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다문화정책을 펼쳐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한 데 이어 2009년 총리실 산하에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를 설치했다. 관계 부처 합동으로 제1차 다문화가족정책 기본계획(2010∼2012년)과 2차 기본계획(2013∼2017년)을 마련해 시행했고 올해 안으로 3차 기본계획(2018∼2022년)을 수립할 예정이다.

연합뉴스와 수원시외국인복지센터가 지난해 10월 30일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공동 개최한 '2016 다(多) 어울림 한마당'에서 참가자들이 게임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 1월 9일 여가부가 발표한 올해 업무계획의 골자는 ▲다문화가족 정착 단계별 지원 강화 ▲다문화 자녀를 미래 인재로 양성 ▲다문화에 대한 긍정적 사회인식 확산 ▲다문화가족 정책 총괄 및 서비스 전달체계 효율화 4가지다. 여기에는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된 내용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지난해 9월에는 3개 부처 10개 사업을 통폐합하고 5개 부처 6개 사업을 조정하는 등 그동안 지적돼온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보였다. 농업진흥청의 '다문화가족 상담 사랑방'을 여가부가 운영하는 '다누리포털'(www.liveinkorea.kr)로 일원화했고, 여가부가 실시해온 '국제결혼 피해 예방 교육'과 법무부의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을 통합하기로 했다.

◇ 다시 대두하는 컨트롤타워 설치 논의

지금까지 10년 넘게 정부가 다문화정책을 펼쳐오는 동안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것은 여러 부처가 각기 업무를 추진하다 보니 일관성 있게 추진되지도 않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총리가 주재하는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예산의 낭비나 정책의 혼선을 피하기 어렵다. 중복 사업이 적지 않고 성과 위주의 일회성·시혜성 사업도 쏟아지다 보니 역차별 논란을 부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번에야말로 부처 간 이견 등으로 번번이 무산돼온 이민청 설립이나 컨트롤 타워 설치 주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주민정책의 추진 체계에 관한 논의가 부처 간 기능 재편이나 기구 설립 중심으로 이뤄져 부처 편의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면서 "종합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부처 고유의 기능과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주민정책의 추진 방향 설계나 컨트롤 타워 설치 논의를 관료들에게 맡기기보다 이민 전문가를 중심으로 특별기구를 한시적으로 설치해 각국의 사례를 연구하고 관련 부처의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 실질적 지원 이뤄지도록 법령 정비 시급

법령 역시 다문화가족지원법 말고도 국적법, 출입국관리법, 외국인처우개선법,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재외동포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북한이탈주민 지위에 관한 법률, 교육기본법, 사회보장기본법 등에 관련 규정이 산재해 혼선을 빚고 있다.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다문화가족 정책의 종합 거버넌스 문제를 따져 보고 관련 법률의 상호관계를 분석한 뒤 모순점을 시정하는 동시에 담당 부처·기관의 역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직업훈련, 기술, 법률, 복지, 의료, 학습권 보장 등 다문화가족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김환학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외국인 입국허가와 체류관리 등을 담은 출입국관리법에서 국민의 출국금지 규정을 분리하고 난민 심사 절차를 신속하게 운용하도록 법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성가족부·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지방조달청 별관에서 개최한 다문화가족 포럼에서 손애리 여가부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 시혜적 방식은 그만…'자존감 상처·낙인 효과'

다문화가족이나 이주민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지만, 이들을 시혜적 정책의 대상자로 범주화하는 것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낙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반다문화 정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반 국민의 거부감을 부추기고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 연장선에서 다문화 자녀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특별학급과 대안학교를 지원하겠다는 대통령 공약도 중도입국 청소년 등 대상을 한정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의도하지 않게 그들을 사회적 소수자나 취약계층으로 낙인찍는 효과가 생긴다"면서 "특히 일반 학교에서는 다문화가족 자녀만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나수민 씨(전북 진안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중언어 코치)는 "큰딸이 초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도중 다문화 자녀들만 따로 불러내 문화체험을 시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다문화가족이 일반인과 분리된 채 정책의 대상이 되면 배려받는다는 심정보다 특수한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일반인과 소통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 동화주의 벗어나 상호 인정으로 방향전환

