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아세안 헌장’ 이주노동자 권리 보호, 이해관계 따라 각국 엇갈린 시선

김지수의 기사 더보기▼ | 기사승인 2017. 07. 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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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aysia Immigration <YONHAP NO-2363/> (AP)

사진출처=/AP, 연합
아시아투데이 김지수 기자 = 최근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대대적인 불법 이주 노동자 단속과 추방이 이뤄지면서 2007년 논의된 이주노동자 인권에 대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헌장이 과연 최종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회의적 견해가 나오고 있다.

닛케이아시안리뷰의 22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약 10만 명의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태국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군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벌금형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후 말레이시아도 지난 1일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포 작전을 연쇄적으로 시행하면서 3000여 명의 노동자와 60여 명의 업주가 불법 노동 혐의로 기소됐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지난 2007년 세부에서 의장국 필리핀의 주도로 헌장을 발표하고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보호·증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후 아세안 국가들은 역내 전역에서 적용되는 법적 표준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지지부진하다. 올해 다시 아세안 의장국을 맡게 된 필리핀 정부는 이 헌장에 따른 이주노동자 권익 보호를 다시 한 번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필리핀에게 이 문제는 사회적·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필리핀 국민의 약 10%가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서는 이 헌장의 법적 구속력 당위 여부를 놓고 이견이 발생하고 있다. 주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국가에 속해있는 브루나이·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 등은 이 조치가 법적 강제력을 갖는 것을 원치 않는 반면, 노동력을 주로 제공하는 국가인 캄보디아·인도네시아·미얀마·필리핀 등은 이 조치의 강제력을 통해 불법 노동자를 포함한 자국 이주노동자들이 보호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이 투자르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 사회문화학 연구원은 “노동력을 보내는 나라와 받는 나라 간의 분열은 헌장의 조항이 법적 구속력을 갖느냐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이는 각국 내의 승낙과 비준이 필요하기 때문. 미등록 불법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을 보호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계속해서 골치아픈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세안 회원 10개국은 이주 노동자를 많이 파견하는 나라와 많이 받아들이는 나라가 함께 묶여 있다. 세계은행의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아세안 전체 인구 6억 2000만 명 중, 2000만 명 이상이 국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020만 명 이상인 동남아 이주노동자 중 700만 명이 역내 이주자로 알려졌다. 

이 중에서 특히 노동력을 해외에 많이 파견하는 국가로는 캄보디아가 약 80만 명·인도네시아가 120만 명·라오스 90만 명·미얀마 200만 명·필리핀 50만 명 등이다. 이주 노동자를 많이 받는 국가는 말레이시아(약 200만 명)와 태국(약 350만 명)이 가장 많고 싱가포르 약 130만 명으로 역내 3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수치는 실제보다 과소평가됐다는 의견이 많다. 불법 이주노동자의 수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주노동자 문제는 아세안 국가들이 풀어야할 중요한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때론 여권이나 신분 증명서를 업주에게 압수당하기도 하고, 최근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있었던 일과 같이 당국의 엄중 단속에 국외로 추방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인도네시아의 인권단체인 HRWG(Human Rights Working Group)의 다니엘 아위그라 아세안 법률지원 프로그램 매니저는 “이주 노동자들이 그들의 신분 증명 서류를 업주나 직업중개소에 강탈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밝혔다.

동남아시아의 이주 노동 인구는 이 지역의 경제적 불균형을 반영한다. 국제통화기금(IMF) 발표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2016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 2961달러(약 5930만 원)로 세계 9위, 역내 1위를 기록했다. 브루나이는 인당 GDP 2만 6424달러(약 2960만 원)로 싱가포르에 이어 역내 2위, 말레이시아는 인당 GDP가 9360달러(약 1050만 원)로 3위를 기록했다. 반면 캄보디아는 인당 GDP 1230달러(약 138만 원)·미얀마 1275달러(약 143만 원)·필리핀 2924달러(약 327만 원)·인도네시아 3604달러(403만 원) 수준이다. 가장 많은 이민자를 받는 나라인 태국은 지난해 인당 GDP가 6000달러에 못미치는 수준으로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보다는 낮지만 캄보디아와 미얀마로부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이민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싱가포르와 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그 나라의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분야에서 주로 일을 하고 있다. 주로 가정부와 수산업 등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이민 문제 전문가인 닐림 바루아는 “노동법 하에서 원칙적으로 이주 노동자와 자국 노동자를 차별대우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민자들은 보통 현지인들이 하지 않으려는 저임금 노동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부 일이나 농업·수산업 등의 일자리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가정부들은 임금도 적고,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는 데다, 최저임금 조항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근 태국 수산업계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바다에서 몇 년씩 노예처럼 부리거나 싱가포르에서 가정부가 집주인에게 학대당한 사건으로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되는 등 이주 노동자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는 사실 아세안 국가들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던 대대적인 단속 이후 건설기업들은 현지 언론에 이주 노동자들이 체포당할 것을 두려워해 일을 구하러 오지 않으면서 일손이 모자라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약 400만 명의 이주 노동자가 불법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불법 이주노동자의 많은 수와 학대 사례, 브로커와 직업중개소·인신매매집단 등에 대한 관리감독 부족 등이 이 문제에 관한 아세안 헌장의 필요성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2007년 헌장 발표 당시 의장국이었던 필리핀이 이번에 다시 의장국을 맡으면서 11월 중순 있을 아세안 정상회의 이전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4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한 필리핀이 어떻게든 의장국을 맡은 올해 내에 눈에 띄는 행적을 남기기 위해서 강제성이 없는 이주노동협약을 발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에바 쿠스마 순다리 인도네시아 국회의원은 최근 인권 개선을 위한 아세안 의원단체인 APHR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아세안 정부들 간의 협동된 조치 결여로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고용주·중개업체·당국에 이주노동자를 학대하라고 고삐를 쥐여준 꼴”이라고 비판하며 확실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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