다문화정책 시행 초기에는 결혼이주여성이 한국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어나 한국 문화 교육에 집중했으나 이제는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 전 국민에게 세계시민교육을 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초기의 다문화정책은 한국 문화의 우세를 전제로 보편적 한국 문화를 습득하게 함으로써 단기간에 결혼이주민을 한국 주류사회에 편입시키거나 동화시키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비판한 뒤 상호 인정과 이해를 통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이중언어를 배우기 어려운 형편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양국 문화를 이해하고 두 나라 말을 모국어로 익히는 것은 큰 장점임에도 대부분의 아시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은 시집 식구들의 반대와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등의 여건 미비로 자녀에게 모국어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여가부가 이중언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수 인재 발굴이나 교육용 교재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시의적절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2015년 여가부의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100점 만점에 53.95점이었다. 2011년 조사 때보다 2.78점 높아졌지만, 주요 선진국보다는 이주민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정서가 여전히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부는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을 통해 다문화 이해교육 강사를 군대와 학교 등 전국 각지에 파견하는 한편 '다문화 수용성 제고 중장기(2018∼2022년) 로드맵'을 마련해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文정부 다문화정책] ③ "지자체에 권한이양" 각계 목소리

"국민 대부분 다문화 공약 몰라" "다문화 통합정책 마련해야"
"수요자 맞춤형 지원체계 절실" "단순 지원, 낙인효과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우리나라로 귀화한 이주민, 다문화 분야 종사자, 전문가 등은 새 정부의 다문화정책에 어떤 기대를 품고 있을까.

각계의 주요 인사들로부터 문재인 대통령 후보 공약에 대한 평가와 새 정부에 바라는 점 등을 들어봤다.

지난 4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양승조 의원 주최, 한국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회 주관으로 '대통령 후보에게 묻다-다문화 한국의 미래' 주제의 포럼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 결혼이주여성의 증가 속도가 둔화하고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져서인지 최근 몇 년 사이에 정부의 다문화정책이 후퇴한 느낌이고 국민의 관심도 떨어진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다문화정책 공약을 내놓았다고는 하지만 선거운동 기간 적극적으로 이슈화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잘 다루지 않아 대부분 잘 모른다.

대통령의 공약은 모두 시의적절한 것이긴 하나 사실상 이전 정부에서 계속 추진해온 것이기도 하다. 결혼이주여성을 비롯한 이주민들이 지속해서 요구해온 것은 이민청을 신설하든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다문화정책에 관한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19대 국회에 있을 때도 틈날 때마다 이를 주장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각 부처에 흩어진 이주민 관련 정책을 한군데로 모으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확실하게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다문화 자녀 학습과 정서를 위한 돌봄 멘토링 사업이나 특별학급·대안학교 지원은 적절한 공약이라고 본다. 가장 세심한 배려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대상은 한국어도 서툴고 문화적 이질감도 심한 중도입국 청소년들이다. 일반 국민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자녀들과 중도입국 청소년을 구분하지 못한다. 만일 이들이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면 다문화 자녀 전체에 대한 선입관이 나빠질 것이다.

다문화가정의 이혼율이 높아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결혼이주여성이 많다. 생활고 등에 시달려 아이를 친정(모국)으로 보내기도 한다. 결혼이주여성이 자립하지 못하면 자녀 교육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크다.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거나 대학에 들어간 다문화 자녀도 많다. 자녀 성장주기에 따른 단계별 지원과 다양한 사례에 맞춘 구체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 신숙자 한국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의회장(인천 강화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 정부의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이 결혼이주여성의 안정된 정착에 기여해온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이주여성의 노후 문제에도 대비해야 하고 중도입국 자녀, 외국인 유학생, 탈북자, 고려인 동포 등 다양한 사례를 포괄할 수 있는 다문화 통합정책을 마련할 때다.

각 부처와 지자체에 분산된 다문화가족 지원 위주의 정책에서 탈피해 다문화 로드맵과 함께 정부 컨트롤 타워를 만들고 미래를 대비해 일관성 있게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 현재 정부의 다문화정책 담당 부서는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 가족정책관 아래 다문화가족정책과와 다문화가족지원과에 불과하다. 이를 최소한 다문화정책실로 격상시켜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건강가정지원센터의 통합은 문제가 많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치 기준을 삭제해 건강가정지원법에 편입시키려는 개정안도 폐기돼야 마땅하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사회복지사들보다 열악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종사자들의 처우도 개선이 시급하다.

전국의 218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다양한 가치와 시선이 존중받는 사회의 기반으로 통일 후 2천500만 북한 동포를 지원하고 끌어가야 할 준비된 자산이다. 다문화라는 말이 사라지면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사장될 뿐 아니라 아직도 사회적 약자인 다문화가족이 배려받기 어려워진다.

연합뉴스와 고양시체육회 공동 주최로 6월 17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7 전국 다문화가족 배드민턴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 권택명 한국펄벅재단 상임이사 = 정부가 다문화정책을 시행한 지 10년을 넘기는 동안 이제는 주요 현안을 대부분 짚었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어느 정도 정립했다고 본다. 다문화정책에 관해서는 그동안 여야의 견해차가 크지 않아 새 정부 들어서도 기조가 크게 바뀔 것은 없다고 본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도 지금까지 공감대를 이뤄온 범위 안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차이를 인정하고 이주민을 포용하는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당위와 현실의 괴리를 느낄 때가 많다. 더욱이 다문화가정의 사례가 사람마다 달라 포괄적인 접근보다는 구체적인 적용이 중요하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결혼이주여성이 절반에 육박하다 보니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사람, 별거 중인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에 열심히 노력해 모범적으로 적응하는 사람도 있다. 부지런히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혜택을 많이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보 부족이나 교통 불편 등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사람에게 각각 맞춤형 지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여러 그룹으로 나눠 그에 맞는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중앙 정부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새 정부가 지방 분권을 약속한 만큼 다문화 분야에서도 지자체에 과감하게 권한을 이양하고 관련 인력을 늘려주기 바란다.

주변의 성공 사례를 보면 본인의 의지와 노력 말고도 가족과 이웃, 사회봉사자들의 이해와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남편과 시부모를 비롯해 교사, 학생,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다문화 이해교육과 체험 기회를 대폭 늘려야 한다.

◇ 김환학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 다문화가족지원법은 2008년 3월 제정돼 지금까지의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결혼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도 이미 20여 년이 지났다. 1990년대 들어온 결혼이주여성의 상당수는 가계의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 국가가 여전히 후견인의 지위에서 다문화가족을 상대로 지원하는 정책과 법률의 틀을 바꿔야 한다.

다문화가족을 단순 지원하는 방식은 '낙인 효과'라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크다. 보편적 복지제도를 통해 다문화가족의 자발적인 사회통합 동참을 유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국제결혼을 내국인 간의 혼인과 달리 취급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이혼이나 사별 후 재혼한 결혼이민자가 출신국에서 데려온 중도입국 자녀는 재한 외국인 가운데 가장 취약한 집단인데도 방치되고 있다. 이들의 사회 적응을 위한 배려와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국제적 기준에 따르면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에서 노동하는 것은 3년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4년 10개월에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이런 규정은 매우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내국인의 노동조건도 악화시키고 있으므로 한시바삐 개정해야 한다. 경제협력협정(EPA)의 틀에서 국내 청년도 외국에 나가 취업이나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쌍방향 인력 교류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